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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충청도 예산현 소재 논밭을 수진궁에서 매입한 후 측량하여 작성한 토지대장. 조선시대 한성의 수진궁에서 예산현의 토지를 새롭게 매득한 곳을 측량하여 성책하였다. 1805년(순조 5)에 작성된 양안으로 오원리면[현재 오가면] 녹야전평 및 창촌전평, 두촌면[현재 신암면] 낙포후평, 금평면[현재 예산읍] 창촌전평의 전답 가운데 조선시대 한성의 중부 수진방에 있던 궁전인 수진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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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년 3월 충청도 예산현 소재 논밭을 숙의방에서 구매한 후 측량하여 작성한 토지대장. 1727년(영조 3) 3월 충청도 예산현 거구화면(巨仇火面)·입암면(立巖面)의 16자호(字號)에 속해 있는 전답을 숙의방에서 매득하여 타량한 후 작성한 양안이다. 조선시대 거구화면은 현재의 오가면, 입암면은 신암면에 속한 지역에 해당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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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수진궁에서 충청도 예산현에 있는 논밭을 사며 토지를 측량해 만든 토지대장. 「충청도예산현궁평영평양면전답타량성책」은 1804년(순조 4) 수진궁(壽進宮)에서 충청도 예산현 궁평면(宮坪面) 낙포리(洛浦里)와 영평면(令坪面) 의 전답(田畓)을 매입하며 측량하여 작성한 문서이다. 궁평면 낙포리는 현재 예산군 예산읍 궁평리 지역이며 영평면 역시 예산읍 일대이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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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예산현 소재 논밭을 숙의방에서 구매한 후 측량하여 작성한 조선 후기의 토지대장. 「충청도예산현숙의방매득전답자호부수타량어람성책」는 1729년(영조 5) 11월 숙의방에서 매입한 충청도 예산현 소재 논밭 10필지를 예산현에서 타량하여 작성한 양안, 즉 토지대장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필사본에 1책 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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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홍충도 예산현 소재 의열궁 소속 논밭을 측량하여 작성한 토지대장. 1783년(정조 7)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인 홍충도 예산현 소재 의열궁 소속 전답(田畓)을 예산현에서 측량하여 작성한 양안이다. 홍충도는 조선시대에 충청도를 이르는 말이다. 의열궁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있던 궁으로 영조(英祖)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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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현 지산 일대 안동김씨 세거지의 사적을 정리하고 관련 글들을 모은 책. 용사(龍社)는 예산현 지산(芝山) 일대, 즉 궁룡리(宮龍里), 중룡리(中龍里), 상룡리(上龍里), 지동(芝洞) 일대를 지칭한다. 안동김씨 일파가 용사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편찬자의 5세조 때인 17세기 중엽이었다. 『용사지도』는 안동김씨의 선산인 지산 및 주변 세거지 일대와 관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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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상항면 대술리의 예산 수당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한산이씨 족보의 초간본. 1643년(인조 21) 강원도관찰사 이덕수(李德洙)[1577~1645]가 편집·간행한 한산이씨 족보의 초간본(初刊本)이다. 상·하 1책이며, 원주의 강원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한산이씨보 (韓山李氏譜)’, 판심제는 ‘한산이씨족보’이다. 예산군 상항면 대술리에 있는 이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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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분포하는 고려 말, 조선시대 도자기, 기와, 토기를 굽던 가마터. 예산군 관내에는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34개소의 가마터가 있다. 이러한 가마터는 크게 보아 도자기 가마터, 토기 가마터, 기와 가마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야철지가 3개소 있다. 도자기 가마터는 크게 보아 청자 가마터, 분청사기 가마터, 백자 가마터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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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일원에 집중되어 있는 조선 왕실의 태실과 묘소 등의 유적 개관. 내포 지역을 상징하는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伽倻山) 일원에 있는 조선 왕실의 묘소와 태실 유적은 명빈박씨묘, 연령군묘, 남연군묘, 남연군 신도비, 헌종대왕 태실, 흥녕군묘 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남연군묘는 가야사지,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관련하여 상징적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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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강민첨(姜民瞻)[963~1021]은 문신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나, 고려 현종 때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으면서 무신으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강민첨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들은 강단(姜旦)이다. 강민첨은 963년(광종 14) 강주[현 경상남도 진주시] 개경향에서 태어났다. 목종 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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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강민첨의 묘. 강민첨장군묘는 고려 전기 무신으로 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은 장군 강민첨(姜民瞻)[963~1021]의 묘이다. 실전되었던 것을 1960년경 발견하여 복구하였다. 강민첨장군묘는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되었다. 대술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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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했던 한국 천주교 최초의 여성회장이자 순교복자. 강완숙(姜完淑)[1760~1801]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조선의 천주교회를 위해 최초로 파견된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선교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서 주문모 신부를 도와 조선 교회를 이끌었으며, 특히 여성에 대한 선교에 주력하였다. 강완숙은 1760년(영조 30)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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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918년 고려 개국 이후 예산군 지역은 고려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후삼국 통일부터 무신 집권기, 몽고 침입기,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고려시대 예산군의 역사를 살펴보며 고려시대 행정구역 개편과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본다. 후삼국 시기 예산 지역은 후백제의 웅주(熊州)[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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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발급, 수급한 문서, 혹은 예산에 보존된 옛 문서의 총칭. 고문서는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문헌 사료로, 대부분이 유일본이다. 형태는 낱장이 많고 이것을 책처럼 묶은 성책 고문서도 있다.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 문서(交隣文書) 등 공공의 성격을 갖는 문서와 개인 간에 주고받은 사문서가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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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있는 고분. 고분(古墳)은 일반적으로 옛날 무덤 중에서도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무덤만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모든 고분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옛 무덤은 모두 고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하에 시신을 매장하고 지상에 아무런 시설을 두지 않은 것을 묘(墓)라고 하고, 반대로 지상에 흙을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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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산현(孤山縣)은 임성군(任城郡)의 속현으로서 통일신라시대인 686년(신문왕 6)부터 고려 초인 919년(태조 2)까지 지금의 예산군 대흥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삼국 통일 후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의 옛 땅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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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인돌과 선돌, 그리고 유물 출토지이다. 유물 출토지가 고분일 가능성도 있지만 간석기[마제석기] 일색인 것으로 보아 주거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산군 관내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10개소이고, 선돌이 5개소에서 확인되었으며, 따로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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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해당하는 예산, 덕산, 대흥 지역의 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 지금의 예산군은 조선시대 예산, 덕산, 대흥 3개 군현이 하나로 합쳐진 행정구역이다. 조선시대에 3개 군현에는 각각 관아가 있었는데 대흥과 덕산은 읍성이 둘러 있고 그 안에 읍치가 형성되었다. 관아 시설은 왕의 전패(殿牌)를 모시는 객사(客舍)와 수령의 업무 공간이며, 생활 공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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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지역에 설치되었던 역. 광세역(光世驛)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도로망인 금정도(金井道)에 소속된 역으로 대흥, 공주, 홍주, 예산, 청양 등의 지역과 연결되는 곳에 있었고, 이들 지역의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광세역(光時驛)이라 하였고, 조선 세종 때부터 광시역으로 바뀌었다. 대흥현 일남면 광시리[현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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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뗀석기를 사용하던 인류문화의 원초 단계에서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구석기시대란 최초의 고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 년 무렵 플라이스토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문화의 원초 단계를 가리킨다. 구석기시대는 돌을 때려 만든 뗀석기[타제석기]를 사용하는 시대라는 기술 발전 단계상의 한 개념으로 등장하였으며, 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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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외세 침입이나 변란에 대비한 방위 체제. 예산 지역에 해당하는 예산현·대흥현·덕산현의 군사 체계는 조선 초기 진관체제에서 홍주진관에 속해 있었고, 현감이 겸임한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가 관리하였다. 외세 침입이나 변란에 대비한 방어시설로 읍성(邑城)을 비롯한 성곽이 있었음을 조선시대의 지리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지방 육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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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킨 백제의 무신이자 왕족. 귀실복신(鬼室福信)[?~663]은 백제 말의 무장이자 왕족으로, 660년(의자왕 20) 나당(羅唐)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임존성(任存城)에서 항전하였다. 백제가 멸망하자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왕자 부여풍을 옹립해 당군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으나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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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금곡리 새월마을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금곡리 고분군은 백제시대 고분으로 알려졌으며 예산군 대흥면 금곡리 새월마을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일부 모습이 노출되어 보이나 수풀이 우거져 완전한 형태는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고분은 도굴로 파괴된 상태이다. 충청남도 청양읍 신흥리에서 대흥면 가는 길을 따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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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초까지 예산군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이산군(伊山郡)의 속현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을 신라 통일 후 경덕왕 때에 금무현(今武縣)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이산군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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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예산 지역에 군현이 설치된 것은 백제 때부터다. 당시 예산 지역에는 임존성과 함께 마시산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삽교천 지역은 내포 지역에서는 큰물로 불렸기 때문에 이 물줄기를 다스리는 현을 큰물현이라 했다. 이것을 백제시대에는 백제식 한자음으로 금물현(今勿縣)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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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의 쇠붙이나 돌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금석문 기록은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즉,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물·유적과 유물의 연대 및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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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양을 중심으로 충청도 서부 지역과 연결된 역도. 금정도(金井道)는 조선 세종 때부터 충청우도에 편성된 역도(驛道)였으며, 관할 범위는 대흥(大興)-청양(靑陽)-결성(結城)-홍주(洪州)-보령(保寧)-해미(海美)-서산(瑞山)-태안(泰安) 등의 지역으로 연결된다. 조선 후기에는 전기부터 편제되었던 시흥도가 폐지되면서 시흥도 소속의 8역이 금정도 관할 하에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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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지역에 설치되었던 역. 급천역(汲泉驛)은 덕산현 대조지면[현재 예산군 삽교읍 역리]에 있었다. 덕산, 홍주, 해미, 당진, 예산, 대흥, 청양 등의 지역으로 연결되는 곳에 있었으며, 위의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급천역은 관할 역도가 금정도-시흥도-금정도로 바뀌었다. 역(驛)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문의 전달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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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고전적과 금석문 등의 기록물. 예산군의 기록유산은 예산 지역과 관련된 모든 기록물 통칭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예산군 지역에 전승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물을 대상으로 정리한다. 지금까지 가장 체계적으로 조사되었던 것은 2007년 충청남도의 비지정 동산 문화재 조사 사업을 통해 예산군 지역에서는 향교와 서원 및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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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예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김구(金絿)[1488~153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벼슬이 홍문관부제학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당하였다. 김구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庵),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예몽(金禮蒙), 할아버지는 성균관사예 김성원(金性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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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구의 묘. 김구 묘역은 조선 전기 문신 김구(金絿)[1488~1534]의 묘역으로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다. 김구 묘역이 있는 종경리는 아버지 김계문의 처가인 전의이씨의 세거지이자 김계문이 입향하여 사망한 곳이며, 이후 광산김씨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김구는 자가 대유(大柔),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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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구의 신도비. 김구 신도비는 1640년(인조 18) 세워진 비석과 1984년 다시 세워진 비석 총 2기가 있다. 김구(金絿)[1488~1534]는 자가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庵), 본관은 광산으로 서울 연희방에서 태어났다. 