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02
한자 金正喜宗家遺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 김정희 종가 유물 김정희 영정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09월 01일연표보기 - 김정희 종가 유물 보물 제547-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정희 종가 유물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원소재지 김정희 종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성격 회화|유묵|서첩|영정
재질 지류|석재|비단
크기(높이,길이,너비) 57.7㎝[김정희 영정 가로]|131.5㎝[김정희 영정 세로]
소유자 김성호 외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외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김정희 종가에서 소장하였던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유물.

[개설]

김정희 종가 유물(金正喜宗家遺物)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것으로 김정희의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작품과 유물이다. 1971년 9월 1일 유물류와 유묵, 서첩,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 등이 함께 보물 제547-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김정희 종가 유물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며, 2017년 10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다.

[구성 및 내용]

김정희 종가 유물김정희가 생전에 지니던 인장, 염주, 벼루, 붓 등의 유물과 습작, 편지, 달력, 필사본, 대련 등의 유묵, 그리고 서첩인 금반첩과 심경첩, 1857년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김정희 유물은 김정희 인장, 염주, 벼루, 모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김정희 인장은 김정희의 도장으로 30종류에 31과가 있는데, 모두 석재·옥재 등에 조각되었고 김정희인·추사·견한·양류당년·음자십시(吟自十詩) 등이 새겨져 있다. 염주는 수정을 실에 꿰어서 만든 수정염주와 보리염주가 각각 1점씩 있다. 벼루는 구름과 용무늬가 있는 벼루인 운룡문단계연과 명문이 새겨져 있는 유명연, 도깨비나 짐승의 얼굴 모양을 형상화한 도철문이 새겨진 도철문연이 각각 1점씩 전한다. 운룡문단계연은 나무로 만든 벼루함이 있으며, 도철문연의 경우 돌의 재질이 좋고 조각도 매우 정교하다. 모필은 붓 7자루 가운데, 작은 붓이 1자루, 중간 크기의 붓이 2자루, 큰 붓이 4자루 있으며, 재료로 돼지털을 사용한 것도 있다.

김정희 유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전한다. “을묘칠정”은 1855년(철종 6)의 달력 표지를 뜻하는 을묘칠정(乙卯七正)이 쓰여 있고 표지의 오른쪽에는 ‘금칠십재(金七十齋)’라고 쓰여 있어 70세 되던 해에 제작하여 제목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에는 글씨가 작게 행서체로 써서 붙여져 있고 끝에 편지 2장이 붙어 있다. “상지십년용집협흡”은 1844년(헌종 10)의 달력이다. 안에 여러 종류의 습작서를 붙여 넣고 손자인 김한제의 글을 끝에 붙였다.

“십삼년정미첩”은 1847년(헌종 13) 때의 달력 제목인데 안에다 해서(楷書)의 글씨를 붙여 놓았다. “사공도시평첩”은 당 사공[벼슬 이름]의 시평을 큰 해서체의 글씨로 써서 글씨의 교본으로서 귀중하게 여겨진다. “소재첩”은 표제에 ‘소재첩’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원옹경본(院翁硬本)’, ‘이당(怡堂)’, ‘제첨(題籤)’, ‘신해경등루장(辛亥竟登樓藏)’이라고 쓰여 있다. 안에는 소재라는 호의 유래에 대한 해설이 있다.

“순우장하승비”는 중국 한대(漢代)의 비석인 순우장하승비를 보고 베낀 것으로 모두 14장으로 되어 있다. 예서대련은 김정희가 ‘세간양건사경독(世間兩件事耕讀)’, ‘천하일등인충효(天下一等人忠孝)’를 각각 따로 쓴 것인데 예서를 씀에 있어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의 작품이다. “척독초본”은 청나라의 학자인 왕맹자와 장보산이 보낸 편지를 베껴 놓은 것이다. “충술근수교훈묵의헌진장”은 표제 아래에 ‘충술근수교(忠述謹受敎)’, ‘훈묵헌진장(訓墨軒珍藏)’이라고 쓰여 있다. 안에는 김정희의 글씨가 있고 청나라 주학년(朱鶴年)이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 2점이 들어 있다.

서첩은 『금반첩』과 『심경첩』이 전한다. 『금반첩』은 독립된 행서체의 글씨로 크게 1행 2자 또는 3자로 쓰여 있다. 끝에 아우인 김명희의 글이 있다. 『경첩』은 반야바라밀다심경 전체를 해서체로 정성들여 쓴 진본으로 제목에 ‘심경’이라고 쓰고 안에는 선을 그어 1장에 3행 8자씩 썼는데 간혹 예외가 있다.

「김정희 영정」은 이한철(李漢喆)이 1857년(철종 8)에 그린 작품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을 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131.5㎝, 가로 57.7㎝이다. 오사모(烏紗帽)[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를 쓰고 쌍학문양(雙鶴文樣)의 흉배를 착용한 정장관복본(正裝官腹本)으로서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화면에 나타난 의자는 서구식 형태의 것이며 호피를 깔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했던 형식이다. 복식에 있어서는 당대의 특징인 듯 단령(團領)에 같은 감으로 동정을 두르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초상화는 붓질을 거듭해 안면의 요철을 살려내는 기법이 크게 유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정희 영정」의 화상은 전래의 필법인 선조기조(線條基調)의 화법에 의거하고 있다. 안면의 요철감(凹凸感)은 단순히 기복을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명암에 대한 고려는 없으며, 옷주름 처리 역시 선을 기조로 하여 약간 절제된 선염(渲染) 효과만이 병용되어 있다. 이러한 초상화에서 엿보이는 복고적 화법은 당시의 세도가였던 조인영(趙寅永) 및 조인영의 아들인 조병형(趙秉鎣)의 초상화에서도 나타난다. 「김정희 영정」의 화법은 19세기 중엽의 복고적 표현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동시에 차분히 가라앉은 사대부화상의 단아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김정희 종가 유물은 모두 종가에 전해진 물건으로 습작부터 완형의 서첩에 이르기까지 김정희의 서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김정희의 글씨를 연구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된다. 도장 역시 많은 수가 전하고 있어 김정희의 작품 판정에 도움이 된다. 특히 「김정희 영정」은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영정의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