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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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君松 |
영어의미역 | Ssanggunsong Pine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종익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서 쌍군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노인회관 앞에 있는 묘 근처에 쌍군송이라 불리는 고색창연한 노송 2그루가 우뚝 서 있다. 독야청청 웅장한 모습과 품위, 고상한 자태는 마치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촌의 안동권씨 문중에 권육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권육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에 열중하여 조선 16대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이 되었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승지로 근무하고 있던 중 청나라와 화의가 맺어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후의 효종)이 청나라로 가게 되었다. 이때 권육은 두 왕자를 호위하여 청나라 땅 선양에 들어가 정성껏 시중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올 땐 발달된 명나라의 문물과 과학 서적 그리고 많은 교재를 들여왔다. 권육은 이 자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병기와 생활품을 연구·개발·제조하여 나라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컸다. 효종이 즉위하자 권육은 예조판서가 되어 국민 생활 안정에 힘썼다. 나이가 많아지자 노령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할 것을 임금한테 아뢰자 효종은 애석하게 여겨 왕의 특명으로 이산현감에 봉작하였다.
그 후 1654년(효종 6)에 이르러 권육이 67세를 일기로 눈감으니 효종은 권육을 영의정에 증직하고 갈미동(현 갈산리)에 묘소를 정하게 하였다. 또한 어명으로 권육의 충성심과 나라 발전에 공헌함을 기리는 뜻에서 묘전표송(墓前標松) 2그루를 심도록 하였다. 이때 소나무 묘목은 경기도 수원에서 채취하여 옮겨 심었다. 그리고 소나무 이름을 쌍군송(雙君松)이라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쌍군송은 모습이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각종 새와 해충이 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동설한에도 눈이 덮이지 않고 노송의 근처에는 강한 바람이 없어서 항상 온화한 기운이 돈다는 것이다. 신하의 죽음을 슬퍼하여 묘전표송 2그루를 심게 한 효종의 뜻이 담겨 있는 쌍군송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쌍군송」의 주요 모티프는 ‘권육의 충의’와 ‘효종대왕의 하사’이다. 임금을 정성껏 모시며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충신 권육이 죽자 효종이 소나무 2그루를 하사하여 권육의 무덤 앞에 심게 하였는데, 그 소나무를 쌍군송으로 부르게 하였다는 쌍군송 유래담이자 권육에 대한 인물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