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청주한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415
한자 淸州韓氏
영어의미역 Cheongju Ha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집성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입향시기/연도 1506~1544년연표보기
성씨시조 한란(韓蘭)
입향시조 한여헌(韓汝獻)

[정의]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중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먼 후손이 된다.

그러나 종래 기씨조선으로 알려졌던 고조선 사회는 실상 한씨조선이고,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며,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중시조는 고려 통일에 공을 세워 개국벽상공신에 책봉된 한란이다. 한씨는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15명, 재상 12명, 공신 24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다. 왕비도 6명을 배출하였다.

오늘날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는 한씨의 동족 부락이 적지 않아 신씨(申氏)와 함께 이 고장의 대성으로 꼽히고 있다. 청주한씨의 세계는 한란의 후대에서 30여 파로 나뉘는데, 그 중 후손이 많기로는 양절공파·문정공파·충간공파·몽계공파·관북파·충성공파 등 6파가 청주한씨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국세 조사에서는 가구 수 21만 8,821가구, 인구 70만 4365명으로 286성 중 제12위였다. 중시조 이후 14세손인 한계윤(韓繼胤)의 후계가 부여 등지에 이주하였고, 한계선(韓繼善)의 후손들이 대덕과 논산 등지에 세거하였다.

[입향경위]

문정공파(文靖公派) 한계희(韓繼禧)의 후손인 한여헌(韓汝獻)이 중종 대인 1506~1544년 노성(魯城)으로 낙향하였다. 숙종대인 1674~1720년 백석옹(白石翁) 한태상(韓泰相)이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의 탄동에 사는 전주이씨(일명 탄동이씨)를 부인으로 맞으면서 처가 동리의 이웃 마을인 텃골로 이거하였다.

[현황]

2008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 거주하는 한병수(남, 62세)에 의하면, 문정공파 한계희의 후손이 흔들, 통미, 평촌, 텃골 등 네 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세거하고 있다.

[관련유적]

한여헌 묘는 논산시 노성면에 있고, 한태상 묘는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탓골[德谷]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