김구의 아버지 김계문은 대흥현감을 역임하던 중 부인 전의이씨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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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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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연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김려(金鑢)[1766~1821]는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 출신이었지만 당쟁의 화를 입어 생애를 대부분 유배지에서 보냈고 유배지에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시문과 저서를 남겼다. 김려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이다.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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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거주하며 무한천에 수로를 만든 문신. 김만진(金萬珍)은 노씨 부인과 함께 조선 후기 예산 국사봉 아래의 무한천변에 수로 개설을 주도하여 오가평야에 새 농토를 개척하였다. 김만진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자암(自庵) 김구(金絿)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우영(金宇英)[1610~1673]이다. 김만진은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현 오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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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부터 일본통사로 활동하였으며, 1811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대마도에 가서 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이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1836년(헌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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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금석학·도서·시문·지리학·음운학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역사적 저술을 남기는 등 조선 후기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여 후대의 서예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정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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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김정희 종가에서 소장하였던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유물. 김정희 종가 유물(金正喜宗家遺物)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것으로 김정희의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작품과 유물이다. 1971년 9월 1일 유물류와 유묵, 서첩,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 등이 함께 보물 제547-1호로 지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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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김정희의 묘. 김정희 묘는 경기도 과천에 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와 김정희의 첫째 부인 한산이씨의 묘와 둘째 부인 예안이씨의 묘를 1937년 선조(先祖)가 있는 예산으로 이장하여 합장한 합장묘이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로 자는 원춘(元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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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인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유물 3점. 김정희 선생 유물[혼서지, 생원시권, 농상지실]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서화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와 관련된 것으로, 「혼서지(婚書紙)」, 「생원시권(生員試券)」과 현판 「농상실(農祥室)」의 3점이다. 김정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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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고택 등 김정희와 관련된 유적. 김정희 선생 유적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유적으로 김정희 선생 고택과 그 일대의 유적을 말한다. 김정희 선생 고택, 월성위 김한신묘, 화순옹주 홍문, 예산 용궁리 백송, 김정희묘가 있으며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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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화암사 뒤편 자연암반에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새긴 암각문.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암사 뒤편의 병풍바위라고 불리는 자연암반에 김정희가 새긴 암각문으로 총 3점이 전한다. 화암사는 원래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이 세운 경주김씨 집안의 원찰이다.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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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의 덕잠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이자 종친. 김조순(金祖淳)[1765~1832]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순조의 장인이다. 덕잠서원(德岑書院)의 원장을 역임하며 예산과 관계를 맺었다. 김조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은 김낙순(金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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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지역에 유배되었던 문신. 김진규(金鎭圭)[1658~1716]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였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정치적으로는 대표적인 노론 정객 중 한 사람이다. 예산군 덕산면에 귀양 와서 살았다. 김진규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이다.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형조참판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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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부마이자 문신. 김한신(金漢藎)[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아 집[지금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아버지의 묘소를 짓고, 경주김씨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김한신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유보(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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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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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개항기 신도비. 남연군 비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1788~1836]의 신도비로, 남연군의 가계와 생애,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65년(고종 2) 건립되었다. 700m 떨어진 곳에 남연군의 묘가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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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의 묘. 남연군의 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1788~1836]의 묘이다. 흥선대원군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 이구의 묘를 예산군 덕산면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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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남연군 이구의 상여.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1788~1836]의 시신을 경기도 연천에서 덕산 장지까지 운반할 때 사용했던 궁중식 상여이다. 상여를 운반한 후 남은들마을에 기증하였고, 마을의 이름을 따서 남은들 상여라고 부른다. 남연군 이구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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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 안골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추정 고분군. 노전리 안골 고분군이 있는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는 옛부터 아홉 마리 학의 혈을 지녀 아홉 개의 명당 묏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농토가 있어 옛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노전리 안골 고분군은 삼국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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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누정(樓亭)은 전통 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으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건물이며, 정자는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건물인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환경에 부합되는 자연 친화적이며 한국적인 건축물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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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대야리 대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예산군 대흥면 대야리 대골에서는 고분 2기가 확인되는데 첫 번째 고분은 장축을 25도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두고 있으며 덮개돌 2매 정도가 들려 있고 북벽 쪽으로 3매의 덮개돌이 남아 있다. 두 번째 고분은 남서향 30도 정도 장축을 이루고 있으며 수습되는 유물은 없다. 예산읍에서 남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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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또는 상중리에 있었던 대흥읍성의 터. 대흥읍성 터는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또는 상중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흥읍성의 터이다. 읍성은 전근대 시기 지방의 치소 즉 행정 사무를 맡아 보는 기관이 있는 곳을 둘러쌓은 성 혹은 치소가 위치한 성을 가리킨다. 읍성은 치소가 위치한 성이므로 행정적·군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성내에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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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비석군. 대흥중고등학교 앞 비석군은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세워진 비석들로 주로 선정비와 불망비이다. 선정비는 송덕비라고도 하며 관직에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을 때 해당 지역 백성들이 힘을 모아서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우고는 하였다. 불망비는 후세 사람들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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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대흥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대흥현은 현 예산군의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봉산면 등을 포괄하는 지역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옛 고을명이다. 고려 초기인 940년(태조 23) 등장한 지명으로 고려 중·후기에는 감무가 파견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현감이 부임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대흥군으로 승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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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시대부터 현대 인물들의 비석군. 덕산면사무소 내 비석군은 덕산면 인근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善政碑)를 비롯한 총 17기의 비석들을 덕산면행정복지센터[덕산면사무소]에 모아 일렬로 세워 두었다. 대부분 충청도관찰사나 덕산현감 혹은 군수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이다. 덕산면사무소 내 비석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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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온천 약수가 나온 것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예산군 덕산면에서 온천 약수가 나온 것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溫泉水)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약수의 명칭을 지구유(地球乳)라고 하고 새로 건물을 지으며 비석을 세웠다. 날개와 다리를 다친 학이 덕산온천으로 날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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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덕산현은 현 예산군의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을 포괄하는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옛 고을명이다. 1405년(태종 5) 고려시대의 덕풍현(德豐縣)과 이산현(伊山縣)을 합병하여 덕산현이라 하였으며, 1413년(태종 13)부터 현감이 부임하였다. 1837년(헌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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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년(세종 3)에 덕산현아를 여말선초에 충청병영성으로 사용되었던 이산진으로 이전한 일. 여말선초에 덕풍현(德豊縣)의 이산진(伊山鎭)에 설치되었던 충청병영이 1418년(태종 18) 새로 축성한 해미의 병영성으로 이전하자, 1421년(세종 3)에 덕산현 치소를 비어 있던 이산진의 구 병영성으로 이전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덕산의 이산진에는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영이 설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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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덕풍현(德豐縣)은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 일원에 고려 초 개설되어 조선 초까지 존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덕풍현(德豐縣)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 금무현(今武縣)이라 고쳐 이산군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초에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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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가 있는 고려 말의 충신. 도응(都膺)[?~?]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도응의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도유(都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청송당(靑松堂)이다. 예산 지역 성주도씨(星州都氏) 입향조이다. 도응은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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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에 있는 고려 충신 도응의 묘. 도응 선생 묘 일원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친구이자 불사이군의 충신 도응(都膺)[?~?]과 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묘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주변에 비석, 문인석, 망주석, 석등, 신도비 등이 세워져 있다. 도응은 본관이 성주(星州), 초명은 도유(都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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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도침(道琛)[?~?]은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승려이다. 예산 봉수산 기슭에 있는 대련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도침이 어디에서 출생하였는지 밝혀진바 없으나 도침은 그 당시 상당히 높은 신분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임존성과 주류성 부근의 사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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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군 동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분. 동서리 유적은 1978년 마을 주민들이 사방공사를 위한 돌을 캐내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곧바로 유적 파악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으나 남아 있는 무덤구덩이[墓壙]의 부분적인 구조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당시 동서리 유적 주변은 경사면보다 낮은 분구(墳丘)의 형태였다. 동서리 유적은 예산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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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던 백제 군현의 명칭. 백제 때 예산 지역에는 임존성(任存城)과 마시산군(馬尸山郡)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시산군의 영현(領縣)으로 목우현(目牛縣)과 금물현(今勿縣)이 있었고, 임존성의 영현으로는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과 오산현(烏山縣)이 있었다. 