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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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山李氏族譜 |
이칭/별칭 | 한산이씨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용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상항면 대술리의 예산 수당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한산이씨 족보의 초간본.
[개설]
1643년(인조 21) 강원도관찰사 이덕수(李德洙)[1577~1645]가 편집·간행한 한산이씨 족보의 초간본(初刊本)이다. 상·하 1책이며, 원주의 강원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한산이씨보 (韓山李氏譜)’, 판심제는 ‘한산이씨족보’이다. 예산군 상항면 대술리에 있는 이남규(李南珪) 고택, 즉 예산 수당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81호]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한산이씨족보』의 편집·간행자인 이덕수는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 이언홍(李彦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무주현감 이소(李沼)이다. 아버지는 이도(李濤)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로 이석명(李碩明)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0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가 정자가 되었다가 저작·박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많은 관직을 역임하다가 1641년 한때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는데 이때 『한산이씨족보』를 간행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서문과 발문에 의하면, 본래 한산이씨는 옛 족보[구보(舊譜)]가 있었는데, 이는 간단한 형식의 보첩(譜牒)이었다. 그나마 책판이 전해지지 않아 세대의 경과에 따라 엄청나게 증가된 자손들을 등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족보 간행이 요구되었다. 이에 이덕수는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한 뒤 가장(家藏) 성보(姓譜)를 토대로 족보 간행을 계획하였으나 간행 경비가 많이 들어 착수하지 못하였다. 그때 마침 한산이씨 일가인 이흥록(李興祿)이 근방의 찰방으로 부임하여 족보 간행에 적극 동의하고 경비 조달에 협조함으로서 간행을 완료할 수 있었다.
[형태/서지]
가로 24㎝, 세로 33.6㎝의 크기이다. 상·하 1책이며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주쌍행(註雙行)이다.
[구성/내용]
표지, 서문, 범례, 보도(譜圖) 상·하, 발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1643년 양관 대제학 이식(李植)과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이 지었다. 발문은 1643년 족보의 간행을 주관했던 이덕수가 지었다. 범례는 모두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집의 방침이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보도는 7층 횡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맨 앞에 ‘한산이씨족보(韓山李氏族譜)’라는 큰 글씨를 판각하였다. 매 면에는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표(字標)가 매겨져 있다.
맨 첫 장에는 제1대 시조 이윤경(李允卿)[권지호장(權知戶長)]부터 7대까지 대수에 따라 종으로 배열하였다. 그리고는 장을 달리하여 6대에 해당하는 이색을 맨 상단에 올려 기재한 다음 대수에 따라 채우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산이씨족보』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번성했던 성씨인 한산이씨의 가계를 상세히 알수 있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며, 또한 현존하는 족보 중 사위와 외손까지 기록되어 있는 족보는 흔치 않아 의의가 있다. 또한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와 상항리 주변은 예산 수당고택을 비롯하여 이산해 사당 등 한산이씨와 관련된 문화유적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