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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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萬珍 |
영어공식명칭 | Kim Man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조선 후기 예산에 거주하며 무한천에 수로를 만든 문신.
[개설]
김만진(金萬珍)은 노씨 부인과 함께 조선 후기 예산 국사봉 아래의 무한천변에 수로 개설을 주도하여 오가평야에 새 농토를 개척하였다.
[가계]
김만진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자암(自庵) 김구(金絿)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우영(金宇英)[1610~1673]이다.
[활동 사항]
김만진은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현 오촌리]에 거주하면서 광주노씨(廣州盧氏)와 혼인을 했는데, 18세의 노씨는 우례(于禮)[신부가 처음 시집으로 들어감. 또는 그 예식]를 시댁에서 치르던 날 밤 기이한 꿈을 꾼 뒤 남편 김만진을 깨워서 꿈 얘기를 하였다. 노씨의 꿈에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나는 이곳의 들을 맡고 있는 신령이다. 너는 복이 많은 여인으로 부귀를 누리게 되리라. 내가 오늘 밤에는 서리가 내리도록 할 것이니 그 서리를 따라 수로(水路)를 내도록 하라. 그러면 너의 집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흥왕(興旺)하리라.”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김만진과 부인 노씨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대문 밖에 나가 보니 마당 앞에서부터 들판으로 하얗게 한 줄기 서리가 깔려 있어서 조랑말을 타고 서리 자국을 따라 달리니 그 자국은 오가 들판이 끝나는 국사봉 아래 무한천에 닿아 있었다.
김만진은 부모의 승낙을 얻은 다음 대동(大洞) 회의를 열어서 보(洑) 막는 일과 수로 내는 일을 협의하였다. 다음해 이른 봄부터 대역사(大役事)가 시작되었다. 현재의 예당호 제방 끝자리는 이때 만든 보가 모체가 된 것이고, 당시의 수로는 현재도 같은 용도로 개축되어 있다. 김만진은 이후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으며, 5세손인 김춘서(金春叙)는 곤양군수, 부산진방어사, 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에는 김만진과 노씨 부인이 거주했다는 광산김씨 고택과 노씨 부인을 기리기 위한 사당, 국사당보가 있었으나 1960년대에 모두 허물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