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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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선빈 |
제정 시기/일시 | 940년(태조 23) - 대흥현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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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681년(숙종 7) - 대흥현이 대흥군으로 개칭 |
관할 지역 | 대흥현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대흥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대흥현은 현 예산군의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봉산면 등을 포괄하는 지역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옛 고을명이다. 고려 초기인 940년(태조 23) 등장한 지명으로 고려 중·후기에는 감무가 파견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현감이 부임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대흥군으로 승격되어 군수가 부임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산군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대흥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이 있던 곳으로, 금주(今州)라고도 하였다.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임성군(任城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940년의 지방제도 개혁 때 대흥현으로 개칭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 등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대흥현 관련 기록들이 있다. 각 지리지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연혁을 시작으로 호구, 군정, 성씨, 전답, 토의, 토공, 약재, 토산, 성곽, 역원, 불우, 인물, 관원, 형승, 산천, 학교, 사묘, 고적, 열녀, 제영 등 여러 항목에서 대흥현[대흥군]의 자세한 상황들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에는 대흥군이 읍내면(邑內面), 거변면(居邊面), 원동면(遠東面), 근동면(近東面), 일남면(一南面), 이남면(二南面), 외북면(外北面), 내북면(內北面)의 8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편호가 3,214호, 남자가 5,000명, 여자가 8,106명이었다. 『여지도서』에 기록된 대흥군의 토지는 밭이 2,462결 92부, 논이 1,310결 12부였다. 대흥군에 부임한 군수는 문과, 음서, 무과 출신을 골고루 배정하여 임명되었으며, 관속은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20명, 아전 52명, 지인 15명, 관노 11명, 관비 9명, 사령 29명이었다.
[내용]
조선 초기의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대흥현의 사방 경계를 동쪽으로 공주(公州)까지 22리[약 8.64㎞], 서쪽으로 홍주(洪州)까지 6리[2.36㎞], 남쪽으로 청양(靑陽)까지 15리[약 5.89㎞], 북쪽으로 예산(禮山)까지 15리라고 하였으며, 호수가 388호, 인구가 1,518명이며, 군정은 시위군이 11명, 진군(鎭軍)이 89명, 선군이 100명이었다. 또한 예전에 것물금소[居叱勿金所]라 불리던 거변소(居邊所)가 대흥현에 속해 있었다.
대흥의 행정구역은 육지만이 아니라 대잠도 등 섬까지 포함하였다. 대잠도에는 중국 당나라의 무장인 소정방의 사당이 있어서 고려시대에는 사신을 보내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제사를 지냈다. 대흥현 지역에 있던 삼국시대의 임존성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육상과 해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흑치상지가 지도한 백제 부흥군의 거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무(武)를 숭상하는 기풍이 남아 있었으며, 인구에 비해 군정이 많았다.
[변천]
고려 940년 지방제도 개혁 때 임성군이 대흥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대흥현은 1018년(현종 9)에 지금의 홍성 지역인 운주(運州)의 속현이었는데, 1170년(명종 2)부터 중앙에서 감무(監務)가 파견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에 전국의 모든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면서 대흥현에도 감무 대신 종6품직인 현감이 부임하여 근무하였다. 이후 1681년(조선 숙종 7)에 대흥에 있던 현종의 태실(胎室)에 석란(石欄)을 더 북돋우면서 현을 군으로 승격시켜 대흥군이 되었고, 종4품직인 군수가 부임하였다.
대흥군은 1681년 군으로 승격된 이후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예산군에 병합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대흥군 지역은 1914년 예산군으로 병합되어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봉산면을 이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흥현 지명의 변천과 행정구역의 변동을 통해 예산군 역사의 일부를 고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