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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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文俊 |
이칭/별칭 | 정의(貞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조민희 |
[정의]
고려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개설]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가계]
한문준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한유충(韓惟忠)이다. 한유충은 대흥한씨의 시조로, 이후 후손들이 예산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한문준은 대흥현[현 예산군 대흥면 일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외직으로 나가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세 고을의 부사(副使)와 남경부유수(南京副留守)를 역임하였다. 1170년(명종 원년)에 태부경(太府卿)에 임명되었다가 추밀원우승선(樞密院右承宣)이 되었다. 추밀원부사(副使)로 있을 때 정중부(鄭仲夫)의 사위인 송유인(宋有仁)이 탄핵하여 좌천되었다. 이후 참지정사 보문각 태학사 판예부사(參知政事寶文閣太學士判禮部事)가 되었으며, 정당문학 판병부사(政堂文學判兵部事)로 승진하였다. 1184년(명종 14)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에 올랐는데 인사를 공정히 한다는 평을 받았다. 말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다가 1190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