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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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歸浦-象徵-西歸浦七十里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창명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서귀포 칠십리축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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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서귀포 칠십리 국제 걷기 대회 축제 시작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 문화 관광 유망 축제로 선정 |
서귀포 칠십리 - 조선 시대에 지금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또는 서귀포 방호소]까지의 거리 |
[개설]
‘서귀포 칠십리(西歸浦七十里)’라는 말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또는 서귀포 방호소]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뒤에, 오늘날은 서귀포를 상징하는 말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서귀포 칠십리’의 의미]
조선 시대 초기에, 제주도를 세 고을[제주목·정의현·대정현]로 나누고 난 뒤에, 정의현청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의 관문까지 거리가 70여 리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정의현조를 살펴보면, 정의현성에서 홍롯내[洪爐川, 솟밧내]까지 거리가 64리이고, 서귀포 방호소까지 거리가 71리라 했다.
1679년(숙종 5)에 당시 정의현감 김성구(金聲久)가 쓴 『남천록(南遷錄)』을 보면, “정의현청 관아에서 옷귀[지금의 의귀리]까지가 30리이고, 옷귀에서 서귀포까지가 40리이다. 길은 모두 바다와 어우러져 있지만 험한 곳은 없었다. 70리를 지나는 동안 옷귀와 쉐둔[지금의 효돈] 두 마을을 제외하고는 사람 사는 곳이 없었다. 거칠게 멋대로 자란 풀들이 들판에 두루 널려 있고, 보이는 것은 끝이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18세기 말에 쓰인 『제주읍지』의 「정의현지」를 보면, “서귀리는 정의현청 관문에서 서쪽으로 70리의 거리에 있다.……천지연도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고, 서귀포도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다.”라고 했다.
최근에 서귀포 해안선의 길이가 70리라는 데서, 또는 서귀포 앞바다의 섬 둘레가 70리라는 데서 ‘서귀포 칠십리’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조선 시대에 서귀포는 정의현에 속했을 뿐만 아니라, 이름난 포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인이 많이 드나들면서 제주도 남쪽의 중요한 포구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정의현 우면 지역을 서귀면 또는 서귀읍이라 하면서, 읍과 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서귀포 칠십리’의 유행]
‘서귀포 칠십리’라는 말은 예로부터 민간에서 전해지기도 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가요로 불리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러다가 시인 겸 작사가인 조명암이 「서귀포 칠십리」라는 가사를 쓰고, 박시춘이 1936년에 작곡을 하고, 1938년에 남인수가 노래로 부르면서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1943년 6월에 나온 ‘오케(Okeh) 신보(新譜)’로 출반된 음반[음반번호 31167]의 가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가사 1〉
1.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2. 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 머리 빨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저녁달도 그리워라, 저녁별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졌다
3. 모래알이 철썩철썩 소리치는 서귀포 / 고기 잡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모래알도 그리워라, 자개알도 그리워라 / 서귀포 칠십리 맹서가 컸소
〈가사 2〉
1.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 진주 캐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라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2. 금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 미역 따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은조개도 그리워라, 물 파래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3. 진주알이 아롱아롱 꿈을 꾸는 서귀포 / 전복 따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물새들도 그리워라, 자갯돌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곱네.
광복 후에 조명암이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서귀포 칠십리」는 추미림·박남포 등의 가공 인물이 작사한 것으로 기록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사한 재취입 음반이 나오기도 했다.
〈1950년대 재취입 음반의 가사〉
1.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2. 은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 미역 따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은조개도 그리워라, 물 파래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3. 진주알이 아롱아롱 꿈을 꾸는 서귀포 / 전복 따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 물새들도 그리워라, 자갯돌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곱네.
오늘날은 ‘서귀포 칠십리축제’[2011년 현재 17회 개최]를 통해서 ‘서귀포 칠십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서귀포 칠십리’의 길]
옛 기록을 분석해 보면, 당시 중산간인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에서 서귀포의 서귀진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곳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의현성에서 옷귀[衣貴][지금의 의귀리]까지 거리가 30리였다. 성읍리와 옷귀 사이에는 가시리와 신흥2리, 수망리 등의 마을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신흥2리가 번성한 마을이 아니었고, 수망리는 의귀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었으므로, 두 마을을 거치지는 않은 듯하다.
조선 시대 후기에 옷귀에는 동옷귀와 옷귀[지금 의귀리 중심지 일대], 서옷귀[지금 남원2리의 서의동] 등이 있었다. 당시 서옷귀에 옷귀원(衣貴院)이 있었고, 열녀(烈女) 정씨(鄭氏)의 비도 세워졌다.
옷귀 위쪽에는 수망리가 있었고, 그 서쪽에는 부등개[지금의 한남리]가 있었다.
옷귀 위쪽 산간에는 산마장(山馬場)이라는 목장이 있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주로 산마 감목관 김만일(金萬鎰)을 비롯한 그 후손들이 주로 관리를 했다.
