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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09
한자 宋純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송순혁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7년 - 송순혁 서귀공립보통학교 4학년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송순혁 서귀리에서 야학 실시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송순혁 서귀리 독서회 사건으로 징역 1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6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송순혁 사망
출생지 송순혁 출생지 -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송순혁 일본 거주지 - 고베시 수마구 간수정
활동지 송순혁 활동지 - 서귀포시 서귀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서귀리 독서회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으로 서귀리 독서회 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가계]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문준(宋文準)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송순혁은 1927년 서귀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한 후 고두호(高斗湖)주류판매소의 점원을 거쳐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1931년에는 이도백(李道伯)·안군오(安君五)의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과학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며 공산주의에 공명하였다.

1931년 1월부터 그는 홍순성(洪淳性)·윤태석(尹太錫)·강봉주(康奉周)에게 마르크스의 『화폐론』 등의 사회과학 서적을 읽도록 하여 소감문을 쓰게 하였고, 송달오(宋達五)와 함께 이도백의 결혼 피로연에 초청받아 이도백의 성연(盛宴)회식은 자본주의적 작태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1934년부터 야학을 실시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고, 1935년 3월에는 양원득의 집에서 야학소 학생 강정생(康貞生) 등 24명에게 “부자들은 보통학교에 가서 배우고 너희들은 가난하니 야학에서 배우는 것이 옳다”라고 하며 일제에 대한 계급적 저항의식을 강조하였다. 이 일로 전남경찰부 노경부(盧警部)의 지시를 받은 제주경찰서에서 1935년 8월 18일 그를 포함한 연루자 41인을 검거하는 소위 ‘서귀리 독서회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3개월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송순혁을 포함한 송달오·강원화(康元化)·변성현(邊聖現)과 함께 기소되어, 1937년 6월 4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광주지법목포지청의 판결문에 따르면, “강봉주를 지도자로 마르크스주의 화폐론 등 사회과학에 관한 서적을 윤독·연구·비판·토의를 하며 공산주의 의식을 향상시켰고 대중을 공산화 하기 위하여 소감문을 작성하여 의식 향상에 노력하였다.”고 하면서 범죄의식을 갖고 이를 행한 자로 규정,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하였다.

이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인물 중 한 명인 강봉주(康奉周)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기소 중지되었고, 이도백·홍순성(洪淳性)·윤태석(尹太錫)·강윤직(康允直)·양봉춘(梁奉春)·김춘지(金春志)·강남옥(康南玉) 등은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송순혁은 이후 1976년 11월 18일 일본 고베(神戶)시 수마구(須磨區) 간수정(干守町)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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