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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초상을 치르고자 빈소에 깔았던 자리를 거두어 태우면서 베푸는 의식. 자리 걷기는 초상을 치르고 나서 죽은 이와 접촉했던 물건 중 시신 아래에 깔았던 자리를 거두어 옷가지와 함께 태우며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굿이다. 초상난 집에서 발인이 끝나고 나서 죽은 이의 아래에 깔았던 자리를 거두어 태운다. 이때 자리뿐만 아니라 망자의 옷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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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박승휴(朴承休)[1606~1659]는 조선 효종 대의 문신이자 효자이다. 예산군 광시면 신대리에 박승휴 효자 정려가 있다. 박승휴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미(子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충원(朴忠元), 할아버지는 생원 박호현(朴好賢)이다. 아버지는 정선군수를 지낸 석곡(石谷) 박안행(朴安行)이며, 어머니는 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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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이영원(李榮元)[1565~1623]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다. 이영원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자선(子善), 호는 용계(龍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이세달(李世達)이며, 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이윤우(李允宇)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황(李璜)이고 어머니는 생원(生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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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예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김구(金絿)[1488~153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벼슬이 홍문관부제학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당하였다. 김구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庵),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예몽(金禮蒙), 할아버지는 성균관사예 김성원(金性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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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발생하는 태풍, 홍수, 가뭄, 황사 등 모든 자연현상으로 인해 초래되는 인적 피해와 경제적 피해, 혹은 사회 경제 붕괴나 환경 손실 등의 재해. UN/ISDR(United Nations International Strategy for Disaster Reduction, 2009)[재해저감을 위한 UN 국제전략, 2009]에서는 자연재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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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발생하는 태풍, 홍수, 가뭄, 황사 등 모든 자연현상으로 인해 초래되는 인적 피해와 경제적 피해, 혹은 사회 경제 붕괴나 환경 손실 등의 재해. UN/ISDR(United Nations International Strategy for Disaster Reduction, 2009)[재해저감을 위한 UN 국제전략, 2009]에서는 자연재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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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의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형성된 기후·지형·지질·토양 등의 상태.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은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지들이 있으며, 예산읍에 인접하여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있다. 서산시와 시·군 경계가 되는 가야산지의 서쪽에는 봉산면과 덕산면이 있으며, 삽교천이 흐르는 고덕면·삽교읍·오가면과 예당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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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의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형성된 기후·지형·지질·토양 등의 상태.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은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지들이 있으며, 예산읍에 인접하여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있다. 서산시와 시·군 경계가 되는 가야산지의 서쪽에는 봉산면과 덕산면이 있으며, 삽교천이 흐르는 고덕면·삽교읍·오가면과 예당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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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가 있는 고려 말의 충신. 도응(都膺)[?~?]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도응의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도유(都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청송당(靑松堂)이다. 예산 지역 성주도씨(星州都氏) 입향조이다. 도응은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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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서예·전각가. 고봉주(高奉柱)[1906~1993]의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자위(子緯), 호는 석봉(石峰)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인풍을 형성하여 큰 영향을 끼친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고봉주는 1906년 예산군 예산읍 마상골에서 태어났다. 1920년 예산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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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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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박승건(朴承健)[1609~1667]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이(子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충원(朴忠元), 할아버지는 생원 박호현(朴好賢)이다. 아버지는 정선군수를 지낸 석곡(石谷) 박안행(朴安行)이며, 어머니는 교위(校尉) 조흥무(趙興武)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예산에 효자 정려가 있는 박승휴(朴承休)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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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서도민요의 하나.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사설난봉가」는 경기민요의 요소가 가미된 서도민요라고 볼 수 있다.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리원난봉가」 따위의 「난봉가」 계통의 노래 가운데 대표적인 노래로 꼽힌다. 「사설난봉가」는 본래 「개타령」이었는데, 노골적인 사랑 행위를 표현하는 사설로 바뀌면서 이름도 바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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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운상(田雲祥)[1694~1760]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재임 시 해골선(海鶻船)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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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전해지고 있는 손가락 형상을 닮은 바위에 관한 설화. 「손가락바위」는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전해지고 있는 탈해사(脫解寺) 손가락바위의 유래에 관한 지형지물 유래담이다. 탈해사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50미터 지점의 가파른 경사면에 손가락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다.형상이 마치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어서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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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고치를 생산하기 위해 뽕을 길러 누에를 치는 산업. 예산 지역의 기상은 춘잠기와 추잠기에 쾌청일수가 많고 일조시간이 길어 뽕나무 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뽕나무 재배에 있어 겨울철 동상해(凍霜害)가 적고 병충의 번식이 적어 양잠을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예산에 제사(製絲)공장을 설립하고 전시에는 공군 낙하용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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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덕산현감을 지낸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은 조선 후기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계축옥사로 유배당했다가 인조반정과 함께 복직하여 병조참판에 올랐다. 1631년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묻혔다. 이명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선조 때 청백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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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가을걷이 후 첫 수확한 쌀로 떡을 찌어 집안에 모신 가신에게 올리는 감사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해 첫 수확물인 햅쌀로 정성껏 떡을 찌어 조왕[부엌], 장광[장독대], 성주, 각 방, 변소, 대문, 외양간 등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둔다. 가을에 정성껏 찐 떡이므로 ‘가을떡[秋餠]’이라 하며, 집안을 위한다 하여 ‘집안떡’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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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외출했다 돌아온 후 갑자기 아프거나 몸에 이상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되는 잡귀를 물리치고자 베푸는 치병 의례 행위. 집 바깥은 ‘뜬귀신[客鬼]’이 돌아다니는 위험한 공간이다. 운이 나쁜 이가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갑자기 앓기 시작하면 그 질병의 원인을 뜬귀신으로 여겨 객귀 물리기를 베푼다. 객귀 물림, 해 물리기, 푸레박질, 장국 풀어내기라고도 하는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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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불천지위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학문 뿐만 아니라 효(孝), 애민(愛民)의 행적을 보였으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고청(孤靑) 서기(徐紀)[1523~1591],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충청도의 특이한 학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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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사람의 사망 후 매장까지 행해지는 모든 의례.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시신을 수습해 매장하고, 죽음을 사회적으로 종결하는 탈상에 이르기까지의 매 순간에 특별한 의례를 베푼다. 이러한 상장례에는 죽음을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준비하고, 죽음을 애도하며, 시신을 매장하고, 죽은 이의 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의례가 있다. 죽음이 확인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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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생긴 칼뱅주의 계통의 개신교 교파. 예산을 포함한 홍성 지역은 1900년대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민노아(閔老雅)[Frederick Scheiblin Miller]가 선교를 하였지만, 1907년의 선교 분할 협정에 의하여 감리교 측이 맡았다. 따라서 예산 지역에는 다른 교단에 비해 장로교회가 늦게 설립되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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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생긴 칼뱅주의 계통의 개신교 교파. 예산을 포함한 홍성 지역은 1900년대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민노아(閔老雅)[Frederick Scheiblin Miller]가 선교를 하였지만, 1907년의 선교 분할 협정에 의하여 감리교 측이 맡았다. 따라서 예산 지역에는 다른 교단에 비해 장로교회가 늦게 설립되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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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의 열녀. 장매읍덕(張每邑德)[?~?]은 조선 전기의 열녀로, 남편이 사망하자 3년간 여막살이를 마친 뒤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장매읍덕은 예산현의 호장(戶長) 장중연(張仲淵)의 딸이다. 장매읍덕은 스물세 때 남편이 사망하자, 남편의 무덤 곁에 여막(廬幕)을 세우고 3년간을 제사하며 소금과 장 등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삼년상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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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문환(張文煥)[1887~1947]은 1919년 4월 3일 예산군 고덕면 한내장에서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장문화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887년 1월 30일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서 태어났다. 