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995 |
---|---|
한자 | 李達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 이달빈 출생 |
---|---|
수학 시기/일시 | 1909년 - 이달빈 오사카상공보습학교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이달빈 관서지역 조선유학생회 주최 천주사공원 조선독립선언서 낭독과 시위에 참가 |
수학 시기/일시 | 1920년 - 이달빈 오사카부립대학 농학부 수의축산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이달빈 창경원 동물원장 겸 수의관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79년 - 이달빈 사망 |
출생지 | 이달빈 출생지 - 대정현 좌면 중문리 1907번지 |
묘소 | 이달빈 묘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569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수의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창경원 동물원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중문리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이달빈(李達彬)은 한국인 최초의 수의사이자, 창경원 동물원장이었으며, 한국마사회 창립에 공헌하였고, 제주 축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가계]
이달빈은 1893년 대정현 좌면 중문리 190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재익(李在益), 어머니는 연주 현씨이다. 백부(伯父)인 이재교는 한학자로 대정향교의 도훈장을 지냈다.
[활동 사항]
이달빈은 대정향교 도훈장으로 있던 백부 이재교로부터 해외유학을 권유받고, 1909년 제주인 최초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오사카상공보습학교[大阪商工補習學校]를 거쳐, 1916년 오사카부립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오사카부립대학에 다니던 중 1919년 2월 8일 관서(關西) 지역 조선유학생회 주최로 천주사(天王寺) 공원에서 있었던 조선독립선언서 낭독과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는데, 이때 잇카이노[渚飼野] 경찰서에 구금되어 심한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1920년 3월 22일 조선인 최초로 오사카부립대학 농학부 수의축산학과(獸醫畜産學科)를 졸업하면서 수의사 자격을 받아 한동안 홋카이도 목장 전속 수의사로 근무하며, 한국 종마와 일본 종마를 비교,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후 이달빈은 귀국하여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 현리 소재 이왕직의 난곡목마장에서 운영부장 겸 수의관으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관립수원고등농림학교 교수직 제의를 거절한 이후 조선총독부 요시찰 인물인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분류되어 많은 감시를 받았다. 그 후 계속되는 일본의 감시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조선총독부에 항거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에서 한국인 최초의 창경원 동물원장 겸 수의관으로 재직하였으며, 한국마사회 마산과장 겸 이용과장, 미군정청 기마헌병대 전속 수의관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당시 국립대학안이 수립되자 협조 요청을 받고 서울대학교 수의과 대학 설립에 참여하여 마정학·병리학 등을 강의하였다.
이후 6·25 전쟁 후인 1953년 8월 5일에 피난지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부산을 경유하여 제주에 귀향하였다. 이후 제주대학교 수의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후진양성에 힘쓰는 한편 제주 말산업과 축산업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1979년 11월 21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마정학』·『동물병리학』과 수의 관련 논문 등이 있다.
[묘소]
이달빈의 묘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569번지 속칭 빌냇도경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달빈은 1964년 농림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1969년에는 제주 축산업 발전에 공로를 인정 받아 제주지사 표창을 받았으며, 1997년 제주도지사 표창패를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