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31
한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문경호

[정의]

고려시대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채취하거나 제작하여 공급했던 특수 행정구역.

[개설]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하며, 주로 왕실·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 생산과 조달을 담당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향과 부곡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所)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생겨났다. 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소(紬所)·지소(紙所)·와소(瓦所)·탄소(炭所)·염소(鹽所)·묵소(墨所)·곽소(藿所)·자기소(瓷器所)·어량소(魚梁所)·강소(薑所)·다소(茶所)·밀소(蜜所) 등으로 구분되었다. 이들 소에서는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공납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여 상납하였다.

[관련 기록]

“월경처(越境處)는 덕산(德山) 임내인 내박소(乃朴所)와 해미(海美) 등처가 운천향(雲川鄕)에 월입(越入)하고, 덕산 북면(北面)이 합덕현에, 면천(沔川) 동면(東面)이 신평현에 들어와 있고, 덕산 임내인 내박소·해미·서산(瑞山) 등처가 대산부곡(大山部曲)에, 청양(靑陽) 남면(南面)이 상전소(上田所)에 들어와 있다.”[『세종실록(世宗實錄)』 권149, 지리지 충청도 홍주목]

“입석소(立石所) 옛 지명은 문석(文石)이며, 현 동쪽 16리[약 6.28㎞]에 있는데, 지금은 대지동촌(大枝洞村)이 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20, 충청도 예산현]

“내박소 주 남쪽 18리[약 7.07㎞]에 있다. 신곡소(薪谷所) 덕풍현(德豐縣)에 있다. 지금의 관청과 북쪽으로 17리[6.68㎞] 떨어진 곳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19, 충청도 덕산현]

[내용]

는 향, 부곡과 함께 부곡제의 한 부분을 이루는 행정구역이다. 고려시대 에 관한 기록은 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조에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조에 따르면 현재 확인되는 의 수는 경기도 7개소, 충청도 60개소, 경상도 49개소, 전라도 115개소, 황해도 10개소, 강원도 33개소, 함경도 1개소 등 총 272개소나 된다. 그중 예산 지역에는 내박소, 신곡소, 입석소 등이 있었다. 내박소는 현재의 예산군 덕산면 내라리, 신곡소는 덕산군 덕산면 북쪽, 입석소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로 비정된다.

의 주민들은 향, 부곡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농업에 종사하는 한편, 금, 은, 광산물, 해산물 등의 특산품이나 각종 먹, 소금, 종이, 자기, 옷감 등 수공업품을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컨대 종이 생산은 지소에서 담당했는데, 지소에는 장인과 소민이 있어 기술을 요하는 부분과 잡일을 나누어 담당하였다. 비단실이나 옷감을 짜는 역할을 담당한 곳으로는 사소와 주소가 있었다. 다른 소의 특산물이 남자들에 의해 생산되었던 데 비해 사소와 주소에서의 생산활동은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그 외에도 청자를 생산한 자기소, 소금을 생산한 염소, 숯을 생산한 탄소, 미역을 생산한 곽소 등 다양한 가 존재하였다. 먹의 경우에는 평안도 맹산에서 생산된 먹의 질이 좋아 이인로가 맹산의 지방관일 때 두 달 동안 5,000자루의 먹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파한집』에 남아 있다. 이인로가 먹을 생산한 맹산 역시 먹소였을 가능성이 크다.

[변천]

는 일반 군현에 비해 역이 과중하였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나 관직 진출 제한 등의 제약이 있었으므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에 고려 정부는 에 사는 주민이 공을 세우거나 봉기를 일으키면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공주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킨 것이나 몽골군을 무찌른 다인철소를 익안현으로 승격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말선초에 이르러 는 점차 소멸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때는 고적조에 별도로 수록될 만큼 흔적만 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향, 부곡, 장, 처 등과 함께 고려시대 부곡제의 현황과 운영 실태를 잘 보여 주는 예이다. 를 비롯한 부곡제의 폐지는 지방에 대한 중앙집권체제가 한층 더 강화되고 일원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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