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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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思庵齋 |
영어공식명칭 | Saamjae Ritual House |
이칭/별칭 | 이애재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4길 125[신기리 47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565년 - 사암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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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59년 - 사암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02년 - 사암재 개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6월 19일 - 사암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사암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4길 125[신기리 471] |
성격 | 재사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4칸 |
소유자 | 이근화 |
관리자 | 이근화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6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재사.
[개설]
사암재(思庵齋)는 재령이씨 영해파 입향조인 이애(李曖)와 이애의 부인 진성백씨를 위한 재사이다. 이애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맹현(李孟賢)의 아들로 16세 때 숙부였던 이중현(李仲賢)이 영해부사 재임기에 영해의 진성백씨 백원정(白元貞)의 딸과 결혼하면서 인량리에 정착하였다. 이후 1515년(중종 10)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도총부도사를 거쳐 울진현령을 역임하였고 1560년(명종 15)에 사망하였다. 이후 이애 가문은 이휘일(李徽逸)·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 등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를 배출하였다.
[위치]
창수면 신기리에 있는 형제봉의 한 줄기인 독재곡(篤材谷)에 자리한다. 사암재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변천]
1565년(명종 20)에 건립하였다가 1659년(효종 10)에 중수하였으며, 1702년(숙종 28)에 다시 개수하였다. 그 후 부분적으로 개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형태]
사암재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문채와 몸채가 ‘匚’ 자형을 이룬다. 몸채는 짐승과 도둑을 막기 위해 2층으로 축조하였는데, 정상적인 2층이 아니라 반(半) 2층 건물이다. 부엌은 1층에서 2층으로 불을 넣는 특이한 구조이다. 2층 중앙에는 삼칸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기거할 수 있는 온돌방으로 배치하였으며, 1층 마루 아랫부분은 헛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온돌방 아래는 성토한 구들골이 있으며, 안채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온돌방과 헛간과 방이 배치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과 측면 1칸으로 중앙어칸에 대문을 배치하고 협칸에 방을 두어 하인이 기거할 수 있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현황]
1995년 6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영덕 재실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역사적 의미와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