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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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陽趙氏 |
영어공식명칭 | Han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806년 - 조전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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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864년 - 조전오 사망 |
입향 시기/일시 | 1829년대 후반~1830년대 초반 - 한양조씨 입향조 조전오 예산 입향 추정 |
본관 | 한양 - 서울특별시 |
입향지 | 한양조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
성씨 시조 | 조지수(趙之壽) |
입향 시조 | 조전오(趙全五) |
[정의]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전오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연원]
중국 송나라가 멸망하자 송태조의 후손 4형제가 고려로 망명하여 백천, 한양, 풍양, 양주 등에서 각각 시조가 되었다. 480여 년 전에 최초의 족보를 만들 때 4형제 중 둘째인 조지수(趙之壽)가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양조씨는 예산 입향 후 학자요 청백리인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과 아들인 현감 조창한(趙昌漢), 도사(都事) 조성한(趙晟漢), 돈녕도정(敦寧都正) 조방교(趙邦敎), 효자 조정교(趙鼎敎), 현감 조종서(趙鍾緖), 효자 조경희(趙敬熙)·조기덕(趙基德)·조백(趙柏)·조세원(趙世元)·조최수(趙最洙)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맹홍술(孟弘述)의 아내 효부 조씨, 김진오(金振五)의 아내 열부 조씨, 이은택(李殷澤)의 아내 효부 조씨, 김경두(金景斗)의 아내 효부 조씨, 강한(康漢)의 아내 효·열부 조씨, 정설화(鄭說和)의 아내 현부 조씨도 예산 한양조씨 문중 출신이다.
[입향 경위]
한양조씨 예산 입향조는 대술면 장복리의 입향한 조전오(趙全五)[1806~1864]이다. 한양조씨 족보에 따르면 조전오는 수원김씨(水原金氏) 문중의 사위로 들어와 정착했다. 생몰연대로 보았을 때 1820년대 후반에서 1830년대 초반에 입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예산군에는 1,032명의 한양조씨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예산군 봉산면에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 묘가 있다. 조극선의 부음이 전해지자 효종이 관청에 명하여 제반 용품들을 모두 갖추어 초상을 치르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어필(御筆)로 문금(文錦)과 현훈(玄纁)[장사 지낼 때에 산신에게 드리는 검은 헝겊과 붉은 헝겊의 두 조각 폐백. 나중에 무덤 속에 묻는다]을 특별히 하사하였으며, 인근 고을에 명하여 영구(靈柩)를 호송하게 하고 묘소를 조성할 인부를 지급하였다고 한다.
효자 조극선·조정교 정려는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려이다. 조극선의 정려는 1664년(현종 5) 명정을 받아 시동리와 이웃한 당곡리에 세워졌는데, 7세손인 조정교가 1875년(고종 12)에 명정을 받자 1876년 조극선의 정려를 현 위치로 이건하여 한 정려각에 두 사람의 정려 현판을 걸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