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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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萬里聖潔敎會 |
이칭/별칭 | 구만리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삽교평야로 664-15[구만리 827-1]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설립 시기/일시 | 1932년 8월 - 구만리성결교회 동양선교회 구만리기도소로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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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49년 - 구만리성결교회 구만리 기도소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62년 - 구만리성결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에서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변경 |
개칭 시기/일시 | 1965년 - 구만리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변경 |
현 소재지 | 구만리성결교회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삽교평야로 664-15[구만리 827-1] |
성격 | 종교 기관 |
설립자 | 이봉현|김기환|한춘경 |
전화 | 041-338-6776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일제강점기인 1932년 예산 고덕면 구만리 지역에 성결교회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32년 8월 구만포(九萬浦)로 인해 번성하던 구만리에서, 삽교 역리교회에 다니던 이봉현, 김기환, 한춘경을 중심으로 ‘구만리기도소’가 시작되었고, 1934년 약 39.66㎡[12평]의 초가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1937년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구만리교회’로 승인받았으며, 1938년 3월 최초로 교역자가 부임하였으나, 1943년 12월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가 폐쇄당하였다.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교회를 재건하였고, 1946년 5월 초가 8간의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49년 구만리기도소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개칭되었으며, 1962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에서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변경되었다. 1965년 다시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구만리교회로 변경되었다.
1954년 예배당 2간을 증축하였다. 1962년 3월 세면 벽돌조 약 132.23㎡[40평]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1967년 입당식을 하였다.. 1973년 11월 구만리교회41주년기념예배를 보았다. 1979년 목사관을 신축하였다. 1988년 6월 대지를 매입하여 교회를 확장 신축할 준비를 하였으며, 1994년 추가로 약 1,497.52㎡[453평]을 매입하였다. 1999년 11월 현재의 교회 건물을 완공하여 입당 예배를 보았다. 2002년 목사관을 신축하였고, 창립 70주년 기념으로 『구만리교회 70년사』앨범을 발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지역 선교의 확산을 위해 1956년 상궁리교회를 개척하여 1957년 상궁리교회가 분리하여 나갔다. 1968년 서내[고덕 용리의 삽교천과 효교천이 합류하는 부근의 마을] 기도소를 개척하여 건물을 짓고 신순구 성도를 파송하였다. 1970년 4월 서내 기도소가 확장됨에 따라 용리에 약 66.11㎡[20평]의 예배당[현 용리성결교회]을 신축하였다. 2000년대 이후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농촌 교회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한편, 12개 구역의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황]
역대 교역자는 1대 강신호 전도사[1938~1940] 이래 현재 16대 정경만 목사[2008~]가 맡고 있다. 구만리는 구만포구로 인해 번성했지만, 1975년 삽교천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뱃길이 끊어지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농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계속 인구가 줄어서, 2004년만 해도 구만리성결교회의 신도 수가 250명 정도에 달하였지만 지금은 노인 신도들이 더 많은 편이다.
[의의와 평가]
구만리성결교회는 구만포가 번성했던 고덕 구만리 지역에 일제강점기 말기에 건립되어, 구만포의 변천을 거치면서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하며 활동하고 봉사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