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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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道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철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 항일 운동가.
[가계]
본관은 고부이며 이원옥의 아들로 1909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도백(李道伯)[1909~?]은 1923년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4학년때인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영향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그 후 서울의 경성고학당을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다. 보성전문학교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1932년 3월 서귀포로 돌아와 서귀리 독서회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5년 서귀리 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1945년 11월부터 서귀면 인민위원회의 재정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47년 3월 남로당에 가입하였고, 1947년 7월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7년 3·1절 기념대회 때에는 서귀면당 위원장직을 수행하였다. 이때 미군정청 포고령 위반 등으로 벌금 2만원 형을 선고 받았다.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은신하였다가 검거되어 징역 2년을 선고 받아 복역하였다. 형기를 마친 후 일본으로 밀항하였고, 그 후의 생활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