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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08
한자 宋達五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송달오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송달오 경성고학당 1학기 수료 후 자퇴
수학 시기/일시 1931년 3월 - 송달오 서귀보통공립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송달오 서귀리에서 야학 실시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송달오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50년 7월 18일연표보기 - 송달오 사망
출생지 송달오 출생지 - 서귀포시 서귀동 454 번지 지도보기
활동지 송달오 야학강습소 운영 - 서귀포시 서귀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서귀리 독서회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송달오(宋達五)는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봉주(宋奉柱)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송달오는 1931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상경하여 경성고학당(京城苦學堂)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1학년 1학기를 수료하고 자퇴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송달오는 오사카(大阪)의 동아고무공장의 직공(職貢)으로 일하다 동지들과 함께 야학을 통해 항일 의식을 고취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서 귀향하였다. 귀향 후 1935년 3월까지 제주운수주식회사와 포목상점에서 일하다 후에 농사일을 하였다. 이 시기 사회주의 사상가인 이도백(李道伯) 등의 지도 교양을 받아 『플로레타리아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에 관한 도서를 탐독하며 공산주의에 공명하게 되었다. 또한 동지들과 함께 반전론(反戰論)을 역설하며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대 차별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1934년부터 송달오송순혁(宋純赫)·강원화(康元化) 등의 동지들과 함께 야학을 실시하면서 일제에 대한 계급적 저항의식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일로 전남경찰부 노경부(盧警部)의 지시를 받은 제주경찰서에서 1935년 8월 18일 그를 포함한 연루자 41인을 검거하는 소위 ‘서귀리 독서회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3개월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송달오를 포함한 송순혁·강원화·변성현(邊聖現)과 함께 기소되어, 1937년 6월 4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광주지법목포지청의 판결문에 따르면, “강봉주를 지도자로 마르크스주의 화폐론 등 사회과학에 관한 서적을 윤독·연구·비판·토의를 하며 공산주의 의식을 향상시켰고 대중을 공산화 하기 위하여 소감문을 작성하여 의식 향상에 노력하였다.”고 하면서 범죄의식을 갖고 이를 행한 자로 규정,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하였다.

이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인물 중 한 명인 강봉주(康奉周)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기소 중지되었고, 이도백·홍순성(洪淳性)·윤태석(尹太錫)·강윤직(康允直)·양봉춘(梁奉春)·김춘지(金春志)·강남옥(康南玉) 등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송달오는 1950년 7월 18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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