예산 지역 3.1운동은 3월 3일 오후 11시 30분경 윤칠영(尹七榮) 등 여러 명이 예산읍내 동쪽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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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예산군 대지동면(大枝洞面) 지역일 때 장복실(長福실) 또는 장복동(長福洞) 이라 부른 데서 장복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군 대지동면 지역에 속하였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저평리(楮坪里), 비동(碑洞), 국화동(菊花洞), 위수동(渭水洞), 중봉리(中峰里), 웅동(熊洞)을 병합하고, 장복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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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북쪽 하천 옆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예산군 대술면 소재지에서 예산~아산간 지방도632호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6㎞ 정도 가면 북쪽에 장복리가 있다. 장복리 삼층석탑은 장복리 북쪽 하천 옆에 있는 산의 동쪽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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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장복실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장복실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저녁에 돌부처를 모셔 놓은 부처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를 공동으로 지내어 왔다.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는 2005년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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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에 있는 선돌.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논 한가운데 서 있는 선돌의 주변은 대체로 높은 산이 거의 없는 낮은 구릉이다. 서초정리 선돌은 마을 부녀자들이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마을 앞산이 풍수상 자궁 모양이어서 앞산의 기운으로 서초정리 남자들이 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남자의 남근 모양을 본떠 서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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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전해지고 있는 손가락 형상을 닮은 바위에 관한 설화. 「손가락바위」는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전해지고 있는 탈해사(脫解寺) 손가락바위의 유래에 관한 지형지물 유래담이다. 탈해사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50미터 지점의 가파른 경사면에 손가락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다.형상이 마치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어서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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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에 지내는 제사. 예부터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장승을 세웠다. 장승은 보통 긴 나무나 돌로 만들어졌는데, 머리에는 사람의 얼굴을 새기고 몸통에는 동서남북축귀대장군, 천상천하축귀대장군 등의 글을 새기거나 먹으로 썼다. 장승에 새겨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장승은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잡신을 내쫓는 구실을 했다.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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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열리던 사설 시장. 예산 지역은 국도32호선을 따라 동남쪽의 공주 유구읍으로 이어지고, 동북으로는 천안, 서쪽으로는 홍성으로 이어진다. 장항선의 신례원, 예산, 삽교 등 주요 역들이 예산군내에 들어서 있어 도로와 철도가 잘 갖추어졌으며, 대흥을 따라 북으로 난 무한천을 따라 내려가면 삽교천을 거쳐 아산만에 닿는 등 교통이 매우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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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지명을 장신리(長信里)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大興郡) 이남면(二南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동해리(上東海里), 하동해리(下東海里), 자개동(自槪洞)을 병합하고, 장신리라 하여 예산군 광시면에 편입되었다. 서부 및 북부에 무한천의 범람원 충적지가 비교적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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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기 출토지. 장신리 마제석기 출토지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가 출토된 곳이다.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를 지나는 도로의 북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냇가이다. 장신리 마제석기 출토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간돌검[마제석검(馬製石劍)]의 손잡이 일부분과 토기 파수부편(把手部片)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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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 장신리 미륵불은 광시면 장신리 하동해마을에서 장신교를 건너 남쪽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낮은 야산의 구릉에 서향하여 있다. 세로 257㎝, 가로 170㎝의 바위에 음각하여 만든 것으로 불상의 크기는 높이 180㎝, 폭 65㎝이다. 불상의 상부에는 나발(螺髮)[불상의 머리카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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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택리에 있는 장애인 재활 시설. 장애인의 교육, 직업, 문화, 여가 생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예산군에 설립하여 사단법인 예산군 장애인연합협회가 위탁 운영하는 지역 사회 재활 시설이다. 1989년 12월 30일에 시행된 「장애인복지법」제59조[장애인복지시설 설치] ①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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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택리에 있는 장애인 재활 시설. 장애인의 교육, 직업, 문화, 여가 생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예산군에 설립하여 사단법인 예산군 장애인연합협회가 위탁 운영하는 지역 사회 재활 시설이다. 1989년 12월 30일에 시행된 「장애인복지법」제59조[장애인복지시설 설치] ①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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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장윤식의 정려. 장윤식 정려는 장윤식(張胤植)[1817~?]의 효행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1905년 건립하였다. 장윤식의 아버지 장진급(張眞汲)[1776~1844]도 효행으로 1868년(고종 5) 광시면 신흥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장윤식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도(聖道)이다. 18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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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사관(李思觀)[1705~177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대리청정 기간 때 우의정으로서 정조를 보필하였다. 이사관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숙빈(叔賓), 호는 장음(長陰), 시호는 효정(孝情)이다. 아버지는 종성부사를 지낸 이기성(李基聖)이며, 어머니는 김유(金洧)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이기한(李基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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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이남면(二南面) 지역일 때 ‘긴 밭’이 있으므로 진밭미 또는 장전리(長田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이남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출리(砂出里), 시목리(柿木里)를 병합하고, 장전리라 하여 예산군 광시면에 편입되었다. 동북부와 남부에 100m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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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조선 후기 장진급·장형식 부자의 정려. 장진급·장형식 정려는 조선 후기 장진급(張眞汲)과 장형식(張亨植)의 효성을 기리며 세운 부자 정려이다. 예산군 광시면에 있다. 장진급과 장형식은 아버지와 아들로 예산 대흥군 사람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3년상을 눈물로 지내고 평생 시묘를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장진급이 1806년 명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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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조선 후기 장진급·장형식 부자의 정려. 장진급·장형식 정려는 조선 후기 장진급(張眞汲)과 장형식(張亨植)의 효성을 기리며 세운 부자 정려이다. 예산군 광시면에 있다. 장진급과 장형식은 아버지와 아들로 예산 대흥군 사람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3년상을 눈물로 지내고 평생 시묘를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장진급이 1806년 명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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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철환(李喆煥)[1722~1779]은 조선 후기 여주이씨(驪州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사람이다. 덕산에 정착해 실학을 계승하였다. 이철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길보(吉甫), 호는 예헌(例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하진(李夏鎭)이며, 할아버지는 이해(李瀣)이며, 아버지는 이광휴(李廣休)이다. 맏아들은 이재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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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여러 장터에서 각설이들이 부르던 노래. 「각설이타령」은 지역의 각설이패가 오일장(五日場)을 찾아다니며 불렀기 때문에 「장타령」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산 지역에서는 특수 집단인 각설이패가 있어 장날에 장터를 돌며 춤과 노래로 공연을 벌였다. 숫자풀이, 투전풀이 따위를 언어유희의 형태로 구성지게 불렀다. 구경하던 장꾼들이 돈을 주기도 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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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예산군을 거쳐 전라북도 익산에 이르는 철도. 장항선은 충청남도 천안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전라북도 군산과 익산을 연결하는 총연장 154.4㎞의 철도 노선이다. 1931년에 개통된 장항선은 예산군 구간에 예산역, 삽교역, 신례원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예산군 지역의 대외적 관문(關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예산군의 농산물을 외지로 반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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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서도민요의 하나. 「자진염불」은 「산염불」을 부르고 이어 부르는 노래이며, 황해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다. 주로 전문 소리꾼에 의해 불리는데, 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수심가(愁心歌)형의 빠른 노래이다. 「산염불」과 마찬가지로 불가의 노래에서 비롯하였으며, 내용도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다만 현대에 전승되는 「자진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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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서도민요의 하나. 「자진염불」은 「산염불」을 부르고 이어 부르는 노래이며, 황해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다. 주로 전문 소리꾼에 의해 불리는데, 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수심가(愁心歌)형의 빠른 노래이다. 「산염불」과 마찬가지로 불가의 노래에서 비롯하였으며, 내용도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다만 현대에 전승되는 「자진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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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는 산등성이의 낮은 부분.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은 지형의 특성상 동쪽의 차령산지(車嶺山地)와 서쪽의 가야산지(伽倻山地)에 높은 고개가 있을 뿐 남북으로는 고개다운 고개가 없다. 고개는 교통시설이 빈약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큰 제약이 되기도 했지만, 사람과 물자가 통과하는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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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출신의 효녀. 재개(再介)[?~?]는 조선 전기 덕산현의 노비 출신 효녀이다. 재개는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자기 다리의 살점을 베어 먹이고, 대소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피는 등 지극히 간병하였다. 부모가 사망한 후에는 노비 신분임에도 3년상을 치렀다. 이러한 재개의 효행이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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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는 재난 재해 대비·대응 및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상설 기구. 예산군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97년 1월 8일 제정된 조례 「예산군 재해대책본부의 운영등에관한조례」에 의해 예산군 재해대책본부가 신설되었고, 2006년 「예산군 재난안전대책본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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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는 재난 재해 대비·대응 및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상설 기구. 예산군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97년 1월 8일 제정된 조례 「예산군 재해대책본부의 운영등에관한조례」에 의해 예산군 재해대책본부가 신설되었고, 2006년 「예산군 재난안전대책본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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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는 재난 재해 대비·대응 및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상설 기구. 