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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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雲峰 |
영어공식명칭 | Go Woon bong |
이칭/별칭 | 고명득(高明得)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원표 |
[정의]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대중가요 가수.
[개설]
고운봉(高雲峰)[1920~2001]은 한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예산 출신 대중 가수이다. 본명은 고명득(高明得)이다.
[활동 사항]
고운봉은 1920년 예산에서 태어났다.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였고, 태평레코드사의 테스트를 거쳐 전속 가수로 채용되었다. 1939년 유도순 작사·전기현 작곡의 「국경부두」와 박영호 작사·전기현 작곡의 「아들의 하소」를 출반하였고, 순정 가수 고운봉으로 홍보하였다. 그해 「홍루야곡」, 「남월향로」를 발표하였고, 1940년 1월 이재호 작곡의 「남강의 추억」을 히트시켰다.
고운봉은 1940년 오케레코드사로 이적하여 9월 「홍등일기」를 발매하였고 조선악극단의 주연을 맡았다. 1941년 8월 조명암 작사·김해송 작곡의 「선창」이 발매되어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후 「남강의 추억」, 「홍등야곡」, 「명동블루스」, 「백마야 가자」, 「인생은 육십부터」 등이 인기를 얻었다. 해방 후인 1959년에는 가수협회 부회장과 연예협회 부이사를 역임하며 대중가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고운봉의 노래는 우수가 깔려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점잖은 창법과 적당한 울림으로 깊은 호소력을 전달하였다.
[묘소]
2001년 8월 1일 사망하였고,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산220 대성사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고운봉은 1998년 한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2000년에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 지구 내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