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4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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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錫鎬 |
이칭/별칭 | 내시부 상선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양화 |
[정의]
용인에 낙향해 살았던 대한제국기 환관.
[개설]
환관은 조선시대 왕실의 시중을 들던 특수한 관직으로 내시라고도 한다.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들 가운데서 뽑았으며, 대한제국이 종말을 고하기 직전인 1908년 일제에 의해 내시부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활동사항]
강석호는 환관 가운데 최고의 지위인 상선(尙膳)에 올랐고,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아관파천을 단행할 때 막후역할을 하였고, 이때 고종황제를 업어서 모셨다고 한다. 또 이준 열사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는 헤이그밀사 사건에도 고종황제와 헤이그밀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총애를 믿고 정권을 농단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뇌물을 좋아하여 비난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내시부가 사라지면서 용인으로 내려와 기흥구 서천동, 속칭 서그내마을에 터를 잡고 20년 이상 거주했다. 벼 종자만 3,000석이었다고 하니 그 부유함을 알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용인 지역 일대의 근대교육에 크게 기여했는데, 서천공립소학교, 송전초등학교, 삼일실업학교(수원) 등에 많은 재산을 희사했다고 한다. 서그내마을과 송전초등학교에 송덕비가 남아 있으나 서그내마을의 송덕비는 사라지고 없다.
[묘소]
묘소는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삼배울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