예산군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97년 1월 8일 제정된 조례 「예산군 재해대책본부의 운영등에관한조례」에 의해 예산군 재해대책본부가 신설되었고, 2006년 「예산군 재난안전대책본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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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19세기 미국에서 개신교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한 기독교 교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863년 미국에서 공식 출범하였다. 구약성서에서 ‘안식일’이었던 현재의 토요일을 계속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교리를 비롯하여, 기존 기독교 교리와 약간 차이가 나는 교리들을 지니고 있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가려고 일본에 갔던 이응현과 손흥조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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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정월이나 집안에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집안의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바라며 가신(家神)을 좌정시켜 집안을 편하게 하고자 법사가 행하는 무속식 종교 의례. 한 해의 시작을 복되게 시작하기를 바라며 정월 초순에 법사에게 안택을 의뢰한다. 집안의 재수를 비는 굿이라 하여 ‘재수굿’, 혹은 무고(無故)하기를 바라는 굿이라 하여 ‘무고 안택’이라 한다. 부정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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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저수지는 유수(流水)를 저장하여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시설이며, 하천에서 충분한 용수를 확보할 수 없을 때 하천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用水源)이다. 하천용수보다 시설비가 비싸고 수질이 떨어지는 결점은 있으나,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수온도 흐르는 물보다는 높은 경우가 많아 농업용수로서 유리하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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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부르는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경기민요. 「적벽가(赤壁歌)」는 경기 지역과 서울 지역에서 불리던 십이잡가(十二雜歌)의 하나이다. 십이잡가 중에서 「적벽가」는 가사의 짜임새가 흐트러지지 않아 「유산가」와 함께 최고로 쳐주는 노래이다. 적벽강 싸움에서 지고 화용도로 패주하던 조조가 관우와 만나 살려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여 겨우 살아나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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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에 있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산하 예산 지역 협의회.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예산지구협의회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시행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단위 봉사회 상호 간의 이해 증진과 공동 과제를 협의하고 능률적인 봉사활동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864년 12개국 대표가 제네바에 모여 제네바협약을 채택·조인함으로써 적십자운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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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의 묘 근처에서 출토된 여러 형태의 선사시대 청동방울.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근처 구릉에서 출토된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은 8각형 별모양의 각 모서리 끝에 방울이 달려 있는 팔주령(八珠鈴) 1쌍, 쌍두령(雙頭鈴) 1쌍, 쌍두령과 비슷하나 X자 형태로 둥글게 한 번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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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출신의 서예가 자암 김구가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벼루. 자암(自唵) 김구(金絿)[1488~1534]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고, 뛰어난 글씨 솜씨를 지녔으며, 안평대군·양사언·한석봉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전 자암 김구 벼루는 자암 김구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벼루이다. 전 자암 김구 벼루는 예산군 역탑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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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창립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산하의 예산 지역 교직원 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예산지회는 예산군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학원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교사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과 올바른 교육관 확립을 도모하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천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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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창립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산하의 예산 지역 교직원 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예산지회는 예산군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학원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교사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과 올바른 교육관 확립을 도모하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천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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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비 전근금의 효자비. 전근금 효자비는 선비 전근금(田斤金)[1691~1769]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69년(영조 45) 세운 비석이다. 전근금 정려와 함께 있었으나 1962년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효자비만 남아 있다. 전근금은 예산군 대흥의 미곡리에서 태어난 선비로 개명은 전태운(田泰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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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비 전근금의 효자비. 전근금 효자비는 선비 전근금(田斤金)[1691~1769]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69년(영조 45) 세운 비석이다. 전근금 정려와 함께 있었으나 1962년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효자비만 남아 있다. 전근금은 예산군 대흥의 미곡리에서 태어난 선비로 개명은 전태운(田泰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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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예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서사 구조를 가진 꾸며 낸 이야기. 설화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 낸 이야기이며, 보통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말한다. 크게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눈다. 예산의 설화는 주로 지역성과 역사성을 지닌 전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산에 전해 내려오는 지명전설로는 바위나 수목, 그리고 산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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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시원(田始元)[1677~173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6세손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아들 네 명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경상병사를 지낸 전운상(田雲祥), 둘째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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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운상(田雲祥)[1694~1760]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재임 시 해골선(海鶻船)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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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은 무과에 급제한 뒤 나주영장, 삼척영장, 전라우수사, 죽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희중(羲仲), 호는 석천(石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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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의 영정과 생활상을 그린 회화.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는 화가 김희겸(金喜謙)[생몰년 미상]이 그린,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한가롭게 쉬는 모습을 그린 그림 1점이다. 1979년 12월 예산문화원 주관으로 서울에서 개최한 유묵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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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윤정과 이예립 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조선 왕실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인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문성왕 때 사공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이한의 선대가 언제부터 전주에서 세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손 중에서 조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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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옹기명장이 전통옹기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만드는 옹기. 전통예산옹기는 4대에 걸쳐 160년을 넘게 계승해 온 대한민국 옹기 명장 황충길이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사용하기 간편하게 만든 옹기이다. 발효 옹기, 쌀독, 냉장고용 김칫독, 생황 옹기, 내열 옹기, 기타 소품 등을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다. 1855년 황춘백 옹기공방을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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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초파일, 칠석이나 특별한 날에 절을 찾아 부처 또는 절 내의 산신, 칠성 등의 신령에게 올리는 신앙 의례. 각 가정에서는 집안의 평안과 가정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절을 찾는다. 정기적으로 사월 초파일, 칠월 칠석, 구월 중구일, 정월과 시월의 길일, 매월 초하루 등에 불공을 올리며, 특별한 필요에 따라 절을 찾아 치성을 드린다. 절에 조상을 위한 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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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절일을 맞아 만들어 먹었던 음식. 명절 음식은 예산 지역에서 절기 혹은 절일(節日)이라는 특별한 날 여러 제사나 민속놀이 등의 행사 때 만들어 먹던 음식을 말한다. 명절 음식 혹은 절식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세시풍속(歲時風俗)과 직접 연결되는 식생활 풍습의 하나이다. 명절 음식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료를 이용하였고 각 계절에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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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남아 있는 옛 절터. 예산 지역에는 전역에 걸쳐 60개 이상의 절터가 남아 있다. 절터는 마을 사람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확인되고 있어서 현장 조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발굴 조사된 것은 극히 일부다. 따라서 각각의 절터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절터에서 수습되는 유물을 통해서 가장 많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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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점복과 관련한 신앙. 점복 신앙은 특정 지역 주민이 생활 속에서 만들어 낸 제의적 관습과 믿음인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점복은 질병과 빈곤, 음식, 농사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지능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未來事)나 부지(不知)의 일을 주술의 힘을 빌려 추리하거나 판단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예산 지역은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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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 정긍모(鄭兢謨)[1914~1980]는 한국전쟁 때 진해 통제부사령관으로 활약하였으며, 제3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정긍모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호는 매당이다. 아버지는 정인우이다. 정긍모는 1914년 예산군 예산읍에서 태어났다. 1933년 진해 고등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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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전통가옥. 