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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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柄欽-妻平澤林氏 |
영어의미역 | Gang Byeongheum and Hi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산9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연숙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효자와 열녀.
[활동사항]
강병흠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한겨울에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저수지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리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약을 달이는 등 병간호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버지 병에는 산삼이 좋다고 하며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강병흠이 할머니가 일러준 곳으로 가 보니 놀랍게도 산삼이 있었다. 이것을 캐어 정성껏 달여서 봉양하니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후 다시 아버지가 병환으로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였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옷자락에 항상 돌을 담고 다니며 고행하였다. 그 때문에 뭇사람들이 그를 포석효자(抱石孝子)라고 불렀다 한다.
강병흠의 처인 평택임씨도 역시 시부모님을 효성으로 봉양하였으며, 남편이 병에 걸리자 정성껏 간호하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수명을 연장시켰다. 그러나 남편이 죽자 결국 목을 매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22년 강병흠의 효행과 그의 처 평택임씨의 열행을 기리고자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1993년 정려각을 석조물로 개건하고 내부에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김용제(金容濟)가 짓고, 이종성(李鍾聲)이 글씨를 썼다. 비석의 전면에 ‘효자첨지중추부사강병흠려 배열녀숙부인평택임씨지려(孝子僉知中樞府事姜抦欽閭配烈女淑夫人平澤林氏之閭)’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