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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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泰能 |
이칭/별칭 | 춘송(春松)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906년 - 김태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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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2년 - 김태능 사망 |
출생지 | 김태능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성격 | 향토사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출신의 향토사학자.
[가계]
호는 춘송(春松)으로 1906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할아버지는 김이황계, 아버지는 김성춘이다. 동생 김태종(金泰鍾)은 1960년대 부산 등지에서 간첩 활동을 한 이선실의 남편이었다. 숙부는 신유의숙을 개설하여 항일운동과 민족계몽운동을 한 회을 김성숙(金成淑)이다.
[활동 사항]
김태능(金泰能)은 어린 시절 숙부인 김성숙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한학을 수학하고 대정보통공립학교를 거쳐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김성숙이 개설한 신유의숙(辛酉義塾)에서 5년간 교사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만학으로 부산대학교 법정대 2년을 마치고 해난(海難)구조회사, 임산업(林産業) 등의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나 그만 두었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재경(在京) 제주도민회 간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때에는 피난 수도인 부산에서 5촌 당숙인 김성윤 내외의 도움도 받아가며, 동아대학에서 만학도로 공부하기도 하였다
김태능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역사를 가르치던 은사인 김도태(金道泰)의 영향을 받아 역사에 관심이 깊었다. 1950년대부터 제주에 관한 향토 사료를 발굴하였으며 제주향토사학의 기초를 다진 향토사학자로서 도민들에게 역사 의식을 심어줬다.
1962년에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하동포구에는 ‘가파도 개경(開耕) 120주년 기념비’가 설립되어졌는데, 이 비문을 김태능이 작성하였다. 그는 부단한 연구 활동을 하던 중 1972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태능은 타계하기 전까지 제주사에 관계되는 논문 63편을 발표하였는데, 주요 저서로는 『제주도사논고(濟州島史論攷)』·『제주도약사(濟州島略史)』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