임존성은 통일신라 때 임성군으로 바뀌고, 마시산군은 이산군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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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마전리 남쪽 야산에 축조된 토성. 마전리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으나 임존성 등 주변 성곽의 위치를 고려할 때 교통로의 길목을 차단하고 감시할 목적으로 소규모로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국도32호선을 따라 3.5㎞ 정도 올라가면 동쪽으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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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숙종의 빈 명빈박씨와 아들 연령군 이훤의 묘. 명빈 밀성박씨와 이훤 묘소는 숙종의 후궁인 명빈(榠嬪) 밀성박씨(密城朴氏)[?~1703]와 여섯째 아들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1699~1719]의 묘이다. 원래 명빈 밀성박씨와 이훤 묘소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번당리(樊塘里)[현서울특별시 대방초등학교교정]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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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한시대 마한의 54개국 중 하나. 대체로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4세기까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는 마한(馬韓)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한은 진한(辰韓), 변한(弁韓)과 더불어 삼한의 하나인데, 54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목지국(目支國)과 백제국(伯濟國)이다. 목지국은 『삼국지(三國志)』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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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년(고종 23)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의 공격을 격파하였던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인 대흥에서의 전투. 몽고군의 침입에 대흥현민들은 산성 안에 들어가 저항하며 적에게 반격을 가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예산은 북방 변경으로부터 다소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데다가 서해안으로 치우쳐 있어서 이민족의 직접적 침입은 드물었다. 그러나 13세기 몽고의 침입 때 대흥에서 큰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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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서 배출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문관과 무관. 문무 관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서 문관이나 무관을 역임한 관인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역임한 인물과 가자(加資)[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 또는 그 올린 품계]·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수직(壽職)[해마다 정월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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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을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학자로서 업적과 기록, 유적 등을 남긴 인물. 예산군은 많은 문인과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자암(自庵) 김구(金絿)[1488~1534]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예가이고,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유명한 현상벽(玄尙璧)·한홍조(韓弘祚)[1681~1712]·윤봉구(尹鳳九)[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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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남아 있는 국가 지정 문화재와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문화재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口傳)·음악·인종학적인 유산·민속·법·습관·생활양식 등 인종적 또는 국민적인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예산군 관내에는 2017년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와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등 총 89점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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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예산 지역의 열녀. 현풍곽씨(玄風郭氏)[?~?]는 고려 때 사람으로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부모를 모시는 효행을 보였다. 이러한 현풍곽씨의 효행이 조선 세종 대에 인정을 받아 정려를 받았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10월 28일 예조에서 보고하기를, 대흥현에 사는 현풍곽씨는 스물여섯 살 때 남편 박근(朴根)이 죽자 삼년상을 마친 후에도 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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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박안행(朴安行)[1578~1656]은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박안행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지(聖之), 호는 석곡(石谷)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형조참판을 지낸 박광영(朴光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귀후서별제를 지낸 박조(朴藻)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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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은거한 고려 후기의 문신. 박유(朴愈)[?~?]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고려에 망하자 은거하며 조선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박유의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초명은 박유(朴悠), 호는 유은(柳隱)이다. 아버지는 박길우(朴吉佑)이며, 부사 박규세(朴奎世)의 후손이다. 박유는 1275년(충렬왕 1)에 대부경으로 있으면서 당시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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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예산에 은거한 고려의 충신. 박인우(朴麟祐)[1338~1410]는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개로 관직을 버리고 예산 지역에 은거한 충신이다. 박인우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초암(草庵)·지정(芝亭)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역임한 박천응(朴天應)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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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박일양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 박일양(朴一陽) 기적비는 일제강점기 마을에 저수지를 만드는 등 마을에 공을 쌓은 박일양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박일양 기적비는 일제강점기 상가리 마름이었던 박일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박일양은 가야산 부근 마을 지주의 임을 받아 마을 내 소작지를 관리하던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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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박홍(朴泓)[1534~1593]은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서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패하였으며, 임진강 방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박홍의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청원(淸源)이다. 할아버지는 박한(朴捍)이고, 아버지는 별제(別提) 박영무(朴英珷)이다. 어머니는 직장(直長) 정인걸(鄭仁傑)의 딸이다. 박홍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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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이리 밖다락미마을에 축조된 토성. 밖다락미 토성은 예산군 삽교읍 삽교천과 덕산천변에 축조되었다. 해상 교통로와 연결되는 적을 차단하거나 감시할 목적으로 축성된 소규모 토성이다. 밖다락미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사방을 조망하기 쉬운 입지 조건과 삽교천으로 합류하는 덕산천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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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수촌리 반창이마을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방형 토성. 반챙이 토성은 홍성천과 덕산천이 합류하는 저산성 구릉지대에 조성된 대규모의 방형 토성으로 추정되는 토성이다. 예산군 삽교읍 수촌리에 있다. 반챙이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기록된 진번국(眞番國)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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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에서 663년까지 백제의 부흥을 위해 백제 유민들이 예산 임존성을 비롯한 백제 전역에서 나당연합군에 저항한 운동. 660년(백제 의자왕 20, 신라 태종무열왕 7) 7월 백제의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많은 백제 유민들은 나당연합군에 저항하면서 부여에 주둔하고 있던 나당연합군을 공격하였다. 이로써 나당연합군과 백제 유민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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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부흥운동의 시작과 종말을 같이 한 중요한 거점.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임존성은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에 있으며, 현재 사적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성은 외벽을 돌로 쌓고 내벽을 흙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660년 7월 12일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에 이르자 백제는 7월 18일 항복하여 너무도 맥없이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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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8년부터 660년까지 삼국시대 백제와 관련된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 백제는 B.C. 18년에 한강 유역에서 건국하였다. 근초고왕 때인 4세기에는 마한 54국을 병합하여 고대국가를 완성하였다. 고대국가가 완성된 후에는 고구려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웅진 천도 후 혼란이 계속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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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 보부상 조직인 예덕상무사의 유물. 예덕상무사의 보부상 유품 중 전적과 공문 16점, 인장 6점, 인궤 1점, 청사초롱 2점 등 25점이 1976년 5월 2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예덕상무사의 접장들이 보관해 오던 것을 접장인 윤규상이 발굴·정리하였고, 현재 충의사 안에 있는 보부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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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있었던 숙식 제공을 위한 공공시설. 봉소원은 조선과 명나라 양국의 사신(使臣) 행차에 이용되었던 국가 경영의 여관이다. 사신이나 공무로 인한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한 시설로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 주요 교통로에서 활발히 이용되었다가, 조선 후기 당진포항이 이용되면서부터 폐지되었다. 역과 역 사이의 교통의 요충지 또는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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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존속했던 특수 행정 구역. 고려시대에는 부곡을 비롯하여 향(鄕), 소(所), 진(津), 처(處), 장(莊) 등 일반 군현과는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일반군현제와 구별하여 이들을 부곡제라고 한다. 부곡제는 군현제의 하부 구조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부곡이 형성된 경위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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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 북서쪽의 산 정상부에 축성된 석성. 사동 석성은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일원을 방어하기 위하여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입보용 석성이다. 사동 석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성내에서 수습되는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산 중심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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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 성미마을의 남서쪽 구릉지에 축성된 백제시대 토성. 상성리 토성은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 성미마을의 남서쪽에 솟아 있는 구릉지에 세워진 소규모 토성이다. 삽교천 주변과 덕산 지역으로 진입하는 적을 차단하거나 감시할 목적으로 축성된 백제시대 토성이다. 상성리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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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개자시마을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 상장리 토성은 삽교천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교통로의 적을 차단하거나 감시할 목적으로 축성된 백제시대 소규모의 토성이다. 상장리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으나 토성 주변에서 백제 토기편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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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의 봉수산 자락에 있는 백제시대 축성된 석성. 상중리 석성은 백제시대에 봉수산 길목을 감시할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규모 석성이다.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의 봉수산 자락에 있다. 상중리 석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임존성이 있는 봉수산의 북쪽 말단부 봉우리에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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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으로 비정되는 백제의 지방 통치를 위한 5개 방성 중 서쪽의 방성. 백제는 사비 천도 후 도읍지와 지방을 5부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수도에는 상부, 하부, 전부, 후부, 중부의 5부를 두었고, 지방에는 동방, 서방, 남방, 북방, 중방 등 5방(方)을 두었다. 지방의 5방에는 각각 방령(方領) 1인이 두어지고, 군장(郡將) 3인이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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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병덕(徐秉德)[1712~180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11년(순조 11) 궤장을 하사받고 기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손들이 서병덕의 영정, 요대, 옥배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의 사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병덕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유호(攸好), 호는 주은(酒隱), 시호는 정익(靖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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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고려시대 대구서씨 시조 서한의 묘역. 대구서씨의 시조 서한(徐閈)은 자가 인리이고, 고려 때 조봉대부(朝奉大夫)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다. 여러 대에 걸쳐 달성[대구의 별호]에 정착,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대구로 삼았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서한은 낭장을 지낸 영(潁)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천서씨에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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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해조(徐海朝)[1689~177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예산군 광시면 구례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해조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종지(宗之), 호는 구구재(九九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효적(徐孝積)이며, 할아버지는 서필행(徐必行)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서욱(徐욱)이며, 어머니는 박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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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로, 도구의 재질을 기준으로 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로 구분된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생활상은 당시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하여 연구할 수밖에 없다. 