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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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입향 시기/일시 | 1596년 - 전주이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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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 - 전라북도 전주 |
입향지 | 전주이씨 입량지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
세거|집성지 | 전주이씨 집성지 -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강정동 |
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입향 시조 | 이팽성(李彭聲) |
[정의]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팽성(李彭聲) 등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으로, 태종무열왕의 10세손인 김은의(金殷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일가를 이룬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성(大姓)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시조의 22세손이 된다. 이 후손들은 공칭 1백22파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파는 왕자대군[적(嫡)]과 왕자군[서(庶)]을 파시조로 삼고 있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시대 구분에 따라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李安社)[목조(穆祖)]의 상계에서 갈라진 파와 이안사 이후 이성계 이전에 갈라진 파, 태조[이성계]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로 구분된다.
[연원]
제주도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성종 임금의 아들인 계성군파(桂城君派)와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그리고 중종 임금의 둘째 아들 해안대군파(海安大君派)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 성종 제2왕자 안양군파(安陽君派) 등이 살고 있다.
[입향 경위]
제주 입도조 이팽성(李彭馨)은 계성군의 현손이 된다. 시조 이한(李翰)의 33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계(李成桂)의 11세손이다. 정난과 반정,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4대의 아픈 경험을 간직한 이팽성은 1596년(선조 29)에 세속의 명리를 떠나 제주에 입도 낙향하였다. 20세에 제주도로 입도한 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다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안양군[성종의 3남]파의 제주 입도조는 차남 이만수를 입도 1세로 한다. 안양군 이행은 시조 이한의 28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계의 7세손이다. 1503년(연산군 9)에 형님인 연산군의 폭정을 직간(直諫)하다가 제주에 유배되었다. 이 인연으로 이만수는 제주에 낙향 제주 고씨를 배필로 맞아 정착했다.
효령대군[태종의 2자]파의 제주 입도조는 이광빈(李光賓)으로 중시조 이성계의 11세손이며, 파조 효녕대군(孝寧大君)의 8세손이다. 1610년(광해군 2) 제주목사로 도임하는 종형(從兄) 이기빈을 따라 왔다가 제주목 한경면에 정착하였다.
해안대군[중종의 2자]파의 제주 입도조는 이수억(李壽億)으로 시조 이한의 34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계의 12세손이다. 숙종이 장희빈의 소생을 동궁으로 책봉하고 인현왕후 민씨를 폐하는 등 기강이 문란해지자 내군외감(內君外監)의 신분으로 임금의 전횡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1697년(숙종 23)에 벼슬을 버리고 입도하여 정의현 성읍리에 정착했다. 해안대군파의 이부실(李富實)은 시조 이한의 35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계의 13세손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겸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다 국정이 어지러워지자 1674년(현종 15)에 벼슬을 버리고 부인 김씨와 함께 낙향하여 한림읍 대림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전주이씨 해안군파 이수억의 후손들은 입도조가 정착했던 땅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수억의 증손 이진번 대에 이르러 세 아들 제원·해원·한원을 둠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루게 된다. 제주에 사는 전주이씨 해안군파 중 이수억의 후손들은 장파[제원]·중파[해원]·말파[한원]으로 세분된다.
계양군파의 입도조 이팽성은 외아들 이득춘을 낳았으며 이 이득춘이 아들 열셋을 낳아 문중이 번성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제주도 계양군파는 전도적으로 13파를 형성하여 그 후손들이 발복하고 있다. 효녕대군파는 제주에 약 2천여 가구가 제주시를 비롯하여 한림·한경·대정·안덕·서귀에 분포하고 있어 계성군파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안양군파 이만수는 입도 후 4대까지 독자로 이어오다 5세손 이두춘 대에 이르러 정희와 정달 두 형제를 두게 되어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정희 후손들은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와 강정동을 중심으로 퍼져 살고 있으며, 정달 후손은 애월·한경·서귀포 등지에 산재하고 있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에는 7571가구에 24,818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귀포시 지역에는 1601가구에 5,227명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