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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982
한자 尹白南
영어음역 Yun Baeknam
이칭/별칭 윤교중(尹敎重),윤학중(尹學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형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성별
생년 1888년연표보기
몰년 1954년연표보기
본관 파평
대표경력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정의]

논산 출신의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활동사항]

윤백남은 1888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서 태어났다. 윤백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윤교중(尹敎重), 아명은 윤학중(尹學重)이다. 그는 1901년 경성학당 중학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의 와세대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에 진학하였다가 동경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그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 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당시 주목을 받던 일본 신파극과 영화에 심취했다.

귀국 후에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연극, 소설, 영화 등의 근대적 대중문화 창작활동에 나섰다. 먼저 연극 활동을 살펴보면, 1912년 조중환과 함께 극단 ‘문수성’을 창단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극인 「불여귀」, 「청춘」, 「눈물」 등을 공연하였고, 1916년 이기세와 함께 극단 ‘예성좌’를 만들어 「콜시카의 형제」, 「카츄샤」 등 서양 연극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191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운명」과 「국경」을 창작하였다. 1922년에는 ‘민중극단’을 설립하여 「기연」, 「영겁의 처」, 「화무정」 등을 공연했다. 1930년에는 김진섭, 유치진, 서항석, 이하윤, 이헌구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발족하여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소설 창작 활동을 살펴보면, 1930년 신문연재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소설로 일컬어지는 「대도전(大盜傳)」을 발표하고 이후 「해조곡」, 「대호전」, 「흑두건」 등의 장편역사소설을 발표하였는데, 대부분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고 일제의 탄압과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혼을 고무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작품들은 또한 신문 연재소설의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른 한편 영화 및 방송계에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1917년 영화사 ‘백남 프로덕션’을 창립하였고, 1923년에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맡은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의 맹서」를 제작했다. 또한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라디오 방송극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33년에는 경성방송국 문예부 주임으로 취임했지만, 1937년에는 만주 화북으로 이주하면서 재만 조선농림문화향상협회 상무이사에 취임했으며 이 무렵 영화 시나리오 「바다로 가는 사람」을 발표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국민대학 이사 겸 교수가 되었고, 6·25전쟁이 일어나자 종군하여 해군 중령으로 임관되어 해군 공보실장을 지냈다. 1953년에는 서라벌 예술학교 초대학장이 되었고, 1954년에는 예술원 초대회원으로 선임되었다.

[저술 및 작품]

소설로는 「대도전(大盜傳)」(1930)·「백련유전기」(1931년)·「해조곡」·「대호전」(1932년)·「봉화」·「흑두건」(1933년) 등이 있으며, 희곡으로는 「운명」·「야화」(1958년) 등이 있다. 영화로는 「월하의 맹서」(1923년)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문화부에 의해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예술제가 고향인 논산 지역을 비롯하여 대전광역시, 서울특별시 등지에서 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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