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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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昌鶴 |
이칭/별칭 | 운남 |
분야 | 문화·교육/체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구철 |
출생 시기/일시 | 1927년 12월 5일 - 강창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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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4년 3월 - 강창학 흥신산업사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8월 8일 - 강창학 제주상공회의소 부회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강창학 제2회 서귀포시 시민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03년 1월 9일 - 강창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1월 11일 - 강창학 국민훈장 동백장 추서 |
출생지 | 강창학 출생지 - 서귀포시 하효동 311-10번지 |
성격 | 사업가 |
성별 | 남 |
본관 | 신천 |
대표 경력 | 제주농원 대표|흥신식품공업사 사장|제주상공회의소 부회장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출신의 사업가.
[가계]
강창학(康昌鶴)은 1927년 12월 5일 서귀포시 하효동 311-10번지에 태어났다. 본관은 신천(信川), 아버지는 강서구(康書龜), 어머니는 김씨이다.
[활동 사항]
강창학은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3월 일본 일신상업학교(日新商業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밀감 과수원인 ‘제주농원’을 인수하여 초창기 감귤농업을 주도하였는데 농원이 잘되었고, 그 무렵 서귀포시 도순동 출신의 고여아와 결혼하였다. 그 후 성산포 인근에 통조림공장과 서귀포 정방폭포 상류 부근에는 전분공장을 세웠고 ‘제주농원’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조금씩 땅을 매입하여 관상목을 재배하면서 차츰 부를 축적해 나갔다.
또한 1954년 3월 흥신산업사를 설립하였고, 1957년에는 오양표가 경영하던 군납 통조림공장을 인수하여 1959년 (주)흥신식품공업사로 개칭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다.
강창학은 제주도정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하고, 제주상공회의소 위원을 지내는 한편 제주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하여 제주 지역 상공인들을 이끌기도 하였다. 또한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서홍동 소재 1만 5000평의 과수원 제주농원과 삼매원 등 주로 관상수를 가꾸는 일과 흥신산업사·대창산업사 등 중소기업 등을 경영하며 큰 부를 이루었다.
이러한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강창학은 지역발전을 위한 기부와 소외된 사람들을 꾸준하게 돕는 등 부의 지역사회 환원에 앞장서서, 1950년 경에는 서귀포시 서홍동 301-1·2번지 일대 8,400㎡[약2,540평]의 부지를 기부하여, 당시 서귀국민학교 서홍분교장이 홍로국민학교로 승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학교는 1972년 서귀북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5월에는 서귀포시 상효동 1421-7번지 일대 6,626㎡ 부지 위에 연건축면적 605㎡의 현대식 노인복지시설인 성요셉 양로원을 건립하여, 제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 헌납하여 소외된 노인들을 보살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1988년 10월 서귀포시 강정동 1461번지 외 48필지 일대의 26만㎡[약 8만여 평]을 서귀포시에 기부하여 서귀포시가 스포츠 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에 서귀포시 당국은 처음에는 ‘중앙공원’이라고 불리던 공원 명칭을 이 땅을 기부한 강창학의 뜻을 기려 1999년 ‘강창학 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강창학은 1964년 8월 8일부터 1970년 6월 15일까지 제주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 3월에는 제주YMCA 제주지구 위원을 지냈으며, 이후에도 제주도체육회 부회장, 제주도정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강창학은 2003년 1월 9일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서귀포시는 강창학의 공덕을 기려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르려 하였다가 강창학의 생전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렀다.
[묘소]
강창학은 생전에 가족묘지가 있음에도 화장을 유언하여 따로 묘지를 조성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화장문화로 의식을 전환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상훈과 추모]
1989년 10월에 대한 적십자로부터 적십자 박애장 금상을 수여받았다. 1992년 서귀포시의 제2회 시민상에서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공로로 지역사회개발 부문 서귀포시민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강창학이 사망한 직후인 2003년 1월 11일 강창학의 기부와 지역발전을 위해 세운 공을 인정한 정부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였다.
지난 2010년에는 서귀포 발전의 원동력이 될 ‘서귀포시의 힘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