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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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姓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으나 고려의 개국과 후삼국 통일과정에 참여한 호족들이 태조 왕건으로부터 성씨를 하사받으며 성씨의 사용이 확산되었다. 특히 호족들의 성씨는 출신지 또는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가 되어 갔다. 성씨에 관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265성, 『동국여지승람』에는 277성,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증보문헌비고』에는 496성이 기록되어 있다.
성씨의 수와 종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86개의 성씨가 나타나고 있으며, 제주도 내에는 224개 성씨가 분포하고 있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 전체적으로 인구수가 가장 많은 제1위의 성씨는 김해 김씨이며, 제2위는 제주 고씨, 제3위는 진주 강씨이다. (구)서귀포시 지역에는 제1위의 성씨가 김해 김씨인 것은 제주도 전체의 순위와 동일하나 제2위가 군위 오씨, 제3위가 경주 김씨인 점은 제주도 전체의 순위와 차이를 보여 (구)서귀포 지역 성씨 분포에 특징이 되고 있다.
[연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세거 성씨 중 김해 김씨는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제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군위 오씨의 도시조는 신라 22대 지증왕 때(서기 501년)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던 오첨(吳瞻)[무혜공(武惠公)]으로 전해지며, 도시조 오첨의 24세손인 동복군(同福君)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하고 있다. 오숙귀는 고려 숙종 때 19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를 지내고 군위군(軍威君)에 봉해졌다. 오숙귀의 후손들이 군위에 정착 세거하여 동복 오씨(同福吳氏)에서 분적한 뒤 본관을 군위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경주 김씨계의 원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대보공(大輔公) 알지(閼智)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경주 이씨는 신라 초기의 6촌(村) 가운데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하는 표암공(瓢巖公) 알평이다.
제주 고씨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라(高乙那)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주요 종파로는 성주공파(星主公派)·전서공파(典書公派)·영곡공파(靈谷公派)·문충공파(文忠公派)·장흥백파(長興伯派)·화전군파(花田君派)·문정공파(文禎公派)·상당군파(上黨君派)·양경공파(良敬公派) 등이 있다. 본관은 제주를 대종으로 하나 분계해서 개성·장흥·청주·안동 등으로 본관을 쓰고 있기도 한다.
진주 강씨는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강윤희(姜允熙) 등을 입도조로 하고 있다. 고부 이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평장사를 지낸 문헌공(文獻公) 이경조(李敬祖)이다. 광산 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왕자 김흥광(김興光)을 시조로 하고 있다. 남양 홍씨는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윤강을 입도조로 하는 성씨이다.
남양 홍씨는 세칭 당홍(唐洪) 집과 토홍(土洪) 집으로 분류되며, 제주에 입도한 남양 홍씨는 당홍(唐洪)이다. 남평 문씨의 시조는 신라 제20대 자비왕 때 사람인 문다성[남평백(南平伯)·무성공(武成公)]으로 그는 삼중대광벽상공신의 높은 지위에 오른 당대의 중신이다. 신라의 전신인 사로(斯盧)의 6부 촌장으로 정씨의 성을 하사받았던 지백호의 원손이며 안일 호장(安逸戶長)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받든다.
순흥 안씨의 시조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흥령현(興零縣)[순흥의 별칭]에 정착 세거하였으며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이다. 청주 정씨는 고려 의종 때 중랑장을 지낸 시조 정극경의 5세손 정해(鄭瑎)가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첨의찬성사에 올랐으며, 정해의 아들 정책이 통헌대부 판도판서에 오르고, 청하군(淸河君)[청주의 별호]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정극경을 시조로 하고 청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신천 강씨는 강호경(康虎景)을 시조로 하고 강영(康永)을 입도조로 하는 성씨로 곡산 강씨와 신천 강씨로 구분되나 신천 강씨로 통합되었다. 서귀포시 법환동이 신천 강씨 집성촌이다. 안동 권씨는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의(權誼)를 입도조로 하는 성씨로 서귀포시 지역 하효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주 한씨는 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천을 입도조로 하는 성씨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와 보목동에 모여 살고 있다.
[입향 경위]
제주도에 고(高)·양(梁)·부(夫) 삼성을 제외하고 다른 성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여 정착한 것은 남평 문씨 남제공파 제주 입도조 문탁[사간공]이다. 고려 명종 24년(1194) 문교의 선화 임무를 띠고 입도한 대제학 문탁은 중앙 문물을 제주에 전파한 후 돌아가지 않고 새 생활의 터전으로 제주에 정착하여 그 혈통을 잇게 한 것이 입향 동기가 된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공민왕 후기에서부터 조선의 새 정치 질서가 모색되는 태종대에 이르는 서기 1400년을 전후한 약 30년간에 걸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여말의 충신들이 속속 입도하기 시작함으로써 이 땅은 불복지신의 새로운 유배지로 탈바꿈했다.
