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61 |
---|---|
한자 | 和順里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610 |
시대 | 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김경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4월 27일 - 화순리 유적 제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12월 15일 - 화순리 유적 제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
현 소재지 | 화순리 유적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610번지 |
성격 | 유적터|마을터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마을 유적.
[개설]
화순리 유적은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당시의 마을과 관련된 유적이 확인되었다. 화순리 마을 유적은 제주 서북부 지역인 삼양동과 용담동 일대에 유행하던 송국리형 취락이 서남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조성된 유적에 해당한다. 출토 유물을 보면 대체로 삼양동 유적에 비해 다소 늦은 단계의 토기와 다양한 석기류가 확인된다. 특히 주변에 위치한 대평리·예래동 유적과 동시기에 형성되었던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이해된다.
[위치]
화순리 유적은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610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화순리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한국 남부발전에서 남제주화력발전소 3·4호기를 증설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주체가 되어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는 2005년 4월 27일~2006년 12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주거지 137동, 굴립주건물지(掘立柱)['박이기둥'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주춧돌 없이 그대로 땅에 박아 세운 나무기둥을 말함] 3동, 수혈유구 256기, 소토유구 18기, 매납유구 2기, 집석유구 2기, 이형유구 2기, 옹관묘 3기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화순리 유적은 해안변에서 한단 올라온 저구릉상의 평탄한 지역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창고천 지류를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바위그늘 유적과 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다. 황개천 일대에 이르러서는 해안과 인접한 곳에 유물 산포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황개천은 영구 유수천[마르지 않는 하천]으로 당시 사람들의 식수와 생활 용수로 활용되었다. 또한 해안변과 맞닿아 있어 해상 교통의 우월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출토 유물]
화순리 유적은 발굴 조사 결과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류를 살펴보면 적갈색 경질토기(赤褐色硬質土器)[고화도 소성의 경질계 토기를 제작하기에는 토양 조건이 열악한 제주 지역에서 무문토기 제작 수법을 한층 발전시켜 경도를 강하게 만든 토기] 중 삼양동식 토기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다시 늦은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외도동식 토기와 비슷한 형태의 토기도 상당수 확인된다. 적갈색경질토기는 크게 삼양동식 토기·곽지리식 토기·고내리식 토기로 구분할 수 있다. 삼양동·화순리 단계를 거친 후 외도동 단계에 이르면 전형적인 적갈색 경질토기 외반구연호(外反口緣壺)[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것]가 등장한다.
유물은 돌도끼·돌검·돌대패·공이돌·숫돌·갈돌·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청동과 철제품·옥제품 등이 확인되었다.
[현황]
화순리 유적은 주거지와 다양한 시설을 볼 때, 마을이 2~3차례에 걸쳐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주거지와 수혈유구 및 각종 시설물을 축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심지역이 이동되어 가는 것도 알 수 있다. 현재 화순리 유적지에는 화력발전소가 축조되어 있으며 그 외의 지역은 대부분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유적의 주변으로는 지표상에 다량의 토기편이 산포하고 있다. 유물의 보존 상태는 불량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화순리 유적은 제주도에 유입된 청동기 시대의 송국리문화가 삼양동과 용담동 등 제주시 지역에서 성행하다가 서남부 지역인 화순리와 예래동으로 확산되는 단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삼양동 유적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은 단계에 조성된다. 화순리 유적은 주변의 예래동·대평리 유적과 함께 제주 서남부지역 최대의 마을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이러한 마을이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제주 서북부 지역 및 남해안 일대의 다양한 집단들과 교류를 통해 발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제주 지역에 송국리문화가 유입된 후 변화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주변에 위치한 마을 유적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