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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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好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 운동가.
[가계]
1913년 출생.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할아버지는 현승오, 아버지는 1930년대 동아통항조합장을 지낸 현길홍이다. 오빠 현호진과 현호경도 노동 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현호옥(玄好玉)은 성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자전거공장 여공으로 일하였다. 오빠 현호경의 영향을 받아 1933년 2월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전협) 화학노조 오사카지부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1933년 남해고무공장 여공으로 오사카지부 동북구 남해공장 분회원이 되었다.
1934년 전협 오사카지구 화학노조 준비위원회 부인부장(婦人部長) 및 동(東)지구 야츠이 고무 공장반 부인부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메이데이 집회 및 기타 노동 운동에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또 오사카 히가시니리쿠 방면에 산재한 고무 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적색 스포츠단의 단원 확보에 주력하였고 전협 일본화학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1934년 메이데이 당일에 비합법적 메이데이 기념 집회를 감행할 계획을 준비하던 중 당국에 발각되어 같은 해 4월 11일 육복용·성철성 등 19명이 검거될 때 현호옥도 검거되어 7월 20일 함께 송치되었다.
1935년 10월 26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제주에서 살다가 1986년 대정읍 하모리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