정대영 가옥은 정대영의 할아버지 정홍모(鄭弘謨)가 조선 중기 무신 정현룡(鄭見龍)[1547~1600]이 터를 잡고 살던 곳에 1926년 건립한 가옥이다. 정대영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것으로 건축물이 잘 남아 있어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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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예산 오추리 고택은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에 있다. 건립 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옥의 특징으로 보아 19세기 초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집주인의 이름을 따서 예산 정동호 가옥이라 하였는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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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의 충신·효자·열녀의 행적과 의미를 기리기 위하여 나라의 명을 받아 세운 정려. 정려는 조선시대에 삼강의 덕목을 잘 지킨 효자, 충신, 열녀를 나라에서 포상한 것으로 대문에 명정의 기록을 현판으로 만들어 정문이라 하거나 마을 입구에 정려 정각, 또는 비를 세워 포장(褒奬)하였다. 넓은 의미로는 충효열(忠孝㤠)을 기리는 정각(旌閣),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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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정만석(鄭晩錫)[1758~1834]은 조선 후기의 예산 출신 문신으로,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만석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성보(成甫), 호는 과재(過齋),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하경(鄭夏卿)이고 할아버지는 정유신(鄭維新)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정기안(鄭基安)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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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에 거주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1900~1991]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 뒤 10여 년간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 및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중국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이동녕(李東寧)과 김구(金九) 등 임정 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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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에 조성된 행정안전부 지정의 정보화 시책 생활화 마을. 정보화 마을 조성 사업은 농촌, 어촌,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서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을 조성하고, 전자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해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2001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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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병휴(李秉休)[1710~1776]는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스승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문집을 발간하였다. 이병휴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경협(景協), 호는 정산(貞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 이지안(李志安)이고, 할아버지는 실학자 이익의 숙부인 이명진(李明鎭)이다. 아버지는 이침(李沈)이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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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북선원사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쇠북. 금고(金鼓)란 금구(金口), 반자(鈑子) 등으로 불리는 사찰 의식 법구 중의 하나인 쇠북을 가리킨다. 정우 6년명 북선원사 금고(貞祐六年銘北禪院寺金鼓)는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 금고이며, 1959년 예산에서 출토되었다.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표면 지름 34.7㎝, 측면 너비 7㎝이다. 금고의 중앙에는 쌍사(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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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한문준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한유충(韓惟忠)이다. 한유충은 대흥한씨의 시조로, 이후 후손들이 예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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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여발(李汝發)[1621~168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함경도·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어영대장을 지냈다. 이여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한천부원군(韓川府院君) 이의배(李義培)이고, 아버지는 한원군(韓原君) 이목(李穆)이며, 어머니는 현령 김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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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병덕(徐秉德)[1712~180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11년(순조 11) 궤장을 하사받고 기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손들이 서병덕의 영정, 요대, 옥배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의 사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병덕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유호(攸好), 호는 주은(酒隱), 시호는 정익(靖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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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예산 출신의 동학농민운동가. 정인교[?~1894]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응봉 지역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참여하였으나 실패하여 붙잡힌 후 처형당하였다. 정인교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정인교는 예산군 응봉면 주령리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언제부터 동학에 입도하여 활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산 지역 농민들이 대거 입도한 1892년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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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에 거주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1900~1991]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 뒤 10여 년간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 및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중국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이동녕(李東寧)과 김구(金九) 등 임정 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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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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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이담(李湛)[1510~1575]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의약·천문·산수·궁술에도 능했고 문장과 서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담의 본관은 용인(龍仁)이며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이며, 할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적(李績)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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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종호(鄭鍾浩)[1911~1979]는 예산공립농업학교에서 독서회, 좌익협의회, 예산학생동맹, 토요회 등을 조직하여 학생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정진호(鄭鎭浩)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종호는 1911년 6월 17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9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8년 예산공립농업학교(禮山公立農業學校)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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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정서적, 문화적, 물질적 욕구 충족과 상호 유기적 연계성을 갖는 지역 공간에 기반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활동 범위. 생활권은 역사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공동체 의식으로 결속될 수 있는 범위이자, 도보나 자동차 등을 이용한 일상생활의 접촉 범위 내에 있는 권역이며, 지역의 주민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행정구획에 구애되지 않고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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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종호(鄭鍾浩)[1911~1979]는 예산공립농업학교에서 독서회, 좌익협의회, 예산학생동맹, 토요회 등을 조직하여 학생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정진호(鄭鎭浩)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종호는 1911년 6월 17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9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8년 예산공립농업학교(禮山公立農業學校)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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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려는 정치권력 획득 및 이와 관련된 활동. 예산군의 정치활동은 주민이 투표를 통한 대통령,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지역단체장, 시의원 등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 그리고 선출된 지역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예산군청과 예산군의회를 통해 하는 지방자치 활동을 말한다.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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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치방(鄭治邦)[?~?]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공산정씨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묘사화 이후 정빈(鄭濱)[?~?]이 고덕면으로 입향한 이후이다.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정빈의 아들 정치방(鄭治邦)[?~?]이 인조반정 이후 공주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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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정치방의 충훈 행적과 일제강점기 효자 정해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정치방·정해열 정려는 충신 정치방(鄭治邦)과 효자 정해열(鄭海悅)[?~1928]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이다. 정려가 있는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는 공산정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입향조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정치방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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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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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학수의 정려. 정학수 정려는 정학수(鄭鶴秀)[1802~187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70년(고종 7) 세워진 정려이다. 정학수의 본관은 온양, 자는 춘백(春伯)이고, 아버지는 정동조(鄭東祚), 어머니는 김녕김씨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정학수는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깨물어 입에 피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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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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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문신. 신계영(辛啓榮)[1577~166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문인으로서 예산의 정경과 생활을 노래한 가사 「월선헌 십육경가」를 지었다. 신계영의 본관은 영산(靈山)이며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신종원(辛宗遠)이며, 어머니는 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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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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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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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현룡(鄭見龍)[1574~1600]은 무과 급제 후 신립(申砬)의 천거로 등용되어 회령부사, 종성부사, 북병사를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장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정현룡의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효손(鄭孝孫), 할아버지는 정이창(鄭李昌)이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인수(鄭仁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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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 정현룡 처 우봉이씨의 열녀 정려. 