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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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庵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표윤명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7년 - 「백암」 예산군에서 발간한 『예산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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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상가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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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가야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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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이인좌|황진기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전해지는 백암이라는 암자에 얽힌 설화.
가야사 주변에 백 개의 암자와 절이 세워지면 모두 망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백 번째 암자인 백암이 들어서면서 실제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백암」은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주변에 있었던 암자인 백암에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백암」은 1987년 예산군에서 발간한 『예산군지』에 실려 있다.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주변에 아흔아홉 개의 절과 암자가 있었다. 백 개를 채우면 모두 망하게 되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터가 매우 좋은 자리가 있어 백 번째 암자인 백암을 세우는 바람에 가야사와 주변에 있던 모든 절과 암자가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백암은 영조(英祖)[1694~1776] 때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과도 연관이 있다. 이인좌가 충청도 호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인근의 유력 인사들을 유인하고 난에 동참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인좌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후 종적을 감춘 황진기(黃鎭紀)가 백암에서 승려로 변장하여 숨어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하여 백암이 문을 닫고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가리에서 옥양봉 쪽으로 오르는 등산길을 백암사길이라 하고, 백암이 있는 봉우리를 백암봉이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