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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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救世軍 |
이칭/별칭 | 영문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 구세군 김영문에 의해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에서 선교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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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2년 - 구세군 예산군 대흥면 소재지에 대흥영문 설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3년 - 구세군 대흥영문에 초대사관 윤영모 파송 |
대흥영문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중리길 33[상중리 318]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19세기 영국에서 창립된 개신교의 한 종파.
[개설]
구세군은 선교, 빈민 구제, 사회사업을 강력하게 전개하기 위해 교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하여 운영하는 개신교의 한 종파이다. 1865년(고종 2) 영국 런던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1829~1912]와 윌리엄 부스의 부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1829~1890]가 창립하였다. 부스는 타성에 젖은 기존 교회가 나눔의 사명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그리스도교 전도회[The Christisn Mission]를 창립하여 전도와 빈민 구제 사업과 사회복지사업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다.
1878년 부스는 그리스도교 전도회를 구세군(救世軍)으로 개칭하면서 교회 조직을 군대식으로 개편하고 자신이 초대 사령관이 되었다. 한국 구세군은 1907년 창립자 부스가 40일간 일본을 순회 선교하던 중, 조선 유학생들이 조선에도 구세군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08년 10월 영국 런던 만국 본영의 호가드(R. Haggard) 정령 일행이 내한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들은 서울 서대문구 평동에 본부를 정하고 2개의 영(營)을 설립하였다. 1910년 2월부터 성경대학이라는 명칭으로 한국구세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사관 양성을 시작하였다. 1918년 겨울 빈민 구제를 위해 평동사관학교 내에 급식소 및 장작 배급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그 후 고아원, 미혼모 사업, 금주·금연 운동 등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전개하였다. 1928년 개설된 크리스마스 자선냄비 사업은 구세군 사회사업의 상징이 되었다. 1940년에는 일제에 의해 구세단으로 개칭되었으나 광복 후 다시 구세군으로 환원되었다.
현재 전 세계의 구세군을 통솔하는 본부가 런던에 있다. 한국의 경우 군국사령관 아래 서기장관이 있어 각 부서의 서기관들을 통솔한다. 지방 본영에는 지방장관이 있어 개별 교회인 영문(營門)을 감독한다. 영문에는 담임 사관의 목회 하에 하사관과 평신도인 병사들이 있다.
[변천]
예산 지역의 구세군은 1909년(순종 3) 8월 영국인 선교사들이 공주지역에서 예산 지역으로 선교 지역을 넓히면서 시작되었다. 김영문에 의해 처음으로 광시면 동산리에서 선교를 시작하여 1912년에 현 대흥중학교 자리에 대흥영문이 설립되었다. 그 후 김영문의 동생 김병수가 대흥영문을 인도했고, 1913년에 윤영모 사관이 초대사관으로 파송되었다. 그 후 오가면 원평리, 고덕면 상궁리, 대흥면 손지리 등에 구세군전도관이나 영문이 설치되었다가 일부 폐지되기도 하는 등의 변천 속에서 김병규(金秉珪), 선우영(鮮于瑛), 최성동(崔成東), 차칠성(車七星), 손준정(孫俊丁), 박용근(朴用根), 김사국(金士國) 등 교역자들이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대흥영문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8월 현 대흥중학교 자리에 사금 채취 공장이 자리 잡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85년에 다섯 번째 중건을 하였고, 2006년에 리모델링하였다.
[현황]
현재 예산 지역에는 대흥영문, [대흥]손지영문, [대흥]탄방영문, [응봉]평촌영문, 오가영문, 예산영문, [예산]관작영문, 신례원영문등 8개의 구세군 교회가 선교와 빈민 구제, 사회복지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의의]
예산 지역의 구세군 교회는 개신교 선교 초기인 1900년대에 대흥면 지역부터 전도가 시작되어, 구세군 교회의 지상 목표인 빈민구제와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면서 지역의 교회로 정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