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덕상무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39
한자 禮德商務社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 시기/일시 1851년 무렵연표보기 - 예덕상무사 결성
소재지 예덕상무사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지도보기

[정의]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충청남도 예산·덕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보부상 조직.

[개설]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는 조선시대에 예산(禮山)과 덕산(德山)의 보부상 조직이 이웃한 면천(沔川)·당진(唐津) 등의 보부상 조직과 연합하여 1851년 무렵에 결성한 조직이다. 예덕이라는 명칭은 예산과 덕산의 첫 글자를 따서 붙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의 합성어로, 이들은 주로 지역의 장시(場市)를 떠돌며 상행위를 하던 소매상이었다. 조선 후기에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5일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장시 체제가 안정되면서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보통은 고령상무사, 창녕상무사 등과 같이 군현을 단위로 조직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중앙 정부가 지방의 보부상 조직을 도 단위, 전국 단위의 보부상 조직으로 통합하기는 하였지만, 기본 단위는 군현을 단위로 하였다. 전국 단위의 보부상 조직은 보부청(褓負廳)-혜상공국(惠商公局)-황국중앙상총회(皇國中央總商會)-상무사(商務社)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상무사가 마지막 명칭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보부상 조직은 상무사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예덕상무사는 예산, 덕산을 중심으로 면천, 당진 등 네 개 군현이 연합한 조직이다. 이처럼 몇 개의 군현이 연합한 형태의 조직은 예덕상무사를 포함해서 전국에서 충청남도 내의 원홍주육군상무사, 저산팔읍상무사만이 유일하다. 원홍주육군상무사는 6개, 저산팔읍상무사는 무려 8개의 군현이 연합하여 광역 단위의 조직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충청남도의 보부상 조직이 무엇 때문에 유독 이렇게 광역 단위의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광역의 조직을 결성하게 된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보부상들이 조직을 결성한 이유는 예덕상무사에 남은 『예산임방입의절목(禮山任房立儀節目)』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절목의 「입의(立議)」 편에는 조직을 결성하게 된 이유를 첫째, 행상하다가 병든 자를 보살피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등의 상부상조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둘째, 곳곳에서 근본도 없이 모여든 무뢰한 무리와 도리에 어긋나고 불순한 행위를 하는 자를 징벌하고 규율을 바로잡고자 함이라고 들고 있다. 즉,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직업을 기준으로 한 조선시대의 신분제에서 제일 낮은 위치에 있었던 힘없는 상인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고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 조직을 결성한 주요 목적이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예덕상무사의 조직 구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이지만 크게 본방과 예하의 처소로 구분되며, 접장(接長)-공원(公員)-집사(執事)-비방(俾房)의 직책을 두고 있었다. 본방은 예덕상무사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접장이 거주하는 곳이다. 접장의 고문직으로 영위(領位)나 반수(班首)가 있는데, 이 직책은 접장을 역임한 이들이 지내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접장의 아래에는 그를 보좌하는 한 무리의 공원과 공원을 보좌하는 집사가 있다. 공원은 실무를 총괄하는 본방공원(本房公員)을 비롯하여 각 임무에 따라 문서공원(文書公員), 수전공원(收錢公員), 한산공원(閑散公員), 별공원(別公員) 등이 있다. 집사는 도집사(都執事)를 비롯한 부집사(副執事), 수전집사(收錢執事), 발집사(發執事)가 있으며, 그 밖에 공사장(公事長), 공사원(公事員), 명사장(明査長), 명사원(明査員) 등의 실무원을 두었다.

또한, 별개로 비방청(俾房廳) 또는 동몽청(童蒙廳)으로 불리는 조직을 두었는데, 이는 미혼자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비방청은 대방(大房) 아래에 비방, 비도집(俾都執), 비집사(俾執事) 등의 직책을 두었다.

[관련 기록]

예덕상무사는 1851년(철종 2)부터 최근까지 생산된 100여 건의 기록물을 남기고 있다. 기록물은 해마다 임원 명단을 적어 놓은 좌목(座目)류가 대부분이고, 그 밖에 조직의 규정과 관련된 절목(節目), 완문(完文), 접장들의 사임 인사, 공문제의 축문·안내장 등이 있다. 좌목류는 역대 임원 명단을 기록해 놓은 선생안(先生案)과 연도별 임원 명단을 적어 놓은 임원록으로 구분되는데, 임원록은 시기에 따라 임소좌목, 임소임안, 임원명단, 임원록, 임원방명록, 역원방명록, 방명록, 임방록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 왔다.

문헌자료 중 『예산임방절목부한성부완문(禮山任房節目附漢城府完文)』[1851], 『임소좌목(任所座目)』[1885], 『선생안』[1885], 『예산임소좌목(禮山任所座目)』[1885], 『의정부완문(議政府完文)』[1886], 『보상선생안』[1881], 『예덕면당4읍임소소임안(禮德沔唐四邑任所所任案)』[1892], 『예산임소방목』[1905], 『예산보상임소좌목』[1906·1907·1908], 『덕산본소임방좌목』 등 16건은 국가민속문화재 제30-2호 보부상 유품(2)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예덕상무사는 조선 후기에 예산, 덕산, 당진, 면천의 네 개 군현 보부상 조직이 연합한 조직으로, 이러한 형태의 연합 조직은 전국적으로 예덕상무사와 원홍주육군상무사, 저산팔읍상무사 등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또한 전국의 다른 보부상 조직이 일제강점기 이전에 소멸하였던 것과 달리 예덕상무사는 2018년 현재까지도 조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수의 문헌 자료와 민속품, 그리고 무형 전통을 남기고 있어 조선 후기 보부상 조직의 형성과 특징, 상업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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