정현룡 처 우봉이씨 정려는 정현룡(鄭見龍)[1547~1600] 처 우봉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현룡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무신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예산 인물조에 의하면, 우봉이씨는 남편 정현룡이 함경도강계판관으로 부임하여 20년이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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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산내 암자. 정혜사(定慧寺)는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의 산내 암자이며, 비구승[남자 승려]들이 참선하는 선방(禪房)이다. 수덕사 홈페이지 또는 안내도 등에 정혜사라고만 표시되어 있으며 자세한 설명이 없다. 정혜사는 능인선원이라고도 하는데 선방이기에 선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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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조상을 추모하고 그 은덕에 감사하고자 집안 단위로 베푸는 의례. 제례는 제사를 지낼 때의 예의를 말한다. 예산군에서도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조상의 계보를 잇는 후손은 조상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기일(忌日)에는 기일제를 모시고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에는 시절 음식을 마련하여 명절 차례를 베풀며, 시월상달에 시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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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제비와 여러 새를 소재로 한 경기잡가.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제비가」는 경기잡가가 들어온 것이며, 앉아 부르는 긴잡가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유성기가 나오는 1930년대 이전까지는 잡가가 유행하였다. 서울에서는 광무대, 장안사, 연흥사, 단성사 등에서 전통 연희를 활발하게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심에 십이잡가가 있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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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한 해 동안 집안과 가족의 액운을 예방하고 복을 불러들이고자 행하는 다양한 의례적 행위들. 예산군에서는 일 년을 단위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므로 매년 첫 달인 정월에 액을 막으면 한 해 동안 내내 편안하다고 한다. 액이 미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복을 불러들이는 것이므로, 액을 막고자 개인을 위해서는 용왕제[요왕제], 서낭제, 횡수막이[홍수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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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산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새로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 건설업 등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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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19세기 미국에서 개신교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한 기독교 교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863년 미국에서 공식 출범하였다. 구약성서에서 ‘안식일’이었던 현재의 토요일을 계속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교리를 비롯하여, 기존 기독교 교리와 약간 차이가 나는 교리들을 지니고 있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가려고 일본에 갔던 이응현과 손흥조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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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예산 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서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교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예산 지역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광시면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1929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광시교회는 송기영으로부터 전도를 받은 김현기가 광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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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불교의 한 종파. 조계종(曹溪宗)은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을 일컫는 말이다.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승려인 종조(宗祖)는 도의국사(道義國師)이다. 도의국사는 신라 후기에 입당(入唐)하여 인가를 받고 조사(祖師)가 되어 신라로 돌아와 최초로 선(禪)을 전하였다. 부처의 깨달음인 선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전한 인물이 초조(初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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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신자 공동체. 예산군 신암면 조곡길에 있는 공소로 천주교 박해 때 부터 내포 지역 천주교회 발전의 중요 역할을 맡았다. 1910년대 조곡리공소의 전신인 오산리[또는 오촌리]공소가 설립되었고, 1950년대 조곡리[새실]공소가 설립된 것은 박해시대부터 이어져 내려 온 신앙의 맥을 이어서 예산 신암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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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예산군 입암면(立岩面) 지역일 때 ‘새(풀)’이 많았으므로 새실 또는 조곡(鳥谷)이라 부른 데서 조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군 입암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점촌리(店村里), 중야리(中野里), 산촌리(山村里)를 병합하고, 조곡리라 하여 예산군 신암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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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고분군. 조곡리 고분군은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동쪽 도로변 낮은 산 정상부에 있다. 고분은 2기로 생성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예산군 예산읍에서 국도45호선을 따라 삽교읍방면으로 4㎞ 정도 가서 북쪽 신암면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조곡리가 나온다. 조곡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동쪽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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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예산군 예산읍에서 국도45호선을 따라 삽교읍 방면으로 4㎞ 정도 가서 북쪽 신암면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조곡리가 나온다. 조곡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동쪽 도로변에 낮은 산이 있다. 고인돌은 산의 남향 경사면을 깎아 개간한 1,000여 평[약 3,310㎡]의 밭 북쪽 끝에 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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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신자 공동체. 예산군 신암면 조곡길에 있는 공소로 천주교 박해 때 부터 내포 지역 천주교회 발전의 중요 역할을 맡았다. 1910년대 조곡리공소의 전신인 오산리[또는 오촌리]공소가 설립되었고, 1950년대 조곡리[새실]공소가 설립된 것은 박해시대부터 이어져 내려 온 신앙의 맥을 이어서 예산 신암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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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서 지내는 마을 제의.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윗새실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평안과 마을 사람들의 무병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내는데, 조곡리 가까이에 있는 중외리와 별리에 거주하는 사람들 일부가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당산제를 지내는 산제당은 마을에서 ‘당집봉’이라고 부르는 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산제당의 형태는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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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사헌부장령에 이르렀으며, 효행과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곤(趙鵾), 할아버지는 조흥무(趙興武)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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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신도비. 조극선 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29년 건립되었다. 비문은 1680년(숙종 6) 윤증이 찬하였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이다. 조극선은 조경진(趙景璡)의 아들이고, 박지계(朴知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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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있는 효자 조극선과 조정교의 정려. 조극선·조정교 정려는 조극선(趙克善)[1595~1658]과 조극선의 7세손 조정교(趙鼎敎)[1806~187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조극선은 1664년(현종 5) 명정을 받고, 조정교는 1875년(고종 12) 명정을 받았다. 조극선 정려는 원래 시동리와 이웃한 당곡리에 세워졌다.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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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묘.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묘는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박지계(朴知誡)·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23년(인조 1) 학행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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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의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통가옥. 이한직 가옥은 2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 말기 영의정이었던 심암 조두순(趙頭淳)[1796~1870]이 살았다고 전한다. 조두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주(陽州)이며 자는 원칠(元七), 호는 심암(心菴)이다. 40여 년 동안 벼슬을 하면서 순조, 헌종, 철종, 고종을 보필하였다. 흥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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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조림초등학교는 ‘튼튼한 기초 위에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배움인, 건강한 활동과 다양한 체험을 통해 꿈과 끼가 성장하는 건강한 다꿈인, 존중과 배려가 있는 어울림 속에 행복이 성장하는 민주 시민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54년 3월 15일 신암국민학교 조림분교장으로 인가받았다. 1956년 4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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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복양(趙復陽)[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복양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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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사석(趙師錫)[1632~169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왕세자 책봉 하례에 참석하지 않은 죄로 고성(固城)에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조사석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공거(公擧), 호는 만회(晩悔) 또는 만휴(晩休)·향산(香山)·나계(蘿溪)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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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2월에 조선 태종과 충녕대군이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행차한 사건. 1416년(태종 16) 2월, 태종은 순성[지금의 충청남도 태안]에 운하를 굴착하는 일을 결정짓기 위해 순성을 강무소(講武所)로 삼아 순행에 나섰다. 2월 4일에 한양을 떠난 태종은 2월 7일 덕풍현(德豊縣)[지금의 예산군 덕산면]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지냈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인 2월 1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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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남아 있는 옛 절터. 예산 지역에는 전역에 걸쳐 60개 이상의 절터가 남아 있다. 절터는 마을 사람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확인되고 있어서 현장 조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발굴 조사된 것은 극히 일부다. 따라서 각각의 절터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절터에서 수습되는 유물을 통해서 가장 많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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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개국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 예산군은 조선시대 홍주목 관할 예산현, 대흥현, 덕산현 3개 군현이 하나로 합쳐진 행정권역이다. 문화적으로는 충청남도의 내포 문화권에 속한다. 각 군현은 인구 규모로 볼 때 덕산, 대흥, 예산의 순이었다. 