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3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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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岸-屈 |
이칭/별칭 | 황우지굴,열두 굴,황우지 열두 동굴,황우지 해안 열두 동굴 진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764-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백종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군이 파놓은 해안 진지 동굴.
[개설]
제주도 내에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이르러 일본군이 조성해 놓은 거대 군사 시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일본군 군사 시설은 비행장,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진지 동굴 등이 있는데 황우지 해안 열두 굴은 해안가를 돌아가며 인공적으로 파놓은 수많은 진지 동굴의 하나이다.
[건립 경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미군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제주도 근해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1944년 봄부터 미 해군 잠수함이 제주 근해에 자주 출몰하였다. 일본은 1944년 5월 제주도 비행장을 완성하여 미군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1944년 10월 미군에 의해 필리핀이 점령당하자, 일본은 제주도의 방위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여겼다. 1944년 12월 일본 방위 총사령부는 미군의 제주도 공략을 상정, 제주도를 전략상 요지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45년 초부터 제주도에 임시 포대의 엄호와 미군의 상륙 방어를 위한 해안가 진지 구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위치]
서귀포시 서홍동 764-1번지 해안 삼매봉 남서쪽 외돌개 동쪽 해안가에 있다.
[형태]
삼매봉 해안의 황우지 해안 열두 굴은 각각 15m 안팎의 거리를 두고 직선으로 나란히 뚫려 있으며, 높이 약 3m, 폭 약 3m~4.5m, 깊이 약 10m~30m이다. 열 두 동굴 중 열 번째 굴과 열한 번째 동굴이 서로 내부에서 연결되어 h자 형을 이루고 있다.
[현황]
해수에 의해 해안가 암반이 12곳 진지 동굴의 내부와 입구로 밀려들어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일본 자살 특공대의 특공 보트의 진입로 역할을 했을 시멘트 도로 또한 파손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황우지 해안 열두 굴과 같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강제에 의해 조성된 진지 동굴은 성산일출봉의 해안 절벽, 송악산 남동쪽 산이수동 해안 절벽, 고산 수월봉 해안 절벽 등 제주도 해안 곳곳에 남아있다. 이러한 진지 동굴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지배상과 식민지 백성에 대한 강제 노역의 현장을 고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