예산은 삽교천에 합류되는 무한천과 신양천을 중심으로 주변에 넓은 충적지대와 평야,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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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유적. 선사유적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생활·분묘·생산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을 말한다. 예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중북부에 있으면서 동쪽에는 차령산맥이 지나고 서쪽으로는 가야산맥이 남서쪽으로 달리고 있으며, 그 사이를 삽교천과 무한천이 북류(北流)하면서 주변에 넓은 평야를 형성시키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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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있었던 성곽. 성(城)이란 보통 성벽(城壁)을 가리키지만 의미는 매우 넓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바깥에 네모꼴로 쌓은 곽(郭)으로 구성되는 이중의 벽으로 구성된다. 안쪽의 것을 성, 또는 내성(內城)이라 하고, 바깥쪽을 곽(郭) 혹은 외성(外城)이라고 한다. 삼중인 경우에는 맨안쪽을 내성, 다음을 중성(中城), 바깥을 외성이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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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에 있으며 성리천에 접해 있는 평지 토성. 성리 토성은 예산군 삽교읍 삽교천의 지천인 성리천에 연접하여 세워진 목지국의 도성이라고 전한다. 거대한 평지 토성이나 대부분 훼손되어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 성리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목지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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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수묵(成遂默)[1792~1850]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성취(聖就) 또는 성집(聖執),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승지 성범석(成範錫)이며, 할아버지는 현감 성덕구(成德求)이다. 아버지는 부사 성긍주(成肯柱)이며, 어머니는 이두원(李斗源)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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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지역을 비롯한 내포 지방으로 계승된 실학자 성호 이익의 경세치용 학풍.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일군의 학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학문을 실학(實學)이라 부른다. 실학자들 중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은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서적을 접하고 개방적인 학풍의 경세치용(經世致用) 실학사상을 정립한 인물이다. 이익의 일가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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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예산에 잠시 기거한 학자. 성혼(成渾)[1535~1598]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호원(浩原), 호는 묵암(默庵)·우계(牛溪),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령 성충달(成忠達)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세순(成世純)이다. 아버지는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인 현감 성수침(成守琛)이다. 성혼은 서울 순화방(順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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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성흔의 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자 성흔(成炘)[1555~1626]은 벼슬을 버리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이후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처가인 대흥군 원동면 가좌울[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로 낙향하였다. 귀곡리에 정착한 성흔은 ‘모든 재앙을 추방하고 덕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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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3]은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형 성희안(成希顔)과 더불어 정국공신에 봉해졌다. 성희옹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당옹(戇翁), 호는 의재(義齋)이다. 할아버지는 사온서직장 성효연(成孝淵)이고, 아버지는 동녕부참판 성찬(成瓚)이며, 어머니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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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채취하거나 제작하여 공급했던 특수 행정구역.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하며, 주로 왕실·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 생산과 조달을 담당하였다. 향과 부곡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所)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생겨났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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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있었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을 제사지냈던 사우. 소도독사는 예산 지역에서 신라와 더불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을 제사지냈던 곳이다. 고려 때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우이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알 수 없으나 중종 때 이약수의 시 「소장군묘(蘇將軍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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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손응시의 신도비. 손응시 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손응시(孫應時)[154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88년 후손들이 세웠다. 손응시는 조선시대 인물로 예산과 관련이 없지만 후손들이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로 이주하면서 묘를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손응시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전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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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년(명종 6) 예산 출신의 손청이 난을 일으켜 가야산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사건. 예산 출신의 손청(孫淸)이 가야산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켜,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에 합세하여 예산현 등을 점령한 사건이다. 고려 무인정권의 초기인 1176년(명종 6) 유명한 공주 명학소의 난[망이·망소이의 난]이 충청남도 지역에서 일어났다. 망이·망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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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리 수암산 정상부에 축성된 백제 석성. 수암산성은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리 수암산 정상부에 있다. 테뫼식의 형태로 축성된 석성이다. 수암산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삽교천과 덕산면 지역의 중간 지점에 있어 사방을 조망하기 쉬운 입지 조건을 고려할 때 군사적 목적으로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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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에 살고 있는 수원김씨 사이에서 전해 오는 종계 문서. 조선 태종 때 충청도병마절도사 겸 수군절도사를 지낸 김상여(金尙旅)의 맏아들 김인중(金仁仲)이 한양조씨(漢陽趙氏) 사위로 입향하여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에 터를 잡은 수원김씨(水原金氏)는 장복리를 중심으로 상항리, 궐곡리 등에 현재까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2009년에 발간된 『대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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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 시묘동 마을에서 동·리의 복리 증진과 상호부조를 위해 만든 동계의 관련 기록을 남겨 놓은 문서.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 시묘동 마을에는 조선시대 향약이 간소화된 형태인 동약(洞約), 동계(洞契)가 운영되었던 모습을 알 수 있는 문서가 남아 전하는데 그것이 시묘리 시묘동 동규 입안(侍洞里侍墓洞洞規立案)이다. 문서는 시동리에 거주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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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산을 중심으로 충청도 서부 지역으로 연결되었던 역도. 시흥도(時興道)는 조선 세종 때부터 충청우도에 편성된 역도(驛道)였으며, 관할 범위는 평택(平澤)-천안(天安)-아산(牙山)-온양(溫陽)-예산(禮山)-당진(唐津)-태안(泰安) 등의 지역으로 연결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전기부터 편제되었던 시흥도가 폐지되면서 시흥도 소속의 8역이 금정도(金井道) 관할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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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문신. 신계영(辛啓榮)[1577~166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문인으로서 예산의 정경과 생활을 노래한 가사 「월선헌 십육경가」를 지었다. 신계영의 본관은 영산(靈山)이며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신종원(辛宗遠)이며, 어머니는 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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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예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공공시설. 신례원(新禮院)은 충청도 내포의 각 지역과 서울까지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관리에게 숙식의 편의를 주기 위하여 교통로의 요충지나 인가가 드문 깊은 산속에 설치되었는데, 국가가 직접 관리하였다. 조선 왕조는 국초에 숭유정책을 내세워 사찰의 정리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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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약 기원전 1000년까지의 시기로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 석기시대의 마지막 단계. 신석기시대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타제석기]를 쓰던 구석기시대에 이어 간석기[마제석기]를 만들고 사용한 시대이다. 채집·어로·사냥에 의한 식량 공급과 더불어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과 토기 제작 등, 자연을 개발하여 이용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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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신속리 섶무시마을 동남쪽 산 위에 축성된 토성. 신속리 토성은 주변에 있는 임존성과 상중리 석성 등과 함께 백제시대 때 축성된 토성이다. 무한천 옆에 조성되어 내륙의 교통로 감시와 차단 목적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치소로서의 기능을 겸한 성곽이다. 신속리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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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산해의 유품 일괄.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유품은 문집인 『아계유고(鵝溪遺稿)』와 그 책판을 비롯하여 친필 초서 병풍 목판과 초서 족자, 합죽 대륜선, 친필 유묵이 있다. 아계 이산해 유품은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음지말의 한산이씨 아계공파종회에서 관리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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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아계 이산해 종중 영당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산해의 영정. 「아계 이산해 영정」은 아계 이산해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초상화로 17세기 전반 제작된 원본으로 추정된다. 2009년 1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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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대흥 일대로 비정되는 마한 54국 중 하나. 마한은 대체로 기원전 1세기 경부터 3세기까지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에 있던 소국 연맹체이며, 그중 하나가 아림국이다. 마한은 아림국을 포함하여 모두 54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 이루어져 있어 전체가 10여 만 호(戶)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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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이리 안다락미마을 입구에 축성된 토성. 안다락미 토성은 예산군 삽교읍 삽교천에 합류하는 천변 지대에 포곡식 형태로 축성된 토성이다. 교통로의 요지에 치소성의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다락미 토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으나 사방을 조망하기 쉬운 입지 조건과 천변에 접한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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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흥현감을 지낸 문신. 안민학(安敏學)[1542~160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필법이 뛰어났으며 문장에도 능하여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군량의 수송을 맡았다. 안민학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습지(習之)·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찰방 안담(安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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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예산은 내포의 중심 도시이다. 고대 이래의 역사적 전통이 예산의 중심성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백제부흥운동의 거점, 뛰어난 불교문화 유산, 고려 통일 전쟁기 예산의 역할, 초기 천주교 전파의 못자리, 걸출한 독립운동가의 배출, 근대 상업과 농업의 발전 등은 예산 역사의 중심 개념이다. 1978년 대흥면 동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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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 및 통신 시설.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관청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와 관리의 여행 또는 부임 때 마필(馬匹)의 공급, 변방의 군정을 보고하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을 원(院)이라 하였다. 역과 원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설치되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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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의 영산신씨 종중에서 가지고 있는 조선 후기 관련 문서. 영산신씨 종중 소장 문서의 특징은 예산 입향 이후 가문을 현창시킨 신계영(辛啓榮)[1577~1669]의 것이 다수이다. 시기적으로는 17세기 전반에서 18세기 후반에 이르는 자료가 대부분이고, 19세기 초반의 자료도 있다. 영산신씨 종중 소장 자료인 고문서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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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충청남도 예산·덕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보부상 조직.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는 조선시대에 예산(禮山)과 덕산(德山)의 보부상 조직이 이웃한 면천(沔川)·당진(唐津) 등의 보부상 조직과 연합하여 1851년 무렵에 결성한 조직이다. 예덕이라는 명칭은 예산과 덕산의 첫 글자를 따서 붙였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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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을 비롯한 덕산, 당진, 면천 지역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활동했던 보부상단과 그 조직. 보부상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합친 합성어로, 지방의 오일장을 무대로 생산자나 도매상에게서 물품을 사들여 판매하는 소매상(小賣商)이다. 보부상은 지방의 군현 단위로 보상과 부상별로 구분하여 조직을 결성·운영하여 오다가 조선 후기에는 보상과 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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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예산 대흥 척화비는 서양 세력이 몰려오자 흥선대원군이 외세에 대해 통상수교의 거부를 하겠다는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1871년(고종 9) 세운 것이다. 비석의 앞면에 작은 글씨로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를 신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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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과 관련된 유적.