조선 초에는 국가 제사의 대상이었던 대흥현(大興縣)의 대잠도(大岑島)[지금의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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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의사. 조성행(趙聖行)[1902~1988]은 예산 지역에 최초로 근대 병원을 개원한 의사이다. 조성행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호는 소천(小川)이다. 조성행은 1902년 예산군 삽교읍 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졸업하였다. 1936년 예산읍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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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중의 묘. 조영중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아버지 조영중(趙瑩中)[1558~1646]의 묘이다. 조영중의 본관은 풍양, 자는 군수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읽으며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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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부엌의 신령인 조왕에게 가족의 건강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며 올리는 신앙 의례.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은 집안의 여러 가신 중에서 중요한 신령으로 간주된다. 부엌이 특히 식구가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공간으로 가족 건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치성에 필요한 제물을 부엌에서 장만하므로, 조왕은 모든 제사에 관여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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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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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을 모신 사당. 조익 사당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조익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아래에 조익 사당이 조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도산서원(道山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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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의 무덤에서 나온 묘지 16점.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가계, 행적 등을 기록한 글이며, 사기 판이나 돌에 새겨 무덤 옆에 묻거나 관이나 호(壺)에 직접 새기기도 한다. 조익의 무덤을 보수하면서 나온 묘지는16점이다. 조익 선생 일괄 유물은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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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의 신도비. 조익 신도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67년(고종 4) 조익의 후손들이 신도비를 세웠다. 조익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찬한 비문을 새겨 1867년 조익의 후손들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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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익의 묘. 조익 선생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과 부인 성주현씨의 묘역이다.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으며 아버지인 조영중(趙瑩中)[1558~1646] 묘 위쪽에 있다. 조익 선생 묘는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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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인원(趙仁元)[1875~1950]은 1919년 3월 3일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한내장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독립단 충청도지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조인원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백효(伯孝), 호는 야운(冶雲)이다. 아버지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 당시 덕산지소장을 지낸 조종호(趙鍾灝)이고, 어머니는 평산신씨(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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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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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충수의 묘.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조충수와 부인 남원양씨의 묘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조충수는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초명이 조윤충(趙尹忠)이다. 아버지 조방보(趙邦俌)는 사직서령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파평윤씨는 찰방 윤세걸(尹世傑)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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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구(趙泰耈)[1660~172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글씨를 잘 썼고, 양전(量田) 등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산법(算法) 관련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조태구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덕수(德受), 호는 소헌(素軒)·하곡(霞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할아버지는 병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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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수양대군을 도왔으며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할아버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며, 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李種善),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 안동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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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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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예산군(禮山郡) 두촌면(頭村面) 지역이었을 때 종경(宗敬)이라 부른 데서 종경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군 두촌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종경리라 하여 예산군 신암면에 편입되었다. 북부에 해발고도 100m 이하의 구릉지가 발달되어 있다. 서부, 중부 및 동부에는 무한천의 범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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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광산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예산의 광산김씨(光山金氏)는 김계문(金季文)[?~?]이 대흥현감을 역임하면서 예산현 입암면에 입향한 이후 대대로 자손이 번창하여 신암면 종경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게 되었다.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말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고려가 건국하자 무주(武州)[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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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신을 숭배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모든 신앙. 예산군에는 다양한 신앙들이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 신앙 체계로는 불교·유교·그리스도교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민족종교나 신종교 등 여러 신앙 체계가 있다. 예산군에서 불교의 출발은 백제시대의 불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예산군에 있는 오래된 대표적 사찰은 수덕사(修德寺)이다.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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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묘소와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선조 때 두 번이나 영의정에 올라 북인을 이끌었다. 문장팔가(文章八家)의 한 사람에 꼽힐 정도로 문장과 서화에 두루 능하여 당대의 문인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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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해조(徐海朝)[1689~177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예산군 광시면 구례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해조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종지(宗之), 호는 구구재(九九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효적(徐孝積)이며, 할아버지는 서필행(徐必行)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서욱(徐욱)이며, 어머니는 박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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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대률리에 있는 쓰레기 처리 시설. 예산군 지역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재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한 쓰레기 종합 처리 시설이다. 2012년 12월 20일 예산군 쓰레기종합위생처리장에서 예산군맑은누리센터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농촌형 사회에서 벗어나면서 생활형 쓰레기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예산군 자체에서 배출 쓰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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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좌천(佐川)과 방하(方下)의 이름을 따서 좌방리(佐方里)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현 우가산면(于可山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하리(方下里), 좌천리(佐川)와 덕산군(德山郡) 장촌면(場村面) 방리 일부를 병합하고, 좌방리라 하여 오가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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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배다리'라고 불리웠는데, 배다리는 '배가 드나드는 마을'을 뜻한다. 조선시대부터 한자로 '주교리(舟橋里)'라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 무한천 위에 배다리가 있었던 데서 주교리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현 현내면에 속하였고, 1896년(건양 1) 현내면을 군내면으로 변경하면서 예산군 군내면 지역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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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붉은 고개’인 주령(朱嶺)이 있으므로 주령, 주령이 또는 주랭이라 부른 데서 주령리(朱嶺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주령리와 외주령리를 병합하고, 주령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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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주민 편의 및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기 위하여 각 읍면에 설치·운영하는 기구. 예산군의 주민자치센터는 「지방자치법」제8조 및 동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2002년 1월 15일 제정된「예산군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에 의거하여 실시되어 2017년 현재 12개 읍면에서 각각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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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살림집의 형태·기능과 전반적인 생활의 모습들. 주생활은 예산 지역에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구조의 주거 건축과 가옥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활 행위이다. 예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중서부에 자리 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주택은 한랭한 북서 계절풍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중부형 양식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예산 지역의 가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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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 사람들이 쓰는 주생활과 관련된 말. 집은 생활을 영위하는 물리적 건물을 뜻하며, 주생활은 집안과 집밖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일반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주생활 언어는 건축물과 그에 딸린 생활 가구와 실내 장비, 부엌과 방과 마루, 토방, 안마당과 바깥마당, 앞뜰과 뒤뜰, 장독대 따위를 포함한다. 또한 취침과 식사, 휴식, 개인 생활과 가족 간의 공동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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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언론인자 정치가. 한건수(韓建洙)[1921~1994]는 예산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한건수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주암(周巖)·봉암(鳳巖)이다. 한건수는 1917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에서 태어났다.