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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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九玹 |
이칭/별칭 | 안두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안구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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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1년 11월 - 안구현 중문리 청년회 사건으로 구속 수감됨 |
출생지 | 안구현 출생지 - 서귀포시 중문면 도순리 830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중문리 청년회 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개설]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아들을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따지는 일 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부대혁의 모친 소상 제례일 이었는데 ‘제례를 지내느라 아들 상례는 소홀히 한다’며 제례를 방해하였다. 이런 일이 있자 일제 당국은 이들 청년들을 가택 수색·협박·폭력 행위·제례 방해 등의 명목으로 구속하였다. 이는 일제 당국이 평소에 감시 대상이던 중문리 청년회원들의 항일운동에 대한 예방 차원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마침 1932년 1월 구좌 지역에서 발생한 해녀항일투쟁 처리 과정에서 일제 당국은 제주도 내의 항일 세력을 일망타진하고자 검거 선풍을 불러일으켜, 제주도 전역에 걸쳐 청년 남녀들을 1백 명 가까이 검속하였는데, 이때 앞서 구속된 중문리 청년들도 같이 연루시켜 목포형무소에 수감하였다.
[가계]
안구현(安九玹)은 일명 안두은으로도 불리웠다. 본관은 순흥. 1901년 중문면 도순리 830번지에서 안영화의 아들로 태어났다. 직업은 목수 일을 하였다.
[활동 사항]
안구현은 이 일로 인해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제례 방해·주거 침입’ 등으로 징역 10월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미결 기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