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1908~1932]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忠義祠)와 윤봉길이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 광현당(光顯堂),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며 성장한 저한당(狙韓堂) 등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산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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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신 이산해의 묘. 예산 이산해의 묘는 조선 선조 때 재상이자 문인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와 부인 양주조씨의 합장묘이다. 이산해가 말년에 거주하였던 예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연못을 함께 조성하였다. 예산 이산해의 묘는 2010년 12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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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과 광시면, 금마면의 경계에 있는 봉수산 정상부에 세워진 백제시대 석축 성곽. 예산 임존성은 충청남도 예산군 봉수산 정상부에 축성된 백제시대 최대 규모에 속하는 테뫼식 석성이다. 백제부흥운동 때 복신과 흑치상지가 웅거하면서 주류성과 함께 중요한 거점성 역할을 수행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0호로 지정되었다. 『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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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이라는 지명이 시작된지 1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지역 문화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예산군에서 진행 중인 사업. 고려시대 919년(태조 2) 예산현(禮山縣)으로 개설된 지명이 지금의 예산군으로 이어졌다. 2019년은 예산이라는 지명이 시작된 지 1100년이 되는 해이다. 예산군은 예산의 역사 문화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지역 발전의 계기를 만드는 발판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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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관내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 예산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을 남아 있으나 아직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예산군 관내에 있는 유적 중 2017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것만을 대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신가리 유적을 꼽을 수 있고,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삽교 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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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조선 초기의 관아 건축물. 예산 대흥 동헌 및 아문은 조선시대 대흥현의 현청(縣廳)인 대흥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동헌(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며, 아문은 대흥동헌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예산 대흥 동헌 및 아문은 예산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다. 1407년[태종 7] 창건하였으며, 1914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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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산성산에 세워진 백제시대 석축 산성. 예산산성은 무한천변에 세워진 백제시대 성곽이다. 내륙수로의 방어뿐만 아니라 오산현[이후 예산현]의 치소로 이용된 포곡식 석축성이다. 예산산성은 축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없다. 예산현 지역에 축성된 유일한 백제시대 성곽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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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는 조선시대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시기의 비석군. 예산읍 비석군은 조선시대부터 역대 예산현감과 관찰사의 불망비, 혹은 선정비들이다. 총 19기로 관리상의 이유로 한곳에 모아두었다. 예산읍 비석군은 예산읍 산성리 예산종합터미널 건너편에 있다. 예산읍 비석군은 여러 형태의 비석들을 한곳에 모으면서 바닥을 모두 시멘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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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보덕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예산읍 삼층석탑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보덕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914년 일본인이 몰래 반출하려던 것을 보덕사 주지 김관용이 찾아왔다고 한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예산군 덕산면 소재지에서 옥계저수지 쪽으로 난 서쪽 길을 따라 4㎞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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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이성만·이순 형제의 효심과 우애를 기리는 조선 전기의 비.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는 이성만(李成萬), 이순(李順)형제의 효심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조선 연산군 때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세워진 비석이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는 고려 말기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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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예산 일산이수정은 1849년[헌종 15] 신양면에 세거하고 있는 전주이씨 집안의 이철수(李喆洙)[1824~1896]가 강학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지었으며 2002년 8월 1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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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예산읍 향천리에 있는 예산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각종 자료. 향교 운영의 구체적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교생(校生)[조선시대에 향교에 다니던 생도] 및 유생[재임] 명단인 『청금록(靑衿錄),』과 운영 방식과 체제에 관련된 절목, 향교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알려주는 「전답안」,「노비안」이 그 자료들이다. 예산향교에는 이 가운데 『청금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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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예산읍, 오가면, 신암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명칭. 예산현은 지금의 예산군 대술면, 예산읍, 오가면, 신암면을 포괄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옛 고을명이다. 백제의 오산현(烏山縣)이 통일신라의 고산현(孤山縣)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초에 예산현으로 바뀌었고, 고려 후기에 감무가 부임하였다. 14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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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세워진 호서은행 본점 건물. 호서은행은 1913년 5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에 본점이 설립되었다. 충청남도 서북 지역의 교통 및 상업 중심지에 자리한 호서은행은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후 더욱 심해진 일본의 금융 압박 속에서 민간자본에 의해 세워진 지방은행이다. 호서은행은 예산 지역의 성낙규·유진상·성낙헌 등과 서울 지역의 백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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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효교리에 있는 고려시대 매향비. 예산 효교리 매향비는 고려 말에 제작된 것으로 예산군 봉산면 효교리에 있다. 매향비는 향과 함께 소원을 적은 비를 함께 묻어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염원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비이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는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매향비는 내세에 미륵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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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에 있었던 개항기의 내포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던 대도소. 박인호의 막골기포에 의해 1894년(고종 31) 9월 29일 내포 전 지역에서 동학에 의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이에 박인호, 박덕칠 등 지도부에게는 향후 전면전에 대비한 무장투쟁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적 활동을 총지휘할 대도소가 절실하였다. 덕의대접주 박인호는 기포령을 내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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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비석군. 오가면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관직에 있으면서 선정을 베푼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에 있다. 오가면 비석군 가운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선정, 불망비로는 암행어사 홍철주, 이중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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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때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백제 때 예산 관내에는 임존성(任存城)과 마시산군(馬尸山郡)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시산군의 영현(領縣)으로 목우현(目牛縣)과 금물현(今勿縣)이 있었고, 임존성의 영현으로는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과 오산현(烏山縣)이 있었다. 오산현은 대체로 오늘날의 예산읍 관내에 해당되는데, 이곳에 있는 예산산성을 오산현의 치소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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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군수 오철상의 선정비. 오철상 선정비는 순조 때 대흥군수를 지낸 오철상(吳澈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이다. 『순조실록』에는 오철상이 대흥군수를 역임하는 동안 대동미를 제대로 납입하지 못하여 취조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이천부사 역임 당시 흉년이 들자 관곡을 나누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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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 충청남도 예산 지역 덕산의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오페르트가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 독일인 오페르트(Ernest Jacob Oppert, 戴拔)[1832~1903]는 1866년(고종 3)에 두 차례 조선으로 항해하여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실패하자, 1868년에 미국 상인 젠킨스(Frederick Henry Barry Jen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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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침입한 사건. 예산은 왜구 방어의 거점으로서 이산[지금의 덕산]에 설치된 도절제사영(都節制使營)이 1377년(우왕 3) 9월과 1381년(우왕 7) 5월에 각각 왜구의 공격을 받았다. 고려에서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되는 것은 1350년(충정왕 2)부터인데, 1350년부터 1391년까지 왜구가 침입한 지역 수는 전국적으로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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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월성위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월성위 김한신 묘는 월성위 김한신(金漢藎)[1720~1758]과 조선시대 왕실의 유일한 열녀로 알려진 부인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를 합장한 묘이다.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예산에 경주김씨 가문의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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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 태실이 있던 자리. 월송리 옹주 태실 터는 조선 영조 대에 세워진 옹주 태실의 터로서 현재 터만 남아 있다. 태실과 1753년(영조 29) 세워진 태실비는 현재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동헌 뒤쪽으로 옮겨져 있다. 태실비에 따르면 화령옹주(和寧翁主)와 화길옹주(和吉翁主) 중 하나의 태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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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년(태조 8) 고려 장수 유금필이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임존성을 함락한 사건. 고려와 후백제가 세력을 다투던 시기 충청남도 지역의 상당 부분이 후백제의 영역으로 넘어가자 고려 장군 유금필은 925년(태조 8) 임성군(任城郡)을 공격하여 후백제 장수 형적 등 3,000여 명을 죽이고 임존성(任存城)[지금의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와 상중리 일대]을 차지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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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는 유적지. 예산군 지역의 유물산포지는 총 9개소이다. 청동기시대 산포지가 3개소 이고, 삼국시대 산포지가 6개소이다.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는 대술면 1개소와 응봉면 1개소이다. 대술면 유물산포지는 완만한 구릉의 남서향사면에 해당되는데, 민무늬토기가 널리 퍼져 있다. 주변에 민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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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윤봉구(尹鳳九)[1683~1767]는 예산군 덕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인물로, 한원진(韓元震)과 함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주장하였으며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이다.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아홉 곳[관어대·옥병계·습운천·석문담·영화담·탁석천·와룡담·고운벽·옥량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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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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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문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숭록대부에 올랐다. 문집인 『석루유고(石樓遺稿)』 목판본이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아버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사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경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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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수양대군을 도왔으며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할아버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며, 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李種善),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 안동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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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의 부조묘. 이계전 부조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을 모신 부조묘[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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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길유(李吉儒)[1714~1783]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방어사·수군절도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이길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사적(士迪)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국형(李國馨)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이길유는 1714년(숙종 40) 지금의 예산군 봉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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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이남규와 아들 이충구, 교구꾼 김응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조성한 묘. 이남규 삼절묘는 1907년 의병으로 활약한 수당(修堂) 이남규(李南奎)[1855~1907]와 아들 이충구, 손자 평주(平洲) 이승복(李昇馥)[1895~1978], 교구꾼 김응길의 묘이다. 