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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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伊鳳 |
영어공식명칭 | Lee Yibong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신진희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 이이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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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3월 - 이이봉 영릉의진 참여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이이봉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해군 오어면 희암동 |
활동지 | 경상북도 영덕군|울진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영릉의진 포군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이이봉의 체포 당시 판결문에는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오어면(烏於面) 희암동(喜岩洞)이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활동 사항]
1906년 3월 영릉의진을 일으킨 신돌석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등 동해안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그런 가운데 이이봉은 1908년 음력 3월 22일 자신이 거주하던 경상북도 영해군 오어면 희암동에 신돌석이 의병 280명을 휘하에 거느리고 들어오자, 의진에 들어가 포군이 되었다. 신돌석의진에 참가한 후 이이봉은 강원도 울진군·평해군, 경상북도 영해군 일원에서 활동하였으며, 5월 1일에는 순사대와 교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1909년 3월 1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暴動) 및 모살보조죄(謀殺補助罪)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