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62 |
---|---|
한자 | 白思復 |
영어공식명칭 | Back Sabok |
이칭/별칭 | 성초(性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745년 - 백사복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95년 - 백사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54년 - 백사복, 조봉대부 동몽교관 증직 |
묘소|단소 | 임전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삼읍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대흥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효자.
[가계]
백사복(白思復)[1745~1795]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초(性初)이다. 아버지는 백광욱(白光頊), 어머니는 이유당(李維堂)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조부는 백시웅(白時雄), 증조부는 백세경(白世經)이며, 부인은 조석형(趙錫衡)의 딸 증(贈) 영인(令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재종숙 백윤화(白潤華)와 신형조(申亨祖)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영해신씨(寧海申氏)]에게 출계하였다.
[활동 사항]
백사복은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변을 맛보고 종기를 빨아내니 주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한 겨울 어머니에게 병환이 생기자 약재로 쓸 죽순과 청개구리가 필요해졌다. 백사복의 효성에 감복했는지 눈 덮인 곳에서 죽순을 구할 수 있었으며, 청개구리가 스스로 약탕 그릇에 뛰어드는 일이 일어났다. 또한 어머니 몸의 이를 자기 몸으로 옮기는 효성을 보였다.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홍이건(洪履健)이 백사복의 효성을 듣고 표창하려고 했으나, 백사복이 극구 만류하여 복호(復戶) 받지는 못했다.
[묘소]
백사복의 묘는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삼읍리 임전(荏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54년(철종 5) 유림들이 백사복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올린 상언(上言)에 따라,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백사복의 효성을 기리는 만사(輓詞)·애사(哀辭)·제문(祭文)을 엮은 1책의 『성재실록(誠齋實錄)』이 필사본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