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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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廷賓 |
이칭/별칭 | 흥숙(興叔),조헌(兆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재형 |
출생 시기/일시 | 1663년 - 오정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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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7년 - 오정빈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707년 - 오정빈 별시문과 병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10년 - 오정빈 사망 |
출생지 | 오정빈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군위 |
대표 관직 | 예조좌랑 |
[정의]
조선 후기 정의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군위(軍威). 자는 흥숙(興叔), 호는 조헌(兆軒)이다. 아버지는 오현(吳晛), 할아버지는 오덕립(吳德立), 증조부(曾祖父)는 오수간(吳守幹)이고, 외조부는 1666년(현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고홍진(高弘進)이다. 형제로는 오정신(吳廷臣)·오정인(吳廷寅)이 있다.
[활동 사항]
오정빈(吳廷賓)은 숙종대 문신으로 1663년(현종 4)에 현 서귀포시 토평동에서 오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1673년(현종 14)에 육상석역(陸上石役)이 불안전하다는 문제로 유배온 신명규(申命奎)에게 대정현에서 7년간 수학하고 이를 바탕으로 1687년(숙종 1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1689년(숙종 15)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정의현에 유배온 김진구(金鎭龜)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1706년(숙종 32)에 제주 순무어사(濟州巡撫御史) 이해조(李海朝)가 내도하여 시취한 제주 시재(濟州試才)에 입격하고, 이듬해인 1707년(숙종 33)에 한양에서 열린 계해 별시문과(癸亥別試文科) 전시(殿試)에 급제하였다. 이에 정의현에서는 일찍이 문과에 입격한 자가 없어 모두 그를 자랑스러워 하였다. 그는 성균관(成均館)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저작(著作)·박사(博士) 등을 두루 거쳤다. 그 사이에 승정원 가주서(承政院假注書)를 지냈는데, 규모가 있고 민첩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전적(典籍)·승의랑(承義郞)에 오르고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옮겨졌으며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임하였다. 1710년(숙종 36)에 만경 현령(萬頃縣令)으로 도임하여 1711년 재임중에 죽었다.
형제로는 오정신·오정인이 있고, 급제 자손으로는 오달행(吳達行)이 있다. 유배된 김진구(金鎭龜)에게 수학할 당시 동문으로 고만첨(高萬瞻)·정창선(鄭敞選) 등이 있는데, 1706년 제주 시재에서 입격할 당시 이들과 나란히 급제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조헌집(兆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