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48
한자 遲受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부임|활동지 임존성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정의]

예산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벌인 백제 말기의 무신.

[개설]

지수신(遲受信)[?~?]은 백제 말의 무신으로, 왕은 도망하고 왕자들도 항복하였으나 임존성을 차지하고 끝까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다.

[활동 사항]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왜국의 후원을 받아 세력이 강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의 내분과 663년(문무왕 3) 9월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두릉이성(豆陵伊城)과 주류성(周留城) 등 여러 성이 함락되었다. 백제 왕으로 추대된 부여풍(扶餘豊)은 고구려로 달아나고, 왕자 부여충승(扶餘忠勝)과 부여충지(扶餘忠志) 등은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지만 지수신은 북부의 거점인 임존성에 웅거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주류성 함락 이후 왜로 망명하지 않고 남아 있었던 부흥군 세력은 거의 대부분 사로잡히거나 항복했지만 임존성만은 철옹성처럼 버텼다. 임존성은 지세가 험준할 뿐 아니라 성이 견고하고 식수 또한 풍부하여 많은 군사가 기거할 수 있었고 대흥벌 곡창 지대에서 양곡을 날라다 비축하여 식량도 풍부하였다.

신라군은 663년 10월 21일부터 김유신(金庾信)의 지휘하에 한 달 남짓 공격을 하였지만 임존성의 부흥군은 조금도 동요 없이 잘 막아내었다. 신라군은 초겨울에 접어들어 말에게 먹일 풀이 말라 가고 양곡도 바닥이 나 군사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리자 11월 4일 회군하였다.

신라군이 퇴각한 뒤에는 당군이 임존성을 여러 차례 공격하였지만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당의 무장 유인궤(劉仁軌)는 항복한 흑치상지와 사타상여에게 군사를 주어 임존성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어제의 동지가 창을 겨누는 참담한 상황에 놓이자 지수신임존성을 포기하고 해로로 고구려에 망명하였다. 이로써 3년간 계속된 백제부흥운동은 완전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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