옷귀에서 서귀진까지는 40리였는데, 그 사이에 있었던 큰 마을은 쉐둔[牛屯][지금 상효리 일대]이었다. 이 마을은 조선 시대에 ‘쉐둔’이라 부르고 ‘우둔(牛屯)’으로 썼는데, 조선 후기에는 ‘웃쉐둔ᄆᆞ을’이라 하여 ‘상우둔촌(上牛屯村)’으로 썼다. 그러다가 ‘우둔(牛屯)’은 ‘효돈(孝敦)’으로 바꾼 뒤부터 ‘상효(上孝)’라 했다. 상효 동쪽에는 호촌(狐村)[나중에는 예촌(禮村)으로 바꿈]이 있었다.
호촌과 쉐둔은 영천내[지금 효돈천]를 경계로 나뉘는데, 마을 위쪽에 있는 목장도 이 내를 경계로 나뉘었다. 곧 동쪽은 산마장이 되고, 서쪽은 9소장이 되었다. 영천오롬[靈泉岳] 서쪽 영천내[靈泉川]에는 영천관(靈泉館)과 영천사(靈泉寺)가 있었다.
[서귀포와 주변 관광지와 문화재]
서귀포는 탐라(耽羅)가 중국 원나라에 조공을 할 때인 고려 시대에는 후풍처(候風處)로 이용되었고, 일제 강점기부터 중요한 포구로 이용되었다. 서귀포 앞 바다에는 범섬[虎島], 섶섬[三島], 문섬(文島), 옷벗은섬, 두라기섬 등이 있다. 그 안쪽에는 천지연폭포가 있고, 그 동쪽에는 정모시폭포[오늘날은 정방폭포라 한다]가 있다. 서귀포 서쪽에는 세미양오롬[오늘날은 삼매봉이라 한다]이 있고, 그 굼부리[분화구]에는 하논[大畓]이 형성되어 있고, 그 안에는 망소[藻淵]가 있다.
서귀포 바로 서쪽 해안가에는 제주도 지질 공원의 하나인 서귀포층이 있다. 이곳에는 천지연 폭포 입구에서 서쪽 해안가 절벽까지 1.5㎞에 걸쳐서 해양 퇴적물 층이 형성되어 있다.
문섬과 범섬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섬에는 감탕나무와 참식나무 등 27종의 상록활엽수가 있다. 특히 커다란 담팔수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제주도의 상록수림지대의 원식생이 그대로 보존되어 학술 연구 자료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지연폭포 일대의 난대림지대로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지정되어 있다. 폭포 아래 소에는 무태장어가 살고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방폭포는 바닷가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귀포 칠십리’의 문화]
1.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은 서귀포시 서홍동 천지연폭포 서남쪽 언덕을 끼고 조성되어 2007년에 공개되었다. 이곳은 효돈동 바닷가 쉐소깍에서 시작하여 호근동 바닷가 웨돌개에 이르는 제주 올레 6코스에도 포함되고, 이중섭 미술관에서 시작하여 소암 기념관까지 연결되는 ‘작가의 산책길’에도 포함되어 있다. 천지연폭포와 새섬·서귀항·문섬 등을 포함하는 서귀포 해안 경관, 서귀포에 바라보는 한라산 경관 등이 아름다워서 서귀포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서귀포 칠십리 야외공연장은 서귀포시 서홍동 천지연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 서남쪽인 서귀항 안쪽 칠십리로에 접해 있다. 서귀포시의 주요 야외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3. 서귀포 칠십리 축제
서귀포 칠십리 축제는 서귀포시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1995년에 처음 시작하여 2012년 현재 18회째를 맞고 있다. 이 축제는 해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짧게는 3일, 길게는 6일에 걸쳐, 천지연 폭포 일대와 서귀포시 일원에서 진행된다. 축제의 주요 내용은 칠십리 대행진, 개막 행사와 공연, 해순이 섬돌이 선발 대회, 미스터 칠십리 선발 대회, 칠십리 가요제, 새연교 문화 예술 공연, 시민 화합 한마당, 향토 음식점 운영 등이 있다. 이 축제는 문화관광부에서 2012년 문화 관광 유망 축제로 선정되었다.
4. 서귀포 칠십리 국제 걷기 대회 축제
서귀포 칠십리 국제 걷기 대회 축제는 1999년 처음 시작하여 2012년 현재 14회째를 맞고 있다. 해마다 3월 넷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출발하는데, 서귀포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해서 10㎞·20㎞·30㎞에 걸쳐 걷기 대회 행사가 진행된다. 이 축제는 국제시민스포츠연맹[I.V.V.]이 공인하는 행사로서, 참가자들에게 완보증·완보훈장 등 푸짐한 상품이 제공된다. 국내외 관광객과 시민이 함께 환상의 코스를 걸으며 서로의 우정을 나누고, 이웃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소중한 기회를 맛볼 수 있어서, 건강도 지키고 서귀포 관광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