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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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重滾 |
영어음역 | Jo Jungg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허종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조중곤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니혼대학[日本大學] 철학과를 다니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했다. 1927년 봄 김두용(金斗鎔)·홍효민(洪曉民)·한식(韓植) 등과 함께 제3전선사(第三戰線社)를 결성하고 기관지 『제3전선』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 무렵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 7월 제3전선사 순회강연단의 일원으로 함흥에서는 ‘무산문예(無産文藝)의 사적(史的) 고찰 급(及) 현계단의 예술이론’이란 제목으로, 8월 수원에서는 ‘수원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같은 해 9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전체대회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2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조선인을 위한 음악대회에서 불온한 시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같은 달 유영복(劉永福), 이상조(李相祚) 등과 함께 신간회(新幹會) 동경지회 선전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1928년 2월 소위 ‘제4차 조공(朝共) 검거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3월에 출옥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동경지부를 중심으로 기관지 『예술운동』에 주로 평론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해체 후에는 문단을 떠나 은둔생활을 했다.
해방 후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충청남도 위원을 지냈으며, 논산군 농민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11월 전국에서 조직된 인민위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조선의 완전 독립, 미군정과의 관계, 기타 당면 문제 등을 심의하기 위해 개최한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가했다. 같은 해 11월 30일 조선농민조합충청남도연맹 결성식에서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충남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월북하였고, 같은 해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기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저술 및 작품]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비평으로 「비(非)맑스주의 문예론의 배격」(1927)·「「낙동강」과 제2기 작품」(1927)·「예술운동 당면의 제문제」(1928) 등이 있으며, 소설로는 「아이쓰클림」(1927)·「산파역」(1927)·「동무의 편지」(1927)·「빼앗기고만 살가?」(1927)·「소작촌」(1930) 등이 있다. 「나의 길」은 1948년 월북 후 발표한 소설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