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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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蘊遺墟碑 |
이칭/별칭 | 동계정선생유허비,동계정온유허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종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유배객 정온의 유허비(遺墟碑).
[개설]
정온(鄭蘊)[1569~1641]은 본관이 초계이며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이다. 태자 시강원의 필선(弼善)으로 있으면서 영창대군을 죽인 정항(鄭沆)을 그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하고 더불어 영창의 작위를 복원해야 함을 주장하고,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한 정조윤(鄭造尹)과 정호관(丁好寬) 등을 단죄하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1614년(광해군 6) 8월 대정현에 유배되었다. 1623년(인조 원년) 1월 인조반정이 일어남으로써 유배에서 풀려난 후 정계에 복귀하여 사간·이조참의·형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고,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으로 하여금 오랑캐에게 항복함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후 할복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고향인 경상도 거창군 덕유산 속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다 1641년(인조 19) 6월 죽었다. 조정에서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문간(文簡)의 시호를 내렸다. 제주의 귤림서원(橘林書院),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함양의 남계서원(濫溪書院)에 배향되었다.
[건립 경위]
정온 유허비가 건립되기 이전인 1682년(숙종 8)에 정온을 충암 김정·규암 송인수·청음 김상헌과 함께 귤림서원에 제주4현으로 배향하였다. 1799년(정조 23)에는 대정현감 부종인(夫宗仁)이 정온의 유허지에 서당을 세웠다. 정온 유허비는 1842년(헌종 8)에 제주목사 이원조(李源祚)가 1842년 대정현성 동문 밖에 세웠다.
[위치]
원래 안성리 막은골에 세웠었는데 1963년 보성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고 1977년에 현 위치인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보성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옮겨졌다.
[형태]
크기는 비신의 높이가 130㎝, 너비 62㎝, 두께 20㎝이며 재질은 제주산 조면암이다. 관석(冠石)이 있으며 재질 또한 조면암으로 되어있다.
[금석문]
이원조가 해서로 썼다. ( )안의 글자는 마모되어 추측하여 써넣었다.
1. 전면 본문
동계정선생유허비(桐溪鄭先生遺墟碑)
선생적려유허재대정지동성(先生謫廬遺墟在大靜之東城),부지현종인인기지벽서재(夫知縣宗仁因其址闢書齋),비거유사俾居儒士).부토인위정이지소선후(夫土人爲政而知所先後), 가가야(可嘉也).여리주(余莅州), 수알 선생우귤림(사)(首謁 先生于橘林(祠)), (수)읍지득 선생일율시일발문표이재지(修)邑誌得 先生一律詩一跋文表而載之). 우명공수석어기허(又命工豎石於其墟).오호(嗚呼), 선생덕의명절(先生德義名節), 여천지병립재지(제)생능지애호(與天地並立齋之(諸)生能知愛護),자석어위사야(玆石於爲士也), 무괴여어(無愧余於) 선생외예야(先生外裔也), 모 선생공이(慕 先生公耳), 하감사(何敢私). 숭정후사임인성주이원조근서(崇禎後四壬寅星州李源祚謹書).
(해석문)
선생께서 귀양살이 했던 집터가 대정현의 동성에 있다. 대정현감 부종인(夫宗仁)이 그 터에 서재를 짓고 선비들을 거처하게 하였다. 부종인 현감은 이 지방 사람으로, 정치를 행하면서 무엇을 먼저하고 뒤에 해야 하는지를 알았으니 가상하다고 할만하다.
나는 목사로 와서는 가장 먼저 귤림사에서 선생을 배알하였고, 읍지(邑誌)를 편찬할 때에는 선생의 율시 한 수와 발문 한 편을 찾아내어 이를 드러내어 실었다. 또한 석공에게 비석을 세워 그 터를 표시하게 하였으니 아, 선생의 덕의(德義)와 명절(名節)은 천지와 나란하였다. 서재의 제생들이 능히 이 비석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니 선비 됨에 부끄러움이 없다 하겠다.
나는 선생에게 외손이 되지만 선생을 경모하는 것은 공적인 것일 뿐, 어찌 감히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겠는가.
숭정 후 네 번째 임인년(1842년: 헌종 8)에 성주 이원조가 삼가 쓰다.
2. 우면
간역(看役) 접생(接生) 강서호(姜瑞瑚)
류종검(柳宗儉)
3. 좌면
감동(監董) 전동지(前同知) 이인관(李仁觀)
별감(別監) 김정호(金鼎洽)
[현황]
정온 유허비는 현재 안성리 보성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으며, 보존상태가 대체로 양호하고 글씨의 마모도 심하지 않아 육안으로도 판독이 가능하다.
[의의와 평가]
동계 정온은 10년간 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 동안 「덕변록(德辨錄)」과 「망북두시(望北斗詩)」, 「망백운가(望白雲歌)」 등을 지어 애군우국(愛君憂國)의 심정을 토로하는 한편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제주 사람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는 일에도 노력하였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정온을 제주 오현(五賢) 중 한사람으로 추앙하고 있다. 정온 유허비는 제주에서의 정온의 유배자취를 후세에 전하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