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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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官衙 |
이칭/별칭 | 공해(公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예산관아터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 |
대흥관아터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 |
덕산관아터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
[정의]
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해당하는 예산, 덕산, 대흥 지역의 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
[개설]
지금의 예산군은 조선시대 예산, 덕산, 대흥 3개 군현이 하나로 합쳐진 행정구역이다. 조선시대에 3개 군현에는 각각 관아가 있었는데 대흥과 덕산은 읍성이 둘러 있고 그 안에 읍치가 형성되었다. 관아 시설은 왕의 전패(殿牌)를 모시는 객사(客舍)와 수령의 업무 공간이며, 생활 공간인 아사(衙舍)[동헌, 내아]가 핵심 시설이고, 그 외에 하급 관리와 향리, 노비 등이 머무는 공간 및 창고, 누정, 사정(射亭) 등의 부속시설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관아 시설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해체되어 매매되는 등의 수모를 겪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흥관아의 동헌(東軒)과 아문(衙門)뿐이다.
[예산의 관아]
읍치는 지금의 예산읍 예산리 일대에 있었다. 관아 현황은 조선 후기인 1700년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예산현 공해조에 처음 보인다, 이에 따르면 객사의 정청(正廳)이 3칸, 동상방(東上房) 4칸, 서헌방(西軒房) 3칸, 중대청(中大廳) 3칸, 남청방(南廳房) 4칸, 하마청(下馬廳) 3칸이 있었고, 아사(衙舍)의 동헌이 4칸, 책방(冊房) 3칸, 내아(內衙) 11칸이 있었다.
허균(許筠)[1569~1618]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조관기행(漕官紀行)」 중에 예산 동헌의 뒤편에 석가정(夕佳亭)이 있고 대나무가 푸르러 운치가 있다는 글이 있고, 윤두수(尹斗壽)[1533~1601]가 지은 예산객사(禮山客舍) 차운(次韻) 시 한 편이 전한다.
[대흥의 관아]
예산군 지역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관아건물은 대흥관아뿐이다. 대흥면 동서리 106-1번지에 있는 ‘예산 대흥 동헌 및 아문(禮山大興東軒및衙門)’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4호로 2003년 10월 30일 지정되었다.
대흥현의 치소는 지금의 대흥면 동서리의 대흥면사무소 일대에 있었다. 관아 건물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처음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객사의 정청이 3칸, 객사 동대청(東大廳)이 12칸, 견사정(見思亭) 14칸, 서헌방 12칸, 동헌방(東軒房) 16칸, 하마대(下馬臺) 4칸이 있었고, 아사는 구동헌(舊東軒) 9칸, 신동헌(新東軒) 16칸, 남상방(南上房) 4칸, 북상방(北上房) 5칸, 대청(大廳) 6칸, 초당(草堂) 5칸, 행랑(行廊) 7칸이 있었다.
현재 관아에는 동헌과 임성아문의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 있다. 1914년에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정비하여 1981년에 복원하였다.
[덕산의 관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덕산관아 주변은 읍성이 둘러싸고 있었다. 조선 초에 이산영(伊山營)으로 고려 말 최영(崔瑩)[1316~1388]의 건의에 따라 도절제사의 병영을 두었는데, 조선 초 1416년(태종 16) 태안에 거둥하였던 태종이 명함에 따라 병영은 해미현으로 옮기고 이산영의 터를 덕산현 청사로 쓰게 하였다. 지금의 덕산면 읍내리에 해당한다.
『여지도서』의 공해조에는 객사 62칸, 아사 81칸, 군기고(軍器庫) 7칸, 각청(各廳) 10칸 6반이라고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더 구체적인 자료인 『1872년 지방지도』에 의하면 2층 문루를 통과해 들어가면 객사와 동헌 권역이 있고, 그 외의 건물들은 떨어져 있다. 문루 밖에는 작청(作廳), 장청(將廳)이 각각 담장에 둘러 있다. 문루를 지나 장방(長房), 형방청(刑房廳), 공수(公須)가 있고, 내삼문을 통과하면 흡창방(吸唱房), 동헌, 책방이 한 공간에 있으며 책방 옆으로 작은 문을 지나면 내아가 있다. 또 다른 객사권역은 홍살문을 지나 이어지며 객사는 별개의 담장으로 둘러있고, 통행하는 문 시설이 있다. 객사에서 가까운 향청은 담장이 있으나 문이 없다. 좌기청은 향청 인근에 있다. 객사와 동헌권역 사이의 뒤편에는 군기고가 있다. 관아 시설 중 가장 먼 곳에 사정(射亭)이 자리잡고 있었다.
1807년 덕산현 객사에 모셔져 있던 전패를 함부로 다룬 사건이 벌어져 죄인을 처벌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