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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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聖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 이성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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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2월 - 이성예 무극대도교 사건으로 구속 수감됨 |
출생지 | 이성예 출생지 - 서귀포시 남원면 태흥리 116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무극대도교 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개설]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무극대도의 신도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그의 주장을 듣고 모여든 신자가 1천여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조선의 독립을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있는데다 교세가 날로 늘자 1937년 12월 제주경찰서의 다니모도[谷本] 고등계 주임은 무극대도교 교주 및 교도를 「치안유지법」과 「총포수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일제히 검거하였다. 10개월에 걸친 심문 끝에 일제 당국은 이들을 혹세무민하는 사교(邪敎)로 매도하여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을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는데 그 중에서 23명은 구속하고 44명은 불구속하였다.
[활동 사항]
본관은 전주. 1875년 서귀포시 남원면 태흥리 116번지에서 이휘근의 아들로 태어난 이성예(李聖裔)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약 1년 간 한문을 수학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한때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었다. 이어서 수운교를 믿다가 1936년 2월 고창길의 권유로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였다.
이성예는 1940년 12월 4일 무극대도교 사건으로 광주지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