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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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之蒙 |
영어공식명칭 | Park Jim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445년 - 박지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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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원고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외가|처가 | 원고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보림리 산20-2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무안 |
[정의]
조선 전기 무안박씨 영덕 입향조.
[개설]
박지몽(朴之蒙)[1445~?]은 무안박씨(務安朴氏) 영덕 입향조이다.
[가계]
박지몽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다. 1445년 조선 개국공신으로 형조판서를 지낸 박의룡(朴義龍)의 현손이며, 아버지 박해(朴解)와 어머니 풍천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부인은 영해의 야성박씨(野城朴氏) 박종문(朴宗文)의 딸이며, 5명의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박지몽은 서울에 살다가 갑자사화(甲子士禍)가 발생하자 경기도 여주로 피신하였다. 얼마 뒤에는 큰아버지 박이(朴頤)를 따라 영해로 내려갔다가 함길도도사(咸吉道都事)를 지낸 박종문의 딸과 혼인하며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원고리(元皐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정착하였다. 3남인 박영기(朴榮基) 계열에서 무과 급제자가 집중적으로 배출되면서 무반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묘소]
박지몽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보림리 산20-2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었으며, 『단양부지(丹陽府誌)』에 의하면 부의 서쪽 50리[약 20㎞] 무덤 근방에 묘재(墓齋)인 오현재사(烏峴齋舍)가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