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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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殺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표윤명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 「마살리고개」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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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마살리고개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
관련 지명 | 마살리고개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박 수사|말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와 관음리에 전해지고 있는 마살리고개와 관한 설화.
[개설]
「마살리고개」는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사이에 있는 마살리고개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휴가를 받아 고향인 광시면 마사리로 가던 박 수사의 말이 고개 내리막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자 박 수사가 말의 목을 베고 걸어서 내려갔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박 수사가 말의 목을 베고 넘어간 고개를 마살리고개라 부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마살리고개」는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실려 있다.
[내용]
광시면 동산리와 관음리 사이에 말이 죽은 고개라 하는 마살리고개가 있다. 임진왜란 때 광시면 마사리 출신으로 전라수사였던 울산박씨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박 수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왜적과 맞서 싸웠다. 쓰러져 가는 조국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생각할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침내 8년간의 전란이 끝나고 왜군이 물러가자 백성들은 고향을 찾아 일손을 다시 잡게 되었고, 군사들은 휴가를 얻어 집에 다녀오게 되었다. 비록 폐허가 된 조국이기는 하였지만 백성들은 다시 희망에 넘쳐 있었다.
박 수사도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박 수사는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 말채찍에 힘을 가하였다. 박 수사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하듯 말도 잘 달려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살리고개에 이르렀다.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고향인 것이다. 박 수사는 고개 아래 농가에서 젊은 부부가 등잔불 밑에서 오순도순 저녁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고, 부럽기까지 하였다. 이번에 고향에 가면 군복을 벗고 농사나 지으면서 한가롭게 살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박 수사는 작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더없이 편했다. 그래서 더욱 빨리 고향에 가고 싶었다.
날도 저물어 박 수사는 마음이 바쁘기만 하였다. 그런데 고개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힘차게 내딛던 말이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 이르자 발길을 그만 딱 멈추는 것이었다. 박 수사는 말고삐를 앞으로 당기며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나 말은 머리를 돌려 채찍을 피할 뿐 발을 더 이상 떼어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박 수사는 화가 치밀어 그만 말의 목을 베고는 걸어서 고개를 내려갔다. 그러고는 다시 군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 박 수사의 속마음을 알아챈 말이 가지 않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대흥산(大興山)[봉수산] 중턱에 박 수사의 묘가 있는데, 묘 앞에는 말 무덤이라 불리는 커다란 무덤이 남아 있다. 박 수사가 말을 죽인 고개를 사람들은 지금도 마살리고개라고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