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39 |
---|---|
한자 | 朴彰振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혜 |
정려비 | 박창진 정려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자 |
본관 | 밀양 |
[정의]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가계]
대정군 구억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효자 박창진(朴彰振)은 밀양 박씨이며 가선대부 박봉천의 손자이며 향교 직원 박영상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박창진은 시골에서 자라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어려서부터 박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성이 착하였다. 부모를 아끼는 성의와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사람들이 ‘닭의 무리 중에 학이다’라고 칭찬하였다.
나이 20세에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을 봉양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니, 중년의 나이에 그의 아버지가 병에 걸렸는데 항상 떨어지지 않고 밤에도 옷을 풀지 않고 뜬눈으로 간호했으나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6년을 더 모시다가 끝내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실성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제사를 예법에 따라 모시고 여막을 지어 3년을 살았으며 삭망이 지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항상 산소를 찾았는데 비와 눈이 온 후에는 청소를 하고 탈복한 후에도 제삿날에는 목욕제계하여 초상 때와 다름없이 하여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상훈과 추모]
유림에서 상을 내리자 마을에서는 비를 세워 그의 효행을 기렸다. 비석은 대정읍 구억리 보성초등학교 구억분교 맞은 편 도로변에 있다. 앞면에 ‘효자박창진문(孝子朴彰振門)’이라 새기고, 다른 면에는 그의 사적(事績)과 가계(家系)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