이남규, 이충구, 김응길은 일제에 항거하며 일본 헌병에 의해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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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이담(李湛)[1510~1575]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의약·천문·산수·궁술에도 능했고 문장과 서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담의 본관은 용인(龍仁)이며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이며, 할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적(李績)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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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덕성(李德成)[1655~170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언·지평·관찰사·동지부사·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부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덕성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득보(得甫), 호는 반곡(盤谷)·지비자(知非子)이다.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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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평촌리 까치골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의 신도비. 이만(李曼)[1605~1664]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지만(志曼)이다. 이만은 1627년(인조 5) 박사로 뽑히고 1628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형조낭청 겸 기사관을 거쳐 예조좌랑, 정언을 지냈다. 1636년 부수찬을 거쳐 수찬으로 있을 때 적극적인 척화를 주장하다가 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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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덕산현감을 지낸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은 조선 후기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계축옥사로 유배당했다가 인조반정과 함께 복직하여 병조참판에 올랐다. 1631년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묻혔다. 이명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선조 때 청백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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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지금의 예산군 지역인 대흥관아 등을 습격하고 덕산까지 도망갔던 사건. 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피폐에 빠진 1596년(선조 29) 7월 6일,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이몽학이란 인물이 왕권을 타도하고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민란을 일으켰다. 이몽학은 신분과 출신지가 정확하지 않고 다만 왕실의 서얼 출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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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시인·화가.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槎川) 또는 백악하(白嶽下)이다. 진경산수화가일 뿐만 아니라 조선 영조 때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병연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서 겸재(謙齋) 정선(鄭敾)과 동문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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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병휴(李秉休)[1710~1776]는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스승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문집을 발간하였다. 이병휴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경협(景協), 호는 정산(貞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 이지안(李志安)이고, 할아버지는 실학자 이익의 숙부인 이명진(李明鎭)이다. 아버지는 이침(李沈)이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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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사관(李思觀)[1705~177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대리청정 기간 때 우의정으로서 정조를 보필하였다. 이사관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숙빈(叔賓), 호는 장음(長陰), 시호는 효정(孝情)이다. 아버지는 종성부사를 지낸 이기성(李基聖)이며, 어머니는 김유(金洧)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이기한(李基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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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백제시대 지금의예산군 관내에는 임존성(任存城)과 마시산군(馬尸山郡)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시산군의 영현(領縣)으로 우견현(牛見縣)과 금물현(今勿縣)이 있었던 데 비해 임존성의 영현으로는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과 오산현(烏山縣)이 있었다. 마시산군은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이산군(伊山郡)으로 바뀌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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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불천지위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학문 뿐만 아니라 효(孝), 애민(愛民)의 행적을 보였으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고청(孤靑) 서기(徐紀)[1523~1591],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충청도의 특이한 학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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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묘소와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선조 때 두 번이나 영의정에 올라 북인을 이끌었다. 문장팔가(文章八家)의 한 사람에 꼽힐 정도로 문장과 서화에 두루 능하여 당대의 문인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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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신 이산해의 사당. 예산 이산해 사당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920년대 세웠던 것을, 1981년 인근 방산저수지 공사로 인한 수몰 위험으로 현재 위치로 옮겨 지은 건물이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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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산해의 신도비. 이산해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문신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신도비와 이산해의 사당과 묘소가 갖추어져 있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종남수옹(終南睡翁)이며 시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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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한 효자이자 학자. 이상태(李商泰)[1644~1696]는 극진히 모시던 부모가 사망하자 예산으로 낙향하여 평생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던 학자이다. 이상태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이(泰而)이다.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충무위부사과 이동양(李東陽), 어머니는 선교랑 박잠(朴潛)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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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이리의 누산영당에 보관된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의 초상화. 이색 초상-누산영당본(李穡肖像-樓山影堂本)은 예산군 삽교읍 이리 410-2 누산영당(樓山影堂)에 보관된 고려 말 3은(三隱) 중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초상화 모사본이다. 1654년(효종 5) 사대부 화가였던 허의(許懿)[1601~?]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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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한 서예 이론가이자 학자. 이서(李漵)[1662~1723]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징지(徵之), 호는 옥동(玉洞) 또는 옥금산인(玉琴散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이상의(李尙毅), 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이지안(李志安)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이며, 어머니는 이후산(李後山) 딸 용인이씨(龍仁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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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에 유배된 문인·학자. 이약수(李若水)[1486~1531]는 조선 전기의 문인·학자로, 조광조의 유배를 반대하다 예산으로 유배되었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다. 이약수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지원(止源), 호는 우천(牛泉)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이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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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여발(李汝發)[1621~168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함경도·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어영대장을 지냈다. 이여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한천부원군(韓川府院君) 이의배(李義培)이고, 아버지는 한원군(韓原君) 이목(李穆)이며, 어머니는 현령 김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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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이영원(李榮元)[1565~1623]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다. 이영원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자선(子善), 호는 용계(龍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이세달(李世達)이며, 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이윤우(李允宇)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황(李璜)이고 어머니는 생원(生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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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인. 이용휴(李用休)[1708~1782]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이다. 아버지는 이침(李沈)이고, 어머니는 조구석(趙九錫)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이며, 부인은 유헌장(柳憲章)의 딸 진주유씨(晋州柳氏). 이가환(李家煥)이 아들이다. 이용휴는 1708년(숙종 34) 덕산 장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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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의배(李義培)[1576~1637]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병자호란 때 전사하였다. 이의배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의백(宜伯),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이고,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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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의배의 신도비. 이의배 신도비는 세워진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의배(李義培)[1576~1637]의 신도비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에 지정되었다. 이의배 신도비는 1644년(인조 22)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찬하고 송설(松雪) 조맹부(趙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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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재위(李草稿)[1745~1826]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어휘집 『물보(物譜)』를 편찬하였다. 이재위의 본관은 여주(驪州). 할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며, 아버지는 이가환(李嘉煥)이다. 이재위는 1745년(영조 21) 덕산 장천리[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가환과 더불어 만물의 품성은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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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제배의 묘비. 이제배(李悌培)[1599~1631]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순백(順佰)이다. 아버지는 아흥군(鵝興君) 이흡(李洽)이고, 어머니는 진사 황사의(黃士毅)의 딸 황주이씨(廣州李氏)이다. 이제배는 효성과 우애가 깊고 공손하여 가정에 모범이 되었으나 재주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이제배는 죽은 뒤 좌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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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이존창(李存昌)[1759~1801]은 ‘내포의 사도’라 불리며 내포 지역 뿐만 아니라 전라도 고산 지역, 경상도 청송과 영양 등지에 이르기까지 천주교가 확산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천주교 북경교구에 밀사를 파견하는 등 초창기 조선 천주교회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존창은 1759년에 예산군 신암[현 예산군 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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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철환(李喆煥)[1722~1779]은 조선 후기 여주이씨(驪州李氏) 가문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사람이다. 덕산에 정착해 실학을 계승하였다. 이철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길보(吉甫), 호는 예헌(例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하진(李夏鎭)이며, 할아버지는 이해(李瀣)이며, 아버지는 이광휴(李廣休)이다. 맏아들은 이재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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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문신. 이춘원(李春元)[1571~1634]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13년(광해군 5)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예산군 고덕면 일대에는 함평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춘원의 할아버지인 이윤우(李允宇)가 거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윤우의 집에 거주하였던 이춘원은 관직에 나간 후에 예산에 거처를 마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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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의관. 이형익(李馨益)[?~?]은 조선 후기 궁중 의원으로 활동한 예천 출신 의관이다. 인조(仁祖)·효종(孝宗)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형익은 예산군 대흥면에서 태어났다. 1632년(인조 10) 침술이 탁월하다 하여 내의원(內醫院)의 추천으로 서울에 초청되었으며, 왕실 의관으로 인조의 신임을 받았다. 1633년부터 인조가 사망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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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전주이씨 입향조인 이효영의 묘. 이효영 묘는 조선 2대 정종(定宗)의 손자이자 의평군 이원생(李元生)의 아들이자 전주이씨의 대술면 입향조인 이효영의 묘이다. 이효영 묘는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숲실마을 뒤편의 야산 정상부에 있다. 이효영 묘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쪽 감탕골에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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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흡(李洽)[1549~160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예산군 덕산면에 있던 회암서원(晦庵書院)에 배향되었다. 이흡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화보(和甫), 호는 취암(醉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지훈(李之薰)이고, 할아버지는 이식(李埴)이다. 아버지는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畯)이며, 어머니는 한승정(韓承貞)의 딸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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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흡의 묘. 취암(醉庵) 이흡(李洽)[1549~1608]은 뛰어난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난 조선 후기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화보(和甫), 호는 취암(醉菴)이다. 할아버지는 이식(李埴)이고, 아버지는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畯)이며, 어머니는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북애(北厓) 이증(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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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평촌리 전주이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희손의 신도비. 