고려 패망 후 신왕조에 출사를 거부하고 절개를 지켜 제주에 유배된 대표적인 인물은 고려 삼절신으로 불리는 좌정승 김만희(金萬希), 교리(校理) 이미(李美),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한천(韓蕆), 한림학사이며, 이방원(李芳遠)의 권력 다툼에서 발생한 왕자의 난에 연루돼 유배돼 온 전라 감사 강영(康永)이다. 이들은 제주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제주 4현으로 불린다. 제주에 정착해 선비정신과 고려의 고급 문화를 전파했고, 제주에 뼈를 묻으며 김해 김씨[좌정승공파]·경주 이씨[익제공파]·청주 한씨·신청 강씨의 입도조가 됐다.
[현황]
오늘날 제주인의 가문은 고(高)·양(梁)·부(夫) 삼성을 제외하고는 조선 왕조 500여 년간 정치적 대변화기에 권력의 미움을 사거나 사화에 휩쓸려 제주에 유배되어 돌아가지 않거나 어지러운 정치를 피해 제주에 뿌리를 내여 새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여 인맥이 형성된 것이다. 제주도 내에는 입도조를 모신 묘소가 있을 뿐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봄이 되면 각 입도조가 있는 산소에 후손들이 모여 제례를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조상 산소에 배향하고 나서 후손들이 음복을 하고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후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논의를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존재하고 있는 주요 성씨의 입도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홍윤강[남양인]·김윤조[광산인]·허손[양천인]·현사경[연주인]·김검룡[경주인]·강인덕[진주인]·강윤희[진주인]·강철[진주인]·박승조[밀양인]·박효신[밀양인]·박후신[밀양인]·송가금[여산인]·송남[여산인]·송진량[여산인]·신명려[거창인]·안득경[순흥인]·안수도[순흥인]·이팽성[전주인]·이광빈[전주인]·이부실[전주인]·이수억[전주인]·이세번[고부인]·오석현[군위인]·변세청[원주인]·전우선[천안인]·정붕[청주인]·좌형소[청주인]·윤빈[파평인]·윤자경[파평인]·김인충[나주인]·권의[안동인]·강영[신천인]·한천[청주인]
제주도 입도조들이 정착하고 나서 후손들이 점차 도내 다른 마을로 퍼져 살면서 입향 성씨가 되기도 했다. 입향 성씨들은 해당 마을의 설촌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제주도에는 벌초 또는 소분이라고 하는 풍습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데 음력 8월 명절이 돌아오면 반드시 조상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한다. 그때 그 마을에 입향한 산소를 마을 후손들이 참가하여 배향한다. 대표적인 서귀포시 관내 마을의 입향 성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귀포시 서홍동에는 고씨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성주공파 중 해안공계 선교랑공의 후손들이다. 입향조는 중시조 고말로의 34세손이며 해안공 귀남의 7세손, 선교랑판관 천수의 손자인 고윤이다. 또한 서홍동에는 원주 변씨들도 많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은 훈련공파 중 중랑장공계에 속하는 변운이다.
중문 마을에는 진주 강씨 수산파 인적공, 제주 고씨는 전서공파 고순신의 아들 선무랑 장수도 찰방을 지낸 고윤중, 김해 김씨는 좌정승공파 입도 9대손 안방계인 대해공, 광산 김씨는 문간공파 감선악 분파 제주 입도 9대손인 장직의 아들이며 호조 참판을 지낸 김명헌 공, 군위 오씨는 말파 언붕공의 아들 유학 익위공이며, 원주 원씨는 홍천공파의 세만의 아들 무량공과 성장·무언 형제이다.
상효동에는 김·양·부·홍·오 등 다섯 성씨가 살고 있다. 경주 김씨는 익화군 14대손인 석범의 3자인 입도 14세 경운공이며, 제주 양씨는 중랑장공 예촌계 말파 27세인 국전·국록 형제, 군위 오씨는 중말파 시조 입도 6세손 덕립공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는 양씨 집성촌으로, 입향조는 양씨 성주공 11세손인 수의부위 용양위부사직 유향좌수 윤공, 15세손인 어모장군 창신교위 유향좌수 화우공이다. 광산 김씨 입향조는 어행장군 유향좌수를 지낸 억령공이다. 동래 정씨는 시조 24세손 향교 훈장을 지낸 세공이며, 군위 오씨 입향조는 양달경공과의 혼인으로 이 마을에 거주하게 된 경발공이다. 보목동 마을은 한씨·양씨·강씨·이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동네를 형성하면서 마을이 갖추어지게 되는데 청주 한씨 집성촌이다.
청주 한씨 입향 성씨는 신공·치정공·경필공 등 다양하며 제주 양씨는 인공, 연주 현씨는 덕문공이다. 신천 강씨도 4개 파에 속하는 흥주공·종주공·종재공·태리공 등이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 내에서는 다시 그 마을 입향 성씨별로 후손들이 파를 형성하고 그 후손들이 단결을 결속하고 있다. 제주도 내에는 입도조를 중심으로 한 각 성씨별로 도 종친회와 문중회, 친족회가 구성되어 있어 선조들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