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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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遂默 |
영어공식명칭 | Sung Soomook |
이칭/별칭 | 성취(聖就),성집(聖執),효헌(孝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출생 시기/일시 | 1792년 - 성수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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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25년 - 성수묵 알성시 을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32년 - 성수묵 무안현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34년 - 성수묵 서장관으로 청나라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837년 - 성수묵 동래부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39년 - 성수묵 성균관대사성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40년 - 성수묵 이조참의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43년 - 성수묵 함경도관찰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46년 - 성수묵 대사헌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47년 - 성수묵 형조판서 임명,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849년 - 성수묵 예조 판서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850년 - 성수묵 사망 |
거주|이주지 | 성수묵 거주지 - 서울특별시 |
묘소|단소 | 성수묵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대표 관직 | 대사헌|예조판서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성수묵(成遂默)[1792~1850]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성취(聖就) 또는 성집(聖執),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승지 성범석(成範錫)이며, 할아버지는 현감 성덕구(成德求)이다. 아버지는 부사 성긍주(成肯柱)이며, 어머니는 이두원(李斗源)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활동 사항]
성수묵은 1825년(순조 25) 알성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1829년 전라우도암행어사로 지역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한 바 있고, 1832년 무안현감을 거쳐 183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에 대마도의 도주를 상대로 외교 문서를 관장하였다. 이후 1839년 성균관대사성, 1940년 이조참의, 1843년 함경도관찰사, 1846년 대사헌에 임명되는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47년 형조판서 재임 중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49년(헌종 15)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예산군지』에 따르면 성수묵은 예산의 문장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외교 문서를 담당할 만큼 문장과 시문에 능하였다고 한다.
[묘소]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7-7에 성수묵 영세불망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