이희손 신도비는 예산군 응봉면 평촌리에 이희손의 묘와 함께 있다. 이희손(李希孫)[1497~1566]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망(公望)이다. 양녕대군의 현손으로, 이희손의 아버지는 보안정(保安正) 이수남(李壽南)이고, 어머니는 노공저(盧公著)의 딸 교하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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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복자. 인언민(印彦敏)[1737~1800]은 조선 후기 천주교에 입교한 후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하여 조상의 신주(神主)를 버리는 등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하였다. 인언민은 1737년(영조 13) 덕산 주래[현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의 교동인씨(喬桐印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평소 친분이 있던 황사영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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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장 인초선의 묘. 인초선 묘는 예산군 삽교읍 용동2리 중용마을에 있다.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는 교동인씨(喬桐印氏)의 세거지이고, 덕산면 낙상리와 함께 예산의 대표적인 교동인씨 집성촌이다. 삽교읍은 조선시대 덕산현 지역이다. 『병자별시문무과방목(丙子別試文武科榜目)』에 인초선(印楚璿)[1606~?]의 무과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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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지역에 설치되었던 역. 일흥역(日興驛)은 예산현 오원리면(吾元里面) 역리(驛里)[현재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에 있었다. 충청도 서부 지역으로 연결되는 곳에 있었고, 공문의 전달과 사신 및 관리의 여행에 마필(馬匹)을 제공하고 군정을 보고하던 곳이다. 역(驛)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공문의 전달과 사신 및 관리의 여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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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고려 초기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대흥면 일원에 설치된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임성군(任城郡)은 지금의 예산군 대흥면 일원으로 백제 임존성(任存城)이 있던 곳을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임성군으로 개칭한 것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임존성이 있던 곳을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임성군으로 고쳤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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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실. 입침리 태봉 태실은 주인이나 건립 시기, 건립 과정을 기록한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태봉(胎封)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한다.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을 조성하고 태항아리와 지석을 묻는 절차를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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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기 출토지. 장신리 마제석기 출토지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가 출토된 곳이다.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를 지나는 도로의 북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냇가이다. 장신리 마제석기 출토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간돌검[마제석검(馬製石劍)]의 손잡이 일부분과 토기 파수부편(把手部片)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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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의 묘 근처에서 출토된 여러 형태의 선사시대 청동방울.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근처 구릉에서 출토된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은 8각형 별모양의 각 모서리 끝에 방울이 달려 있는 팔주령(八珠鈴) 1쌍, 쌍두령(雙頭鈴) 1쌍, 쌍두령과 비슷하나 X자 형태로 둥글게 한 번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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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시원(田始元)[1677~173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6세손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아들 네 명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경상병사를 지낸 전운상(田雲祥), 둘째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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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운상(田雲祥)[1694~1760]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재임 시 해골선(海鶻船)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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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은 무과에 급제한 뒤 나주영장, 삼척영장, 전라우수사, 죽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희중(羲仲), 호는 석천(石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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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의 영정과 생활상을 그린 회화.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는 화가 김희겸(金喜謙)[생몰년 미상]이 그린,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의 초상화 1점과 한가롭게 쉬는 모습을 그린 그림 1점이다. 1979년 12월 예산문화원 주관으로 서울에서 개최한 유묵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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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정만석(鄭晩錫)[1758~1834]은 조선 후기의 예산 출신 문신으로,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만석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성보(成甫), 호는 과재(過齋),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하경(鄭夏卿)이고 할아버지는 정유신(鄭維新)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정기안(鄭基安)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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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치방(鄭治邦)[?~?]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공산정씨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묘사화 이후 정빈(鄭濱)[?~?]이 고덕면으로 입향한 이후이다.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정빈의 아들 정치방(鄭治邦)[?~?]이 인조반정 이후 공주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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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현룡(鄭見龍)[1574~1600]은 무과 급제 후 신립(申砬)의 천거로 등용되어 회령부사, 종성부사, 북병사를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장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정현룡의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효손(鄭孝孫), 할아버지는 정이창(鄭李昌)이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인수(鄭仁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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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고분군. 조곡리 고분군은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동쪽 도로변 낮은 산 정상부에 있다. 고분은 2기로 생성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예산군 예산읍에서 국도45호선을 따라 삽교읍방면으로 4㎞ 정도 가서 북쪽 신암면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조곡리가 나온다. 조곡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동쪽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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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예산군 예산읍에서 국도45호선을 따라 삽교읍 방면으로 4㎞ 정도 가서 북쪽 신암면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조곡리가 나온다. 조곡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동쪽 도로변에 낮은 산이 있다. 고인돌은 산의 남향 경사면을 깎아 개간한 1,000여 평[약 3,310㎡]의 밭 북쪽 끝에 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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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사헌부장령에 이르렀으며, 효행과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곤(趙鵾), 할아버지는 조흥무(趙興武)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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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묘.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묘는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박지계(朴知誡)·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23년(인조 1) 학행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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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신도비. 조극선 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29년 건립되었다. 비문은 1680년(숙종 6) 윤증이 찬하였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이다. 조극선은 조경진(趙景璡)의 아들이고, 박지계(朴知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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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복양(趙復陽)[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복양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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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사석(趙師錫)[1632~169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왕세자 책봉 하례에 참석하지 않은 죄로 고성(固城)에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조사석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공거(公擧), 호는 만회(晩悔) 또는 만휴(晩休)·향산(香山)·나계(蘿溪)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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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2월에 조선 태종과 충녕대군이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행차한 사건. 1416년(태종 16) 2월, 태종은 순성[지금의 충청남도 태안]에 운하를 굴착하는 일을 결정짓기 위해 순성을 강무소(講武所)로 삼아 순행에 나섰다. 2월 4일에 한양을 떠난 태종은 2월 7일 덕풍현(德豊縣)[지금의 예산군 덕산면]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지냈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인 2월 1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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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개국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 예산군은 조선시대 홍주목 관할 예산현, 대흥현, 덕산현 3개 군현이 하나로 합쳐진 행정권역이다. 문화적으로는 충청남도의 내포 문화권에 속한다. 각 군현은 인구 규모로 볼 때 덕산, 대흥, 예산의 순이었다. 조선 초에는 국가 제사의 대상이었던 대흥현(大興縣)의 대잠도(大岑島)[지금의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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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중의 묘. 조영중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아버지 조영중(趙瑩中)[1558~1646]의 묘이다. 조영중의 본관은 풍양, 자는 군수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읽으며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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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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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의 신도비. 조익 신도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67년(고종 4) 조익의 후손들이 신도비를 세웠다. 조익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찬한 비문을 새겨 1867년 조익의 후손들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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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익의 묘. 조익 선생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과 부인 성주현씨의 묘역이다.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으며 아버지인 조영중(趙瑩中)[1558~1646] 묘 위쪽에 있다. 조익 선생 묘는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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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의 무덤에서 나온 묘지 16점.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가계, 행적 등을 기록한 글이며, 사기 판이나 돌에 새겨 무덤 옆에 묻거나 관이나 호(壺)에 직접 새기기도 한다. 조익의 무덤을 보수하면서 나온 묘지는16점이다. 조익 선생 일괄 유물은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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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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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충수의 묘.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조충수와 부인 남원양씨의 묘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조충수는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초명이 조윤충(趙尹忠)이다. 아버지 조방보(趙邦俌)는 사직서령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파평윤씨는 찰방 윤세걸(尹世傑)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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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구(趙泰耈)[1660~172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글씨를 잘 썼고, 양전(量田) 등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산법(算法) 관련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조태구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덕수(德受), 호는 소헌(素軒)·하곡(霞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할아버지는 병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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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존재했던 예산·덕산·대흥 등 3개 군현의 행정 책임을 맡은 군수·현감.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많은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나 완전하지 못하였고, 조선 건국 후에야 전국 모든 군현에 지방관이 부임할 수 있었다. 예산군에는 예산·대흥·덕산 3개 군현이 존재하였는데, 모두 고려 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조선 건국 후 1413년(태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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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벌인 백제 말기의 무신. 지수신(遲受信)[?~?]은 백제 말의 무신으로, 왕은 도망하고 왕자들도 항복하였으나 임존성을 차지하고 끝까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왜국의 후원을 받아 세력이 강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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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의자왕 20) 백제 멸망 후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당나라가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된 후 당나라에서 홍주(洪州) 지역에 지심주(支潯州)를 설치하고 기문(己汶)·지심(支潯)·마진(馬津)·자래(子來)·해례(解禮)·고로(古魯)·평이(平夷)·산호(珊瑚)·융화(隆化) 등 9개 현(縣)을 관할하였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그 옛땅에 설치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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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 지역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마한의 소국. 