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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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泰祐 |
이칭/별칭 | 최태유(崔泰裕),최태유(崔太俞),최진수(崔珍洙)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금순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최태우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체포, 투옥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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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법정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
추모각 | 의열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선봉집사|남안사 창건|두수암·동화사 주지 |
[정의]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 마을 주민 등 700여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여, 도순리 법정사에서 출발하여 중문리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전선과 전신주를 잘라 통신을 끊고,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집단 구타하는 등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최태우(崔泰祐)는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에서 거사를 계획하던 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선봉집사로 대중을 지휘하고 일본인을 구타하는 등 앞장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최태우는 9월부터 법정사 항일 운동 사전 계획에 참여하여 곤봉 및 깃발과 격문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는 선봉집사로서 선봉대장 강창규(姜昌奎)를 도와 대중을 지휘하였다. 일본인 고이즈미 키요미[小泉淸身]를 때리고 묶어서 길가에 버렸다. 최태우는 「수형인명부」에 전남 나주군 남면 사상리가 출생지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러한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태우가 거짓 주소를 기록해 놓아야 하는 상황은 법정사 항일 운동 조사 단계에서 이전의 경력을 숨겨야하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최태우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와 상해죄 그리고 체포의 행위 등의 병합죄에 해당하여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복역 이후에는 승려로서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남안사를 창건하고 신산리 두수암, 성산리 동화사 주지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 발상지(戊午法井寺抗日運動發祥址)에 건립된 의열사에 영정이 모셔져 독립운동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