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25 |
---|---|
한자 | 李善實 |
이칭/별칭 | 이화선,이선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917년 - 이선실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이선실 남로당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 이선실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 이선실 부산에서 간첩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82년 - 이선실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선출됨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이선실 북한 ‘영웅’ 칭호 받음 |
출생지 | 이선실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성격 | 항일운동가|남파 간첩 |
성별 | 여자 |
본관 | 고부 |
대표 경력 |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남파 간첩.
[가계]
1917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재춘(李在春), 어머니는 김경량(金庚良)이다. 형제로는 이창국·이치효[이창주]·이창화·이창흥·이창삼·이창복·이창계가 있다. 김성숙은 이선실의 시숙부였다. 이선실은 신유의숙의 스승이자 제주향토사학의 대가 김태능의 제수이기도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같은 마을 출신으로 쓰시마[대마도]에서 잠수부로 일하던 김태종과 결혼했으나 이혼하였으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양자를 2명 입양하였고 이들은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
[활동사항]
이선실(李善實)은 회을 김성숙이 세운 가파도 신유의숙에서 4년을 수학하였다. 신유의숙 시절에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던 김한정·이정백 같은 여러 우국지사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김한정 등이 이끄는 매주 토론학습에서 달변과 정연한 논리전개로 늘 최고의 토론자로 선정되었다. 신체가 강건하여 해녀일을 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가파도 해녀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섰다.
1948년 이복동생 이창하(李昌夏)가 4·3 사건으로 억울하게 총살된 데 불만을 품어 부산에서 남로당(南勞党)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6·25 전쟁 직전 월북하였다. 부산에서 항일투사 김무안의 숙모인 강기수와 상당 기간 같이 지내다가 소년단 운동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활동이 어려워짐으로 북한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북에서 간첩 교육을 받아 부산에 남파되어 1966년부터 1973년까지 공작활동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가 북한에서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수차례 간첩활동을 벌이며 남한 내 북한 공작지도부를 구축하여 1992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44돌 행사 때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북한공산당 서열 22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1990년 5월에는 북한 최고 영예인 ‘영웅’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