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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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源進 |
영어공식명칭 | Baek Wonjin |
이칭/별칭 | 진부(進夫),우헌(寓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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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양정리 |
부임|활동지 | 단산서원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양정리 묘곡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대흥(大興) |
대표 관직 |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
[정의]
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개설]
백원진(白源進)[?~?]은 문과 급제 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가계]
백원진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진부(進夫), 호는 우헌(寓軒)이다. 영해 입향조 백견(白堅)의 9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 백당(白瑭), 할아버지는 백당의 둘째 아들인 백광국(白光國)으로 흥해훈도(興海訓導)를 역임하였다. 아버지는 제용감(濟用監) 참봉 백민직(白民直)으로 영해 단산서원(丹山書院)의 이건(移建) 당시 감역(監役)을 담당하였다. 어머니는 진언성(秦彦成)의 딸 충주진씨(忠州秦氏)이다. 부인은 봉사(奉事) 박의걸(朴義傑)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백원진은 1672년(현종 13) 문과에 급제한 후 종사랑(從仕郞)과 김천도찰방을 지냈다. 만년에는 고향인 영해도호부를 떠나 영덕현 동쪽 양정(良亭)으로 이거(移居)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양정리 묘곡(墓谷)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