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1942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를 졸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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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병덕(徐秉德)[1712~180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11년(순조 11) 궤장을 하사받고 기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손들이 서병덕의 영정, 요대, 옥배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의 사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병덕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유호(攸好), 호는 주은(酒隱), 시호는 정익(靖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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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부터 일본통사로 활동하였으며, 1811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대마도에 가서 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이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1836년(헌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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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이응로(李應魯)[1904~1989]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한국화가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죽사(竹史)·고암(顧菴)이다. 아버지는 이근상(李根商)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자결한 의병장 이근주(李根周)의 조카이다. 이응로는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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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이응로(李應魯)[1904~1989]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한국화가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죽사(竹史)·고암(顧菴)이다. 아버지는 이근상(李根商)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자결한 의병장 이근주(李根周)의 조카이다. 이응로는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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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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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지역에 유배되었던 문신. 김진규(金鎭圭)[1658~1716]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였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정치적으로는 대표적인 노론 정객 중 한 사람이다. 예산군 덕산면에 귀양 와서 살았다. 김진규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이다.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형조참판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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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죽리(竹里)와 송천(松川)의 이름을 따서 죽천리(竹川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월리(開月里), 성민동(聖民洞), 죽리, 송천리(松川里), 용왕리(龍旺里)를 병합하고, 죽천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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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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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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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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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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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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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불천지위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학문 뿐만 아니라 효(孝), 애민(愛民)의 행적을 보였으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고청(孤靑) 서기(徐紀)[1523~1591],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충청도의 특이한 학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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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이담(李湛)[1510~1575]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의약·천문·산수·궁술에도 능했고 문장과 서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담의 본관은 용인(龍仁)이며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이며, 할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적(李績)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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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근대의 교육가·유학자. 이철승(李喆承)[1879~1951]은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오랫동안 충청 지역 교육계에 몸담았으며, 광복 후 예산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철승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중길(重吉), 호는 직암(直菴)이다. 인조 때 재상을 지낸 문인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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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예산군 입암면(立岩面) 지역일 때 중촌(中村)과 예평(禮坪)의 이름을 따서 중예리(中禮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예산군 입암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촌리(中村里), 예평리(禮坪里), 면천군(沔川郡) 합북면 금상리와 덕산군 도용면(道用面) 포리(浦里)를 병합하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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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문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숭록대부에 올랐다. 문집인 『석루유고(石樓遺稿)』 목판본이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아버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사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경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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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복양(趙復陽)[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복양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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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매년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게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두는 최대의 명절이었고, 그 전통은 현대에 이어지고 있다. 가배·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해마다 추석이 되면 가을걷이를 앞두고 한 해 농사 마무리에 감사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올린다. 차례에 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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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중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배운 초등 보통교육의 기초 위에 3년 동안 중등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 하위 목표를 두고 있다. 첫째, 초등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켜 중견 국민으로서 필요한 품성과 자질을 기른다. 둘째,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 근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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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음력 정월에 들판에 쥐불을 놓으며 노는 놀이. 쥐불놀이는 들판에 쥐불을 놓으며 노는 놀이이다. 횃불을 들고 들판에 나가 논밭의 두렁에 자라난 잡초와 잔디를 태워 해충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쥐불놀이를 서화희(鼠火戱) 또는 훈서화(燻鼠火)라고도 한다. 쥐불놀이는 음력으로 정월 첫 번째 쥐날인 상자일(上子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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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그릇점’이 있으므로 점실, 즘실 또는 증곡(曾谷)이라 부른 데서 증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坪村), 산직리(山直里)를 병합하고, 증곡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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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에 있는 수령이 360년 이상 된 느티나무.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이다. 마을의 동구(洞口)[둥구]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둥구나무[동수(洞樹)]이다.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을 내포하고 있다. 증곡리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1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고는 21m, 흉고 둘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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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에 있는 약 700년 된 은행나무와 인근에 있는 샘. 증곡리 둥구나무는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 선녀동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마을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과 아들의 잉태를 기원하는 기자속(祈子俗)을 내포하고 있다. 마을의 동구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둥구나무[동수(洞樹)]이며, 정자나무 역할도 하고 있다. 둥구나무 인근에 있는 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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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증산 강일순이 세운 신종교. 증산교(甑山敎)는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후에 민중을 위한 세상을 만든다며 후천개벽(後天開闢)과 후천선경(後天仙境)의 도래를 선포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1871~1909]을 교조로 하는 종교이다. 증산교는 1901년에 시작되었는데, 예산군에는 1968년부터 시작되었다. 예산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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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고산면(高山面) 지역일 때 종이를 만들었으므로 조실 또는 지곡(紙谷)이라 부른 데서 지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고산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장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지곡리라 하여 예산군 고덕면에 편입되었다. 중부 및 서부에 해발고도 100m 이하의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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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근동면(近東面) 지역일 때 ‘산이 사방으로 에워 싼 골짜기’가 되어 지룰 또는 지곡(芝谷)이라 부른 데서 지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근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곡리라 하여 예산군 대흥면에 편입되었다. 중부에 탄방천 지류 하천의 곡간 충적지가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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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표면의 요철에 의한 고도의 차이에 따른 기복 및 형태. 예산군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의 차령산맥과 서쪽의 가야산지 사이에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삽교천 수계의 본류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다.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들이 자리하고 있고, 예산읍의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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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었던 민족계 지방은행. 호서은행은 지방의 금융 소통과 실업(實業)을 장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3년 예산의 성낙규, 유진상, 성낙헌 등과 서울 의 백완혁, 김진섭, 백인기 등이 공칭자본금 30만 원과 납입자본금 7만 5000원으로 설립하여 1913년 7월 업무를 시작하였다. 초대 은행장은 유진상이었다. 설립과 동시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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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존재했던 예산·덕산·대흥 등 3개 군현의 행정 책임을 맡은 군수·현감.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많은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나 완전하지 못하였고, 조선 건국 후에야 전국 모든 군현에 지방관이 부임할 수 있었다. 