「월성위 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80
한자 月城尉墓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시대 현대
집필자 표윤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9년경 - 「월성위 묘」 표윤명이 주민들로부터 채록
관련 지명 용궁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김정희 선생 고택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8-1 지도보기
관련 지명 월성위 김한신 묘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지도보기
채록지 용궁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신천강씨|김한신|화순옹주
모티프 유형 유적 유래담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전해지고 있는 월성위 김한신의 묘와 관련된 설화.

[개설]

「월성위 묘」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1720~1758]과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의 묘에 얽힌 이야기이다. 삽교천에서 물을 건네주며 살던 마음씨 착한 신천강씨가 있었다. 어느 날 승려를 도와준 신천강씨는 승려로부터 조상 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승려의 말대로 조상 묘를 옮기고 나서 좌수에 오른다. 신천강씨는 승려가 말하였던 3대 판서 자리도 찾으려 애썼으나 찾지 못하였다. 결국 3대 판서 자리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증조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화순옹주가 들어가게 되고, 판서와 참판은 물론 추사 김정희도 태어나게 된다.

[채록/수집 상황]

「월성위 묘」용궁리 김정희 선생 고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주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2009년경 표윤명이 주민들로부터 채록하였다.

[내용]

월성위 김한신의 묘가 자리를 잡기 전에 신암면 용궁리 부근에는 이미 신천강씨와 안동김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영조(英祖)[1694~1776]가 월성위에게 별사전을 하사할 때는 신천강씨와 안동김씨가 땅을 비껴 주었다고 한다. 안동김씨는 용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신천강씨의 영역은 월성위의 봉토와 접해 있었다. 신천강씨용궁리에 자리를 잡은 연유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삽교천에 물을 건네주는 일로 먹고살던 강씨가 있었다. 강씨는 매우 빈한하여 굶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물이 얼기 전에는 배를 이용하여 건네주었고 물이 얼고 나면 업어서 건네주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바람이 불고 추위가 살을 에는 날이었다. 날도 저물었는데 저쪽 강 건너에서 한 노승이 강씨를 불렀다. 강을 건네 달라는 것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씨 착한 강씨는 강을 건너가 노승을 업고 건너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노승이 향천사를 가는 중인데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느냐며 묻자 강씨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마음씨 착한 강씨는 빈한한 살림에도 시래기죽이나마 끓여 대접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튿날 노승은 강씨의 착한 마음에 보답하고자 작은 은혜를 베풀기로 하였다.

노승은 강씨에게 조상의 묘소를 어디에 썼는지를 물었다. 언덕 쪽에 있다고 하자 노승은 3대 판서 자리를 원하는지, 아니면 당대 좌수 자리를 원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강씨는 한참을 생각하다 3대 판서 자리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노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3대 판서 자리를 가리키려 하였다. 그때 방 안에서 듣고 있던 강씨의 아버지가 문을 열며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3대 판서냐고 하며 당대 좌수가 낫다 하는 것이었다. 강씨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시 당대 좌수 자리를 원하였다. 노승은 빙긋이 웃으며 당대 좌수 자리를 가리켰다.

이후 강씨는 좌수가 되었고 용산에 자리를 잡았다. 강씨의 집이 지금도 추사 고택 앞에 남아 있다. 뒤에 노승이 다시 지나가다 보니 새로운 기와집에 좌수가 된 강씨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노승의 방문에 강씨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았고, 은혜에 감사하였다. 그러면서 3대 판서 자리는 어디인지 물었다. 노승은 “자네 집에서 앉아서도 보이고 서서도 보이는 곳일세.” 하며 빙긋이 웃고는 길을 떠났다. 하지만 강씨는 노승이 말한 곳이 어디인지는 찾지 못했다. 노스님이 말한 곳은 바로 월성위화순옹주가 묻힌 자리인데, 강씨의 집에서는 그야말로 앉아서도 보이고 서서도 보이는 곳이다. 바로 눈앞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천강씨가 자리를 잡고 난 후 월성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모티프 분석]

「월성위 묘」추사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의 묘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유적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주민, 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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