지침국(支侵國)은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 한전에는 삼한의 여러 국가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위서 동이전의 나라 이름은 당시의 중국음, 즉 상고음에 따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대체로 오늘날 우리 한자음에 가까워 위치 비정에 참고가 된다. 지침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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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진주강씨와 양주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비.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으며, 성국진(成國鎭)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와 성응기(成膺基)의 처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열행을 기리고자 1811년[순조 11] 세운 열녀비 2기이다. 양주조씨는 성국진의 세 번째 아내로, 남편에게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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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서 B.C. 3세기경부터 서력기원 전후까지의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던 시대. 한국 고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B.C. 300년에서 서력기원 전후 시기까지를 초기철기시대로 부르고 있다. 한국의 철기 문화는 중국 전국시대 철기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초기철기시대는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 생산력의 증대과 국가 형성의 기반이 확대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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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석기와 청동기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사용하기 직전까지의 시기. 한국 청동기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합금술과 성분 분석 결과에 의하여 시베리아 청동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많다. 청동기시대의 연대는 최근 연구 성과에 따르면 기원전 15세기경부터 청동기의 상한으로 보며, 하한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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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애국지사 최익현의 묘.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을사조약 체결 등을 반대하는 상소를 통해 위정척사론을 주장하며 국가의 자주권 수호를 역설하였다. 1906년 74세라는 노년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켰다. 최익현 묘소는 1909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로 이전하였으며 제사는 1년에 두 번[음력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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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덕산현의 이산진에 설치되었던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의 병영. 고려 말 지방의 각도에 전임도절제사가 파견되면서 충청도병마도절제사영(忠淸道兵馬都節制使營)은 최영의 건의로 이산진에 설치하였으며, 조선 초기에 서해안에 출몰하는 왜구의 방어에 유리한 해미로 이전할 때까지 존치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 처음으로 지방의 도에 전임도절제사가 파견되면서 그 하부기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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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있는 조선 왕실 자손의 태를 봉안한 곳.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태를 소중하게 다루는 풍속이 있었다. 특히, 왕실 자손의 경우에는 특별한 절차와 의식을 거쳐 길지를 골라 소중하게 묻었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한다. 태실은 크게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아기 태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만든 태실이고, 가봉 태실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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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년 5월 6일 태조 왕건이 예산진을 직접 방문하고 대민 교서를 발표한 사건.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통일신라를 통합하고 후백제를 무너뜨려 936년(태조 19)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고려의 통일은 실질적인 민족의 통합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사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고려 초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제압하는 통일 전쟁의 행보를 하는 과정에서 내포 지역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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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에 있는 흙으로 축조된 성. 토성은 흙으로 만든 성을 말한다. 성을 축조한 목적은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무기가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울타리만 제대로 쳐도 방어 시설이 되었으나 무기가 발달하며 영구적인 방어 시설물을 축조하게 되었다. 토성은 재료가 흙이므로 위치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영구적인 방어 시설물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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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고구려의 멸망부터 935년 통일신라 멸망 때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668년 고구려가 멸망으로 통일신라가 성립한 이후부터 935년 통일신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 일컫는다. 698년 발해가 세워진 이후 신라와 발해가 병존하였으므로 남북국시대라고 칭하기도 하며, 900년 후백제, 901년 후고구려가 건국된 이후부터 936년에 고려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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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강이나 바다의 포구에 임시로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 또는 임시 시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조창에는 각각 수세 구역이라 불리는 조세 징수 구역이 정해져 있어 해당 지역의 조세를 한곳에 모았다가 수도로 운송하였다. 조창이 설치되기 전이나 조운제도가 기능을 상실한 시기에는 포창이라 불리는 곳에서 조창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 경우 포창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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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한문준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한유충(韓惟忠)이다. 한유충은 대흥한씨의 시조로, 이후 후손들이 예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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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한순(韓楯)[1555~1592]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예산 출신의 무신이다. 한순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사한(士閑), 시호는 의장(毅壯)이다. 아버지는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한극심(韓克諶)이다. 한순은 1555년(명종 10) 덕산현[현 예산군 덕산면 일대]에서 태어났다. 황정길(黃廷吉)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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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유충(韓惟忠)[1080~114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대흥한씨(大興韓氏) 시조이다. 한유충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초명은 한주(韓柱),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경열공(敬烈公)이다. 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어머니는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이인효(李因孝)의 딸이다. 아들은 한문준(韓文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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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한홍조(韓弘祚)[1681~1712]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명이며 고향인 예산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한홍조의 본관은 상당(上黨)이며 자는 영숙(永叔), 호는 암촌(岩村)·손재(損齋)이다. 아버지 한윤원(韓崙源)과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의 2남 1녀 중 장남이다. 한홍조는 1681년 예산현 봉암[현 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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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년 백제의 권신이었던 해구가 일으킨 반란. 웅진 천도 후인 서기 476년에 해구는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올랐다. 477년에는 문주왕이 사냥을 나간 것을 틈타 왕을 시해하였다. 그리고는 문주왕의 아들 삼근왕을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으로 옹립하고, 정권을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이렇게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해구는 478년에 은솔(恩率) 연신(燕信)과 더불어 대두산성(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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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 건립된 서원이나 사우에 제향된 인물. 향사 인물(享祀人物)은 조선시대 각 지방에 설립되어 운영되었던 서원(書院)이나 사우(祠宇)에 제향된 인물을 가리킨다. 대체로 서원에 제향되는 인물로는 학문이나 도덕, 충절이 뛰어난 유교적 도학자가 주로 제향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사우에 제향되는 인물로는 충절이나 효열이 뛰어나 그 지방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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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명월봉에 있는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태실과 석물. 헌종 태봉 태실은 조선 24대 왕 헌종(憲宗)[1827~1849]의 태를 묻은 곳으로 1847년(헌종 13) 「헌종태봉도(憲宗胎封圖)」에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어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예산군에 의해 흩어졌던 석물을 모아 복원되었다. 헌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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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현상벽(玄尙璧)[?~?]은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예론(禮論)에도 정통하였던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현상벽의 본관은 팔거(八莒)이며, 자는 언명(彦明), 호는 관봉(冠峰)이다. 현상벽은 예산에서 태어나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이자 기호학파의 계승자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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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태봉골에 있는 조선의 제18대 왕 현종의 태를 묻은 곳. 현종 태실 터는 조선 제18대 왕인 현종의 태실을 묻은 곳으로 1681년(숙종 7) 조성되었다.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태봉골에 있다. 현재는 태실 터만 남아 있으나 1872년 제작된 「대흥군 지방지도」에서는 태실의 모습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종 태실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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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홍낙민(洪樂敏)[1751~1801]은 이존창(李存昌)과 더불어 충청도 내포 지역의 천주교 전파와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홍낙민의 실천과 노력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가지도록 만들었고, 많은 입교자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낙민은 1751년(영조 27) 예산의 풍산홍씨(豊山洪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양으로 이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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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홍봉섭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 홍봉섭 적선비는 남연군의 묘 이장 때 공헌을 한 홍봉섭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홍봉섭 적선비는 건립 연대나 내력을 알 수 있는 문헌이나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상가리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홍봉섭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할 당시 일이 편리하도록 봐 주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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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묘소와 열녀문이 세워진 옹주.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는 영조의 서녀로, 경주김씨 가문의 김한신(金漢藎)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음식을 끊고 14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로,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정절을 기리는 홍문과 능원이 조성되어 있다. 화순옹주는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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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순옹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열녀문. 화순옹주 홍문은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1783년(정조 7) 정조의 명으로 용궁리 어귀에 세운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예산에 가문의 원찰을 두었던 월성위 김한신(金漢藎)[1720~1758]의 처이며, 조선 왕실 내 유일한 열녀로 알려져 있다. 화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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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화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로 추청되는 고인돌. 예산군 대술면 화천리 지형은 주변이 낮은 야산으로 대부분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다. 화천리 고인돌이 있는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남북으로 길게 냇물이 흐르고 있고 앞쪽으로 평야지대가 펼쳐 있다. 현재 화천리 고인돌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곳에는 연리 고인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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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다박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다박골에는 3기의 고분이 남아 있다. 첫 번째 고분은 과수원 위쪽 구릉의 중상단부에 있다. 두 번째 고분은 첫 번째 고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m 아래 구릉의 하단부에 있다. 세 번째 고분은 두 번째 고분에서 약 3m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의 고분은 도굴과 개간으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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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황심(黃沁)[1756~1801]은 북경의 천주교회와 연락을 취하며 조선 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성직자 영입 및 교회 유지를 위한 협조를 구하는 등 대외 연결의 중추로 활동하였다. 1801년(순조 1)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황심은 1756년(영조 32)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인철(黃寅喆), 세례명은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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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벌인 백제 말기의 무신.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는 백제 말의 장군으로,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임존성(任存城)을 근거지로 백제부흥운동을 벌이다가 항복하여 당나라로 건너간 뒤 대장군의 지위까지 올랐다. 흑치상지는 백제 때 2품관인 달솔(達率)에 올라 풍달군장(風達郡將)을 겸하였다. 『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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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맏형 흥녕군 이창응의 묘. 흥녕군 묘는 남연군(南延君)의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맏형인 흥녕군(興寧君) 이창응(李昌應)[1809~1828]의 묘이다. 원래 경기도 시흥군에 조성되었으나 1871년 덕산면 옥계리로 이장되었다. 1개의 봉분에 정경부인 조씨와 합장한 어울무덤 형식이다. 이창응은 자가...