예산군에는 예산·대흥·덕산 3개 군현이 존재하였는데, 모두 고려 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조선 건국 후 1413년(태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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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및 예산군에서 주민이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예산군의 지방자치는 예산군 관내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여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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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덕성(李德成)[1655~170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언·지평·관찰사·동지부사·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부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덕성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득보(得甫), 호는 반곡(盤谷)·지비자(知非子)이다.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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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표면의 요철에 의한 고도의 차이에 따른 기복 및 형태. 예산군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의 차령산맥과 서쪽의 가야산지 사이에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삽교천 수계의 본류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다.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들이 자리하고 있고, 예산읍의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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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고인돌이 있어서 고인돌 또는 지석(支石)이라 부른 데서 지석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동(上洞)을 병합하고, 지석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지석리는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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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에 있는 바위.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 고인돌마을 앞 옥녀봉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이다. 인근 마을들의 길흉화복에 관한 전설을 내포하고 있다. 지석리 고인돌마을 인근 옥녀봉 능선에 있는 바위의 형태가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지석리 옥녀봉 거북바위’ 또는 ‘예산 지석리 옥녀봉 거북바위’, ‘옥녀봉 거북바위’, ‘거북바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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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표면의 요철에 의한 고도의 차이에 따른 기복 및 형태. 예산군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의 차령산맥과 서쪽의 가야산지 사이에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삽교천 수계의 본류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다.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들이 자리하고 있고, 예산읍의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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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벌인 백제 말기의 무신. 지수신(遲受信)[?~?]은 백제 말의 무신으로, 왕은 도망하고 왕자들도 항복하였으나 임존성을 차지하고 끝까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왜국의 후원을 받아 세력이 강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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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의 서부 지역에서 집안의 평안을 위해 집터를 주관하는 지신을 위해 베푸는 신앙 의례. 예산군에서 집터를 관장하는 신령은 두 개의 명칭으로 불리는데, 서부 지역에서는 지신(地神). 동부 지역에서는 터주라고 칭한다. 예산군의 서부 지역에서 지신은 집 뒤편의 장광에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은 땅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므로 지신을 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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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의자왕 20) 백제 멸망 후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당나라가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된 후 당나라에서 홍주(洪州) 지역에 지심주(支潯州)를 설치하고 기문(己汶)·지심(支潯)·마진(馬津)·자래(子來)·해례(解禮)·고로(古魯)·평이(平夷)·산호(珊瑚)·융화(隆化) 등 9개 현(縣)을 관할하였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그 옛땅에 설치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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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낙후 지역의 개발을 위한 기반 시설의 설치와 지역주민의 생활 및 소득수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업. 지역개발 사업은 공간의 생산성과 균등한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 한정된 국토 공간 및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각종 산업공단 조성, 교통로 건설, 택지 조성 등의 사업을 뜻한다. 지역개발의 방식은 거점개발 방식, 균형개발 방식, 광역개발 방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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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정서적, 문화적, 물질적 욕구 충족과 상호 유기적 연계성을 갖는 지역 공간에 기반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활동 범위. 생활권은 역사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공동체 의식으로 결속될 수 있는 범위이자, 도보나 자동차 등을 이용한 일상생활의 접촉 범위 내에 있는 권역이며, 지역의 주민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행정구획에 구애되지 않고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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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에 유배된 문인·학자. 이약수(李若水)[1486~1531]는 조선 전기의 문인·학자로, 조광조의 유배를 반대하다 예산으로 유배되었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다. 이약수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지원(止源), 호는 우천(牛泉)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이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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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서 새집을 지을 때 터를 다지며 부르는 노래. 전래 풍속에 누군가 새로 집을 지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터 다지기를 도와준다. 새로운 터를 고르고 다지는 집터 다지기를 하며 집터를 주관하는 신인 ‘터줏대감’에게 잘 보여 집에 드는 액을 막고, 집안의 평안과 번성, 풍요를 축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집터다지는소리」이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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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예산에 은거한 고려의 충신. 박인우(朴麟祐)[1338~1410]는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개로 관직을 버리고 예산 지역에 은거한 충신이다. 박인우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초암(草庵)·지정(芝亭)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역임한 박천응(朴天應)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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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의 지각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지각 변동에 따른 구조와 분포 상태. 예산군은 지체 구조적으로 경기육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산군의 지질은 화성암류와 변성암류, 퇴적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지질시대가 오래된 것부터 살펴보면, 먼저 선캄브리아시대의 화강암질 편마암, 호상편마암, 편암류와 이들을 뚫고 들어온 화강편마암이 있다.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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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 지역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마한의 소국. 지침국(支侵國)은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 한전에는 삼한의 여러 국가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위서 동이전의 나라 이름은 당시의 중국음, 즉 상고음에 따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대체로 오늘날 우리 한자음에 가까워 위치 비정에 참고가 된다. 지침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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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표면의 요철에 의한 고도의 차이에 따른 기복 및 형태. 예산군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의 차령산맥과 서쪽의 가야산지 사이에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삽교천 수계의 본류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다. 예산군의 중앙부에 있는 예산읍 동쪽에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작은 구릉들이 자리하고 있고, 예산읍의 북서쪽에 신암면이 있고 남동쪽에는 대술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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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근대의 교육가·유학자. 이철승(李喆承)[1879~1951]은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오랫동안 충청 지역 교육계에 몸담았으며, 광복 후 예산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철승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중길(重吉), 호는 직암(直菴)이다. 인조 때 재상을 지낸 문인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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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덕산현감을 지낸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은 조선 후기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계축옥사로 유배당했다가 인조반정과 함께 복직하여 병조참판에 올랐다. 1631년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묻혔다. 이명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선조 때 청백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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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교육자. 김용우(金溶禹)[1865~?]는 민족 자본을 바탕으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은행인 호서은행설립 발기인 중 한 명이며, 은행장을 역임하였다. 교육 사업에도 힘써 충남공립농업학교와 예산공립농업학교의 설립을 돕고, 조선육영회(朝鮮育英會)를 설립하여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김용우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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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선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고구려 때 병마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이식은 598년(영양왕 9) 병마도원수로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요서 지방에 출정해 공을 세웠고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을 맞아 임유관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진주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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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진주강씨와 양주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비.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으며, 성국진(成國鎭)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와 성응기(成膺基)의 처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열행을 기리고자 1811년[순조 11] 세운 열녀비 2기이다. 양주조씨는 성국진의 세 번째 아내로, 남편에게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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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가을걷이 후 첫 수확한 쌀로 떡을 찌어 집안에 모신 가신에게 올리는 감사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해 첫 수확물인 햅쌀로 정성껏 떡을 찌어 조왕[부엌], 장광[장독대], 성주, 각 방, 변소, 대문, 외양간 등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둔다. 가을에 정성껏 찐 떡이므로 ‘가을떡[秋餠]’이라 하며, 집안을 위한다 하여 ‘집안떡’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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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한 서예 이론가이자 학자. 이서(李漵)[1662~1723]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징지(徵之), 호는 옥동(玉洞) 또는 옥금산인(玉琴散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이상의(李尙毅), 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이지안(李志安)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이며, 어머니는 이후산(李後山) 딸 용인이씨(龍仁李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