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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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厚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규복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2월 - 고후삼 의병장 고사훈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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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8월 - 고후삼 성산면 시흥리에서 체포, 석방됨 |
출생지 | 고후삼 출생지 - 대정읍 영락리 |
성격 | 의병, 일진회 대정군지회 회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순사, 의병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 의병.
[활동 사항]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출생이다. 고후삼은 1905년(광무 9)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세력에 의해 제주에도 일진회(一進會)란 친일 매국 단체가 조직되자 대정군지회의 회원이 되었고, 경찰 순사(巡査)로 근무하며 통감부(統監府)의 지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1908년 5월경 민사소송 건에 연루되어 경찰에서 해임되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1909년 2월에 고사훈(高仕訓)[일명 高承天]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다.
1909년 3월 전라남도 경찰부장 경시(警視) 촌상칙정(村上則貞)이 내부(內附) 경무국장 송정무(松井茂)에게 보낸 「제주도 비도(匪徒) 정황보고」에 따르면, “[상략]…3월 1일 전보(電報)에서 대정군 중면 광청리(光淸里)[현 동광리(東廣里)·서광리(西廣里)]의 의병대장(義兵大將) 고승천(高承天)·이중심(李中心) 2인이 조선구법(朝鮮舊法) 회복(回復)을 위하여 폭도 60여명을 모아 인민을 선동하고 제주성을 습격한다는 대정주재소(大靜駐在所)로부터 급보가 있었다. 일·한순사 4명을 사실수색(事實搜索)을 위하여 파견하였다.…[중략]…동일 제2전보 폭도의 거괴(巨魁)는 육지로부터 도래한 2명과 전 일진회원(一進會員)이며 작년 5월의 면직순사(免職巡査)였던 고후삼(高原三)으로 산로(山路)와 해안의 2로로 나누어 제주에 내습중(來襲中)이라고 한다.…[중략]…이상의 정보에 대하여 일·한순사 4명을 정찰로 파견하여 그 보고에 의하여 즉시 출행 타격을 가할 계획이다.…[하략]”라고 전하고 있다.
이처럼 당시 고후삼을 비롯한 전 일진회원 20여 명은 대정의 신평리(新坪里)를 거쳐 구석왓[九石田][현 九億里]에서 동지를 규합하던 중에 일본 경찰이 이를 저지하면서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일본 경찰에 의해 고사훈이 순국하면서 의병대 지휘부가 와해되자 고후삼은 성산면[현 성산읍] 시흥리(始興里)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1909년 8월에 일본인 순사 시노하라[下原新藏]와 한국인 순사 강태수(康泰洙)에게 체